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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맑은 정신으로 미래를 읽는다

정 문 술 (경영인)

일곱가지 신문을 읽으며 시작하는 아침
서울 서초구 원지동, 청계산 자락에 자리한 아담한 주택. 바로 내가 사는 집이다. 새벽 5시 반이면 나는 어김없이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먼저 창문을 활짝 열고 산에서 불어오는 상쾌한 공기를 마신다. 그리고 집으로 배달된 조간신문을 가져다 읽는다. 모두 일곱 가지다. 나의 아침은 이렇게 일곱 가지의 신문을 읽는 것으로 시작된다. 남들은 출근하기도 바쁜 아침 시간에 한두 개도 아니고 무려 일곱 종류의 신문을 읽는 나를 보고 혹자는 “신문사에서 공로상을 줘야 할 것”이라고 우스개 소리로 이야기한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후, 시간적인 여유가 많아진 것도 한 이유겠지만 사실 내 신문 구독은 오래된 습관이다. 공직에 근무했을 때나 기업에서 일할 때도 그렇게 신문을 많이 읽었다.

은퇴한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신문을 읽는 방법은, 먼저 전체적으로 신문의 타이틀을 모두 살펴본 후, 경제-사회-논설-인물 분야 등 관심사항을 꼼꼼히 내려가는 형식이다.

또한 단순히 신문을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기사를 낱낱이 읽으면서 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유출해 낸다. 말하자면 기사를 읽으면서 과거를 떠올리기도 하고 나아가 미래를 읽기도 하는 것이다. 즉, 신문 기사를 따로따로 읽는 게 아니라 입체적으로 생각하며 읽는다는 말이다.

신문은 세상을 그대로 반영한다. 신문을 읽으면 세상 돌아가는 방향과 이슈, 트렌드 등을 꼼꼼히 파악할 수 있다.

늘 이렇게 하다보면 저절로 다가올 미래를 전망할 수 있게 된다. 경영 일선에서 손을 떼고도 여전히 신문을 많이 읽는 것은 신문을 통해 나름대로 세상 돌아가는 데이터 베이스를 유지하고픈 마음 때문이다.

아침의 맑은 정신으로 하루 구상하고 중요한 일 결정

나의 경우, 아침 시간에 정신이 가장 맑다. 그래서 이 시간에 신문을 읽으면 머리 속에도 잘 들어온다.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영혼과 정신이 가장 맑은 시간은 아침이 아닐까 한다. 따라서 아침에 하루를 구상하고 가장 중요한 결정도 주로 아침에 한다.

또 아침은 좌욕을 통해 건강을 챙기는 시간이기도 하다. 따뜻한 물로 30분쯤 좌욕을 하고 나면 몸이 훨씬 가뿐하다.

이렇게 신문을 읽고, 업무에 대한 결정도 하고, 또 좌욕까지 마치면 어느덧 아침식사가 준비되어 있다.

나는 아침식사만큼은 꼭 한식을 먹는다. 우리 집 식탁에는 일체의 가공식품이나 인스턴트 식품이 올라오지 않는다. 또 모든 음식에 조미료를 넣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천연 재료만은 이용해 간을 하는 것이다.

주로 아침 식탁에 오르는 것은 잡곡밥과 나물무침, 젓갈, 집에서 만든 된장으로 끓인 된장국, 콩나물국 등이다. 가을과 겨울에는 집 마당에 말려서 엮여놓은 시래기를 된장과 함께 끓여 먹는다. 그리고 아침 후식으로는 꼭 누룽지탕을 끓여 먹는다.

이렇게 먹으면 밤새 비어 있던 위가 부담없는 자연 음식들로 채워져 저절로 기운이 솟아난다. 하루를 든든히 보내기에 충분하다.

