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가 된 못난이 삼형제

임혜정·주필홍 모자(母子)의 기부 이야기


 


임혜정 글|240쪽|서사원|2020. 03.05
임혜정 글|240쪽|서사원|2020. 03.05

‘내가 뭘 잘못했다고,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데... 왜 애들이 이 모양이야... 나 벌 받는 것 같아’라는 울부짖음이 절로 났었다. 난 ‘잘난 딸’이었는데 아들이 ‘못난이’가 되니 내가 꼴등을 한 것처럼 수치스러웠다. (중략) ‘못난이 삼형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지극히 평범하다. 그러나 나는 엄마로서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 임혜정, <아들익힘책> 중 -


오랫동안 푸르메재단과 인연을 맺은 임혜정 기부자가 책을 출간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인세 일부를 재단에 기부하고 싶다는 고마운 말씀도 함께였지요. 책 제목은 <아들익힘책>. 중·고등학교 교사로, 최근에는 대학에서도 강의하는 등 오랫동안 교육계에서 일해온 만큼 아들 잘 키우는 방법을 전수하는 책일 것이라 지레짐작했습니다. 물론 그 짐작이 틀렸다는 건 책을 펴보기도 전에 알았지요. 뒤표지에 적힌 위 내용을 보고 말입니다.


“저는 공부도 일도 잘해야 한다는 ‘결과’ 중심적인 삶을 살았어요. 바쁜 부모님 밑에서 뭐든 스스로 잘 해야 한다는 생각에 자신을 채찍질하며 나름 성공적인 길을 걸어왔지요. 그리고 제 아이들도 당연히 그러리라고 생각했어요.”


세 아들은 혜정 씨와 달랐습니다. 누구의 케이크가 더 크냐를 두고 박 터지게 싸우고 공부에는 썩 흥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의 눈이 가장 빛날 때는 PC방에서 게임을 할 때였지요. 아들을 키운다는 건 그런 사실을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과정이었습니다. 동시에 행복으로 향하는 길이 여러 갈래라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기도 했답니다.


“저는 많은 성공을 이루었음에도 행복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었어요. 반면 우리 아이들은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이미 아는 것 같아요. 성적이나 사회적 잣대가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걸 아이들을 보면서 배웠습니다.”


필홍이는 엄마 혜정 씨에게 특별한 깨달음을 주는 아들입니다.
필홍이는 엄마 혜정 씨에게 특별한 깨달음을 주는 아들입니다.

특히 둘째 아들 필홍이는 매 순간 엄마에게 깨달음을 주는 특별한 아이입니다. 상대의 마음을 살피는 데 뛰어난 재능이 있고 학교 밖에서 얻는 경험으로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를 스스로 찾아갑니다. 학교 시험이나 사회적 잣대로는 측정할 수 없는 엄청난 능력이지요.


이제야 책 제목을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왜 ‘아들양육책’이 아닌 <아들익힘책>이었는지…. 아들들을 가르치기보다 그들의 세계를 배워가는 것, 그것이 혜정 씨가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노하우가 아닐까요?


주말인 오늘 신나게 게임을 하며 다리를 원 없이 떨고 있는 필립이. 비록 건들거리며 게임을 위해 학창시절을 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들은 엄마와 대화가 통하는 남자이기도 하다. 마음 상한 사람을 위해 대화를 멈출 줄 알고 자신의 감정을 상대방이 알아듣게 전달할 줄 아는 필립이(첫째 아들).  - 임혜정, <아들익힘책> 중 -


“아들보다 딸을 선호하는 세상이 됐지만, 엄마 입장에서 아들을 키운다는 건 직접 경험해본 적 없는 남자들의 세계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그들의 장점을 제 삶에 적용할 기회를 얻는 거예요.”


아빠는 그냥 아빠였고 남편은 동등한 위치에서 때로는 대립하는 관계라면, 자식은 온전히 내가 품어야 하는 존재이기에 그들의 세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필수라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혜정 씨는 고민으로 가득 찼던 자신의 세계가 조금은 단순하고 가벼워졌다고 고백합니다.


