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메를 통해 세상의 두 천사와 만나고 있습니다
벌써 2년이 지났다.
박지은
(자원봉사자)
재작년 겨울, 종각역에서 내려서 술집과 상점들 틈에 있는 조그마한 푸르메재단 사무실에 첫 방문한 게 말이다. 낡은 상가 건물에서도 구석진 한 곳에 자리 잡고 있던 푸르메재단. 겉보기와는 달리 그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훈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작은 사무실 내에서 가족 같은 따뜻한 분위기로 나를 맞아주셨던 푸르메 가족들의 첫 모습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때 나는 이미 요즘처럼 푸르메의 살림이 늘어날 것을 알고 있었을까.
푸르메재단이 두 번의 이사를 하는 동안, 나는 봉사 아닌 봉사활동을 한다는 명목으로 푸르메를 자주 찾곤 했다. 봉사 아닌 봉사라고 하는 것은, 내가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하는 ‘봉사활동’에 대해서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명색이 장애인 후원재단에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직접 장애인들을 만나서 돕는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봉사활동은 하지 못할망정 기껏해야 사무봉사를 돕는 다는 것이 내심 창피했기 때문이다. 푸르메 식구들은 항상 너무 따뜻했고, 요즘도 너무 감사하다. 별로 큰 도움을 드리지도 못하는데 늘 나에게 이렇게 말씀해 친절하게 말씀 해주신다. “지은 씨, 정말 고마워~”.
KBS 사랑의 리퀘스트 ARS 자원봉사후 (사진 오른쪽)
이런 나에게 내가 하고 있는 사소한 봉사를 더 열심히 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지난번 KBS 사랑의 리퀘스트에서 ARS 전화 안내 봉사를 하면서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다른 푸르메 식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 같은 대학생들도 있었고, 다른 곳에 일 하시면서도 봉사를 하러 와주시는 고마우신 어른들도 계셨다. 그 중에 어떤 한 분과 집 방향이 같아서 같이 집에 오는 내내 봉사활동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나는 그분께 솔직히 내가 하는 봉사는 봉사활동 답지 못한 사소한 것이라 부끄럽다는 마음을 털어 놓았다. 그분은 내 손을 꼭 잡아주시면서 꼭 직접 도움을 주어야만이 봉사는 아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아주 조금씩이라도 그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보탬을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용기를 주셨다.
그 후로 나는 내가 하고 있는 봉사활동에 전보다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사무실에서 내가 주로 했던 일은, 푸르메를 도와주시는 고마운 분들의 명단을 정리하는 작업이었다. 한 분 한 분 고마우신 분들의 이름을 볼 때 마다 왠지 모르게 나를 직접 도와주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괜스레 더 감격스러울 적도 많았고, 어쩌다가 그분들과 전화로 통화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때는 큰 영광을 얻은 것 마냥 기쁘기도 했다. 또, 하루가 다르게 푸르메를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아지는 것과, 우리 푸르메의 살림이 점점 살찌는 것을 볼 때는 흐뭇함도 느꼈다.
KBS 사랑의 리퀘스트 ARS자원봉사 중(사진 왼쪽 두번째)
최근 들어 푸르메나눔치과에서 작으나마 일을 도와드린 적이 몇 번 있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대로 책상에서만 하는 사무봉사가 아니라, 직접 장애인분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였기에 너무 기뻤다. 물론, 내가 치과 일을 직접 도울 수가 없었기에 주로 했던 일들은, 시각장애인 분들을 잠깐 길 안내 해드리거나, 다리 불편하신 분들을 부축해드리는 것이었지만,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집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늘 철부지로 통하는 나도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루는, 치과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 날이 있었다. 어떤 젊은 어머니가 9살 난 아들을 데리고 치과에 오셨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 아이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잘 모를 정도로 밝고 명랑한 아이처럼 보였다. 환자 차트에 신상명세를 적어서 내신 것을 보고 그제서야 그 아이에게 발달장애라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치료를 받기 전까지 해맑게 웃던 그 아이가 무서운 치과 기계 소리와 의사선생님을 보자 울음을 그칠 줄을 몰랐다. 그 아이는 달리 말로 무서움을 표현은 하지 못했지만 울음소리로 계속해서 자기를 표현하는 듯 보였다. ‘저런... 얼마나 답답할까...’ 의사선생님께서는 아이가 힘들어 하기 때문에 어떠한 치료를 위해서는 전신마취가 불가피 하다고 말씀하셨다. 아이의 어머니는 혹시 웃음 가스를 사용한다든지, 다른 방법은 없는지 물으셨고, 전신마취는 가급적 피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덧붙이셨다. “전신마취 안시키려고 이 치과 저 치과 여러 군데 돌아다니다가 몇 시간 걸려서 여기 온 건데요....”
그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나도 마음 한구석이 아팠다. 푸르메를 도와주시는 분들이 비록 많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세상에는 도움을 주시는 분들의 손길보다는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서일까... 아픔을 울음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했던 천사 모습의 어린아이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장애를 가진 분들을 돕기에는 더 많은 손길과 따뜻함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고, 나는 과연 그들에게 진정한 손길을 건네 주었는지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던 소중한 하루였다.
오늘 학교 기말고사가 끝났다. 이제 겨울방학을 할 것이고 나는 다시 일주일에 한번 씩 푸르메를 찾아가서 기쁜 마음으로 일할 것이다. 내가 푸르메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세상의 아름다운 두 부류의 사람을 모두 만날 수 있어서가 아닌가 싶다. 그들은 바로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천사들과, 그들의 도움으로 행복을 찾아가는 아름다운 천사들. 이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박지은_이화여자대학교 영문학과 2학년. 대학 신입생 때 처음으로 푸르메재단과 인연을 맺고 꾸준히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