나의 경우, 뇌의 영양에 도움이 되는 아침은 가장 푸짐하게 먹고 점심과 저녁은 비교적 간단히 먹는 편이다. 바쁜 아침시간에 푸짐하게 차려 먹는 식사가 낯설지 모르겠으나 직접 실천하여 습관을 들이면 하루가 든든하고 활기 넘치는 생활을 할 수 있다. 특히 저녁은 소식을 하는데 그래야 밤에 몸이 가볍고 머리도 맑아 잠도 잘 온다.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열정 넘쳐

나는 매일 아침 10시에 강남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하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네 종류의 다른 신문을 마저 읽는다. 그외에도 경제 잡지나 경영 전문서적 등 다양한 책을 골라 읽는다. 사람은 일이 없으면 나태해지기 쉽다. 직장에서 정년퇴직 후, 할 일을 찾지 못해 골프나 여행 등으로 소일하는 사람들을 흔히 본다. 나이 들어서는 그저 취미생활이나 여행을 하면서 보내는 것이 마치 여생을 제대로 즐기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나이 드는 것에 상관없이 내가 건강하고 정신만 맑다면 해야 할 일을 찾아 하는 것이 좋다. 찾아보면 세상에는 할 일이 의외로 많다. 의욕만 있다면 어떤 일이든 찾아서 할 수 있다. 젊은 시절에 자신이 잘 했던 일이나 남다른 재능, 특기를 살려 새로운 마음으로 도전하면 젊은이 못지 않은 열정과 활력을 느낄 수 있다. 은퇴 후 찾아온 제2의 인생을 별 생각 없이 휴식만으로 흘려보낸다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나는 경영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현재 기업의 사외 이사를 맡고 있으며 경영 책임을 맡고 있는 후배들에게 자문도 해주는 등 제법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내가 지금까지 건강을 유지하며 활발하게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무실에서 그날 일과가 끝나면 오후에는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함께 집 바로 뒷산인 청계산에 오른다. 매일 1시간 30분 정도 산행을 하는데 산을 오르내리다 보면 기분도 상쾌해지고 건강에 자신도 생긴다. 그런 까닭에 하루도 빠짐없이 산행하는 것을 규칙으로 삼고 있다. 내가 지금까지 잔병 하나 없이 건강하게 지내온 것도 이런 규칙적인 습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아름다운 경영> 출간

은퇴 후에도 기업이나 관공서 등 여러 곳에서 강연 요청이 많이 들어온다. 하지만 대부분 거절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동안 경영자로서 일에만 몰두했던 터라 은퇴 후에는 나만의 개인시간을 더 갖고 싶었고, 또 강연을 한다고 해도 듣는 사람들이야 처음이겠지만 나는 매번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이라 매너리즘에 빠질 우려가 있다. 그 때문에 강연이 선뜻 내키지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생각다 못해 아예 책을 한 권 내기로 했다. 책을 내면 나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부족한 필력이나마 오랜 동안 서가에서 고심하며 <정문술의 아름다운 경영>이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나로서는 심혈을 기울여 쓴 글이지만 사실 고백하자면 무척 심한 산고를 겪었다. 오랜 시간 고치고 다듬기를 반복하면서 결국 9번의 개작과 3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겨우 책이 나오게 되었다.

책에는 1세대 벤처 기업인으로 그동안 수많은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나름대로 터득한 경영철학을 담았다. 말하자면 희망과 열정으로 성공을 향해 달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내 나름대로 익힌 하나의 길을 보여주자는 게 책을 낸 이유인 것이다. 부디 이 책에 담긴 나의 독자적인 경영 방식이 벤처에 몸담고 있는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더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최고의 재테크는 기부이다

얼마 전 10억 이상을 가지고 재테크를 하려는 사람이 2만 명이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내용인즉 부동산도 시원찮고, 증권도 미덥지 않으니까 어디다 투자해 재산을 불릴지 몰라서 안타까워한다는 것이다. 이 기사를 보면서 나는 인식을 좀 바꾸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차라리 돈이 없다면 돈을 어디다 굴릴까 고민하는 괴로움도 없을 텐데 하고 말이다. 소위 돈 있는 사람들한테 나는 자주 이런 말을 해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혼자만 잘 살기 위해 재산을 불리려 고민하지 말고 과감하게 기부를 하라”고.

