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네 인생을 살아라

일주학술문화재단 비장애형제 예체능교육비 지원사업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유영이 (만 9세·가명). 남보다 일찍, 30주 만에 세상의 빛을 본 아이는 저산소증으로 장애를 얻었습니다. 언니 서영 양 (만 17세·가명)이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해였습니다. 유영이와 함께 대부분의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야 했던 엄마 정은 씨 (만 39세·가명)가 신경 써주지 못해도 서영 양은 늘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습니다. 엄마에게는 참 고마운 딸입니다.


열여섯, 꿈이 생기다


줄곧 좋은 성적을 유지하던 아이가 춤을 추고 싶다고 선포한 건 중학교 2학년 말. 고등학교 입시가 채 1년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엄마는 당연히 반대했습니다. 집안 내력을 살펴도 그쪽 분야를 전공한 이가 없기에 서영 양에게 특출난 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껏 잘해왔던 공부를 포기하는 것도 아까웠습니다.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예체능 분야이다 보니 경제적 부담감도 컸습니다.


엄마를 설득해 춤을 시작한 서영 양
엄마를 설득해 춤을 시작한 서영 양

서영 양은 끈기 있게 엄마를 설득했습니다. “저는 목표가 생기면 무조건 해내야만 하는 악바리 기질이 있거든요.” 떨어져 사는 남편도 딸의 지원군으로 나섰습니다. 결국 엄마가 손을 들었습니다. 그즈음 푸르메재단과 일주학술문화재단의 비장애형제 예체능교육비 지원을 받은 것도 엄마의 결정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사실 춤은 취미로 하길 바랐어요. 예고 입시를 준비해도 당연히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죠. 보통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준비를 시작하는데, 겨우 10개월 남았었거든요.”


서영 양은 당당히 한림예고에 합격했습니다. “제 간절함을 보신 것 같아요. 어렵고 힘들기로 유명한 하우스댄스 장르를 선보인 유일한 지원자인 것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남들이 선호하지 않는 장르를 선택한 이유는 재미도 있기만 오기도 있었습니다. “하우스댄스는 짧은 시간 안에 소화하기 힘들다는 학원 선생님 얘기에 ‘왜 못해?’라는 생각으로 밤새 춤을 외우고 연습했어요.”


공연하는 서영 양의 모습
공연하는 서영 양의 모습

전공자가 한 명뿐이라 학교 정기공연에 참가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함께 수업을 듣는 친구들과 선생님을 설득해 결국 무대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런 열정이 있기에 서영 양은 어디서나 사랑받는 사람입니다.


아무나 들어가기 힘들다는 한림예고를 덜컥 합격해온 딸을 엄마도 더는 반대할 수 없었습니다. 유영이를 챙기느라 신경을 써 주지 못해도 불평 한마디 없는 딸입니다. “아픈 동생이 있어서인지 철이 빨리 들었어요. 한 번도 제게 실망을 준 적도 없지요. 그래서인지 늘 알아서 잘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요.”


딸 서영이가 한림예고에 간 것이 지금 생각하면 참 다행입니다. “대학에 가는 것만이 목표인 여느 학교들과 달리 서영이처럼 분명한 꿈을 가진 아이들이 모여서 그런지 열정이 넘쳐요.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며 함께 성장하는 거예요. 그 속에서 서영이가 너무 즐거워하는 것이 눈에 보여요. 서영이가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지원해주신 푸르메재단과 일주학술문화재단에 참 고마운 마음입니다.”


서로의 인생을 응원하는 모녀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서영 양은 새로운 꿈을 꾸고 있습니다. “춤을 사랑하지만 본업으로 삼기에 한계가 있고 수명이 짧아요. 직업 선택의 폭을 늘리고 다양한 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연기를 시작했어요. 적재적소에 생각나는, 꼭 필요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서영 양과 엄마는 서로의 인생을 응원합니다. 엄마는 서영 양에게 ‘엄마가 없으면 네가 동생을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서영이가 그런 부담 갖기를 바라지 않아요. 스스로 원하는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엄마는 딸이, 딸은 엄마가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엄마는 딸이, 딸은 엄마가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영 양은 엄마가 지금이라도 자신만의 인생을 살았으면 합니다. “엄마는 어린 나이에 저를 낳고, 뒤이어 아픈 동생이 생겨 젊은 시절을 즐기지 못했어요. 그게 너무 안타까워요. 이제라도 친구들이랑 놀러도 다니고 원하는 일을 하면서 엄마의 삶을 찾았으면 해요.”


그렇다고 동생 유영이가 귀찮거나 원망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동생이 있어서 남들이 알지 못하는 넓은 세계를 경험했어요. 제 삶을 다양하고 풍성하게 만들어 준 귀한 존재예요. 덕분에 배우라는 꿈을 갖게 됐어요.”


엄마의 바람은 소박합니다. 유영이와 서영 양이 지금처럼만 건강하고 평범하게 사는 것. 그 욕심 없는 믿음 속에서 서영 양은 마음껏 자신의 꿈을 크게 더 크게 키워갑니다. 소소한 칼바람에 귀한 꿈이 스러지지 않도록 푸르메가 늘 응원하겠습니다.


*글= 지화정 간사 (커뮤니케이션팀)

*사진= 지화정 간사, 김서영 (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