“아이들을 그 자체로 온전히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면 아이들은 절대적인 사랑과 신뢰를 보내요. 늘 바쁜 부모님 밑에서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홀로 아등바등 외로웠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이제야 온전히 쉴 수 있는 ‘집’을 찾은 기분이에요.”


인연의 시작


장애를 가진 언니가 있던 혜정 씨는 일찍부터 여러 기관에 후원과 봉사를 해왔습니다. 푸르메재단과 인연이 된 것은 아들의 치료 때문이었습니다.


“셋째가 언어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걸 알고 근처에 재활치료 기관이 많은 종로로 이사했어요. 그때 푸르메재활센터라는 좋은 시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가족 중 푸르메재단에 기부를 한 첫 타자는 필홍이입니다.
가족 중 푸르메재단에 기부를 한 첫 타자는 필홍이입니다.

그 무렵 둘째 필홍이가 만들어놓은 수많은 도자기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던 혜정 씨는 기부를 떠올렸습니다. 집에서 바자회를 열고 도자기를 100원, 200원에 팔아 얻은 수익금 33,300원을 푸르메재단에 전달했지요. 당시 초등학교 1학년생에게는 분명 적지 않은 금액이었을 겁니다. 필홍이에게 그 기부는 어떤 기억으로 남았을까요?


“물론 그 돈을 쓰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어차피 제 돈이 아니라고 여긴 것 같아요. 처음부터 기부하기 위해 연 바자회이고, 기부하지 않아도 엄마가 가져갈 것 같았거든요.” (웃음)


그렇게 시작한 첫 기부가 아이들 각각의 정기기부로 이어지면서 재단의 대표 가족 장기기부자가 되었습니다. 왜 푸르메재단이었을까요?


“아이들이 오가며 자주 접하는 곳이라는 게 첫째 이유였어요. 눈에 띌 때마다 자신이 기부하는 곳이라는 생각에 나눔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을 테니까요. 또 다른 이유는 재단 시설을 이용하는 입장에서 볼 때, (장애인을 위해) 수익성 없는 시설을 만들어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재활 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얼마 전 필홍이가 참여했던 재단의 텐텐클럽 기부자모임에서 받아온 백경학 상임이사의 저서 <효자동 구텐백>을 통해 처음 푸르메재단에서 느꼈던 그 올바른 신념을 혜정 씨는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필홍이의 나눔 도전기


“저기 집 앞 꽃집 있잖아요. 엄마가 예쁘게 보는 것 같길래 그 꽃 샀는데 맘에 드세요? 꽃집에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 선물 산다고 했더니 만원인데 오천원에 주셨어요.” “엄마 피곤하시니까 푹 쉬세요. 엄마 건강도 중요하니까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제가 밥도 해놨어요.” 필홍이는 학교 밖에서 더욱 빛난다. ‘학교 밖 생활의 달인’이라고나 할까?  - 임혜정, <아들익힘책> 중 -


푸르메텐텐클럽의 최연소 홍보대사로 활동한 필홍이.
푸르메텐텐클럽의 최연소 홍보대사로 활동한 필홍이.

필홍이는 푸르메텐텐클럽의 최연소 기부자입니다. 본래는 혜정 씨에게 갔던 제안입니다. 누구보다 잘할 것이라는 엄마의 권유로 대신 텐텐클럽에 참여했지만, 중학교 1학년인 필홍이가 누군가에게 기부를 권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거절당할 것 같은 두려움에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았어요. 가장 편한 가족들부터 먼저 시작했지요. 그 후에 학원 선생님과 주변의 아는 어른들에게 권유했어요. 기부하다가 어려워지면 그때 중단해도 늦지 않는다고 얘기하면서요.”