 기부는 단순히 남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기부는 가감의 변화가 없는 저금이다. 경제가 불안한 이 시대에 내 돈을 지키는 가장 안전한 것이 기부다.

내가 이렇게 기부를 강조하는 것은 어차피 돈이라는 것은 한 사람의 몫이 아니라는 믿음 때문이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 혼자만 많은 재산을 가진다고 잘 사는 것일까?

부자라면 부자다운 그릇과 도량이 있어야 한다. 진정으로 큰 부자는 존경을 받는 사람이다. 백 개를 가지고서 한 개조차도 제대로 쓸 줄 모른다면 그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기부는 하늘이 축복할 뿐 아니라 주변에서도 좋게 보고 자신 역시 행복해지는 일이다. 기부는 인생을 사는 데 있어 애써 머리 굴려 몇 푼 이자를 따먹는 것보다 훨씬 값지고 보람있는 일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이 부자들의 최우선 덕목으로 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많은 돈을 번 사람들이 노년에 이르러 자연스럽게 자기 재산의 일부를 사회로 돌린다. 미국의 카네기와 록펠러처럼 말이다.

<베풂의 기술>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폴 마이어는 아예 자선을 위해 사업을 한다. 사회에 보탬을 주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려면 장사를 해야 한다는 단순한 논리다. 그래서 그는 자선사업을 위해 이익사업을 한다. 잉여로 하는 자선이 아니라 자선 자체가 경제행위의 1차 목적인 셈이다. 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발상인가.

내 인생의 바이블

은퇴와 동시에 나도 그들처럼 내 재산을 사회에 돌려주겠다고 결심했다. ‘돈 쓸 궁리’를 시작한 것이다.

 나는 내 알량한 돈이나마 제법 ‘잘’ 쓰고 싶었다. 카네기의 말대로 ‘부자인 채로 죽는 것은 너무나 부끄러운 짓’이다. 죽음이 목전에 닥쳐서야 떨리는 손으로 뭉칫돈을 내놓는 일은 정말 하기 싫었다.

그래서 많지 않은 내 재산의 사회 환원을 자연스럽게, 미래에 투자하는 마음으로, 무엇보다 ‘한창 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은퇴와 동시에 그 생각을 그대로 실천했고 만족했다. 오히려 지금의 내 마음은 이전보다 훨씬 부유하고 풍요롭다.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이제까지 내가 읽었던 그 어느 유명한 책보다 나는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를 가장 감명깊게 읽었다고 말한다.
내 아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던 때 수시로 꺼내 보았던 그 도덕 교과서의 가르침은 아주 쉽고 간단하다.

‘더불어 살아야 한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정직해야 한다. 겸손해야 한다. 성실해야 한다. 솔선수범해야 한다.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

평범하고도 뻔한 구절들이다. 하지만 나는 이 평범한 구절들에서 낙관과 확신을 얻었다. 그리고 회사를 운영하면서 이 도덕 교과서대로 지키려고 애썼고, 이것이 그리 별나지도 않은 나의 ‘경영 노하우’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세상이 아무리 변한다고 해도 이 구절들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가장 훌륭한 가르침이라는 것을. 또한 가장 아름다운 교훈이며 멋진 삶을 위한 성공지침이라는 것을.

정 문 술

(주)미래산업의 전 CEO이자 ‘벤처업계의 신화’로 불리는 정문술 전 회장. 4년 전, 그는 63세의 나이로 평생 모은 재산 300억원을 KIST에 기부하며 “신학문 학과를 만들어 고급 인력을 양성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은퇴했다. 당시 언론에서는 ‘벤처 대부의 아름다운 은퇴’라며 입이 마르게 칭송했다.

지금 그는 전보다 훨씬 여유가 있다. 마음을 비우고 얻은 여유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쉬지 않는다. 날마다 새로운 아침을 열며 풍요로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세상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열정이 게으름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은퇴 후 조용히 살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습관처럼 일찍 깨어나 알차고 보람있는 시간들을 꾸려가고 있다.

* <나의 삶, 나의 아침>(황금물고기 출판)에 실린 정문술 전 회장의 글을 옮겨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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