그렇게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필홍이는 총 10명에게 기부를 받았습니다. 5명쯤은 엄마의 도움을 받았다곤 하지만 참 대단하지요? 늘 긍정적이고 도전할 줄 아는 필홍이를 믿었던 혜정 씨의 생각이 딱 들어맞은 셈입니다.


푸르메텐텐클럽이란?

장애인의 재활과 자립을 돕는다는 푸르메재단의 활동에 공감하고 주변 사람들을 새로운 기부자로 이끄는 특별 홍보대사 모임입니다. 지난 9월부터 3개월간 10명의 홍보대사가 활동했습니다.

필홍이가 생각하는 ‘나눔’은 내게 남은 것을 나누는 것이랍니다. 나눔의 정의가 이토록 명확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엄마 혜정 씨의 영향일 겁니다.


“대학 시절 거제도 지적장애시설 ‘애광원’의 김임순 원장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어요. ‘진정한 엘리트 의식은 자신에게 남은 에너지를 절대적 약자를 위해 쓰는 것’이라고 했던 말에 깊은 감동을 받아 졸업 후 애광원을 찾아 봉사를 하고 오기도 했어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나눔에 익숙해지기를 바라는 혜정 씨. 아이들 각자의 이름으로 정기기부를 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아이들이 사회적 약자의 존재를 알아가면서 내가 이 사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스스로 생각해볼 기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아직은 직접 기부하지 않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받아보는 소식지만으로도 아이들에게 큰 공부가 될 거라 믿어요.”


생산성으로 평가할 수 없는 사람의 가치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싶은 필홍이는 생산성을 떠나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가 인정되는 세상을 꿈꿉니다.


“오래전에 신문에서 외국의 한 연구결과를 본 적이 있어요. 2년간 3명의 교사가 전담해 한 명의 장애아동을 교육한 결과, 거의 비장애인처럼 생활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어요. 효율성 면에서만 보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2년을 투자해 한 사람이 평생 보통의 일상을 누리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 투자는 당연히 가치 있다고 생각해요.”


엄마인 혜정 씨도 같은 생각입니다. 성과만으로 사람을 측정하는 사회적 잣대가 사라져야 장애인들도 가치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겁니다.


“내 아이가 학교에서 높은 성적을 받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만 귀한 존재가 아니잖아요.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의 가치를 생산성으로만 판단할 수 없어요. 장애인 복지정책은 결국 돈이 들어갈 거예요. 사회 전체의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장애인에게 공감과 지지를 보내줄 수 있는 인식 개선이 우선돼야 하지 않을까요?”


'예쁜이' 아들들이 치열한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아내길 바라는 혜정 씨.
'예쁜이' 아들들이 치열한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아내길 바라는 혜정 씨.

서울 종로구 주민이자 교사인 혜정 씨는 지역사회, 인근 학교와 연계해 푸르메의 나눔 문화를 함께 만들면 좋을 것 같다는 귀중한 조언도 아끼지 않습니다.


“학생들에게는 어른에게 부족한 감수성이 있어요. 약자의 어려움에 더 잘 공감하고 쉽게 마음을 열어요. 그 장점을 살려 또래의 장애 학생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마련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지나다니면서 매일 보는 푸르메재단을 조금 더 특별하게 느낄 것 같아요.”


“어머님이 예쁜이 예쁜이 하니까 저도 모르게 예쁜이 예쁜이 하게 되더라고요. 그랬더니 반 애들이 필원이 이름이 진짜 예쁜이인 줄 알고 따라 하더라고요.” (중략) 자라는 중이기에 부족하고 실수투성일 수밖에 없는 아이들에게 ‘예쁜이 예쁜이’라고 불러본다.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 엄격한 학교를 넘어 치열한 사회로 나아갈 우리 아들들, 어떤 상황에서도 내면에서 들려오는 ‘예쁜이’ 메아리 소리를 듣고 긍정의 마음으로 일어설 수 있도록.  - 임혜정, <아들익힘책> 중 -


*글, 사진= 지화정 간사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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