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유리그릇: 말아톤의 어머니, 박미경씨 이야기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 순간의 있음이다.’ ‘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법정 스님의 ‘버리고 떠나기 중에서’)
서울에 첫눈이 내린 다음날, 영화 ‘말아톤’의 실제주인공 배형진군(25)의 어머니 박미경씨(49)를 만나러 잠실에 있는 자택으로 향했다.
2005년 영화 ‘말아톤’(정윤철 감독)으로 유명해진 배형진씨와 어머니 박미경씨, 영화의 감동 속에 조금씩 멀어지는 모자의 삶이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
2006년 발달장애인의 복지개선과 지원을 위한 ‘말아톤 복지재단’이 세워지면서 어머니 박미경씨는 이 재단의 이사를 맡고 있다.
최근 복지재단이 ‘희망일터 만들기 프로젝트’(이하 희망일터)를 진행하면서 배형진씨가 홍보대사를 맡았다. 박미경씨도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되었다.
박미경씨는 “내 아들을 위해서라기 보다, 보다 많은 발달장애인들이 일을 통해 보람과 성취감을 얻고 사회에서 자립하는 것이 바램”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경기도 안성에 있는 K농원, 이곳이 발달장애인들의 희망일터가 될 예정이었다. 난을 키우
면서 발달장애인을 위해 원예치료를 한다는 것. 처음 구상할 때 희망일터는 자폐아를 둔 가정이 그룹으로 일정액을 투자하는 창업형태를 구상했다. 하지만 진행되는 과정에서 회사에서 창업자금을 지원한다고 해도 나중에 성공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에 선뜻 참여하는 사람이 없었다.
6개월을 고용직으로 하고 이후에 창업형태로 가는 것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박미경씨와 또다른 한 사람이 6개월간 월급을 받고 일을 배운 뒤 자립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막상 일을 배우러 가보니 난을 가꾸는 것을 가르쳐주는 기술자도 없고 프로그램 자체도 엉망이었고 실제로 창업을 한다 해도 수익이 발생할 가능성이 없었다. 결국 박씨는 일을 시작한 지 2주 만에 두 손을 들게 되었다.
“ 몸이 편찮으시다고 들었습니다.”
“ 일 주일간 감기몸살과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겹치면서 누워 있다 겨우 살아났어요. 머리도 부스스하고 많이 안 좋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시작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이렇게 되었네요”
“프로젝트에 무슨 문제가 있었나요?”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래도 사람간의 신뢰잖아요. 처음에 너무 기대가 컸던 것 같아요.그것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니까 몸을 추리지 못했던 것 같아요.
K농원에 가니까 장애인, 노인, 중국교포들이 있었어요. 난을 키우는 사람들이 2팀으로 나뉘어 일하는데 정신이 없었어요. 프로젝트의 개념이 아닌 일당을 받는 작업장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박씨는 일도 중요하지만 발달장애인을 위해 오전, 오후에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했단다. 하지만 그런 프로그램은 전혀 없었고 무조건 일만 시켰다고 한다. 하루, 이틀은 그래도 참으면서 일을 시작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일당을 받으며 일을 하러 온 것인지, 프로젝트를 진행하러 온 것인지 모를 정도로 혼란스러웠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잘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형진이가 이곳에서 일을 하면서 다른 장애인에게 모범이 돼 발달장애인 작업장의 모델로 키워갔으면 했는데 그런 모습은 안보이고 점점 노동을 하는 작업장 밖에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형진씨는 2003년부터 기타에 들어가는 부품을 조립하는 중소기업인 ㈜진호에서 최근까지 일했다고 한다. 그래도 형진씨는 영화 ‘말아톤’ 이후 회사의 배려로 조금 자유롭게 일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회사에서 운동할 수가 없어 하루 종일 일하고 월 55만원의 월급을 받으면서 일했지만 장애인을 고용하는 회사나 기업들이 장애인을 배려하거나 지원하는 것이 거의 없다고 한다.
이런 문제가 개선되어야 할 과제라고 박씨는 강조한다.
발달장애의 일종인 자폐증을 앓고 있는 사람은 일도 중요하지만 규칙적이고 지속적인 치료와 관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치료와 지원을 위한 법적인, 제도적인 장치가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거의 없다고 한다.
어머니 박씨는 희망일터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형진이가 4년 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했다.
“ 특별히 뭐가 문제가 됐나요?”
“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없었어요. 말아톤 복지재단에서 사회복지사 한 명이 나와서 장애인을 돌보았지만 K농원에서는 전혀 그런 배려를 하지 않았어요. 일 배우는 것이 목적이라면 난을 키우는 기술자라도 와서 가르쳐줘야 하는데 그것도 없었어요. 시키는 일만 했던 거죠. K농원 사장님과 얘기를 했지만 대화가 안되었어요.”
노동도 중요하지만 노동을 통해서 보람을 느끼고 운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갖추어져 지지않고 프로젝트가 진행이 되었다. 아침 8시까지 안성에 가는 것도 큰 문제였다. 분당에 사는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런 어려움에 부닥칠 때는 어떻게 견디세요?”
“제가 종교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정신적인 지주가 법정스님이에요. 요즘 비우는 연습을 많이 하고 제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요. 그 동안 ‘힘들고, 지겹다’라는 말을 내뱉지 못했어요. 안 그래도 힘든데 그런 말까지 하는 것 자체가 너무 두려웠거든요.”
“형진씨와 평생 같이 살 수 없잖아요. 혹시 형진씨가 혼자 다니는 것이 힘든가요?
“아니요. 지금은 남한산성이나, 수영장 등에 혼자 다녀요. 하지만 사회적응을 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옆에 보호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요.”
“어머니께서는 그래도 어려움 속에서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않으세요?”
“네, 그런 것 같아요. 요즘은 너무 감사한 일이 많아요. 지난번 푸르메재단과 함께 갔었던 호주 시드니 마라톤대회에서 시각장애인 정수야 씨를 도와줬는데 제가 장애아를 둔 엄마로서 내 아들보다 다른 장애인을 도와주는 것이 이렇게 기쁘고 좋을 지 몰랐어요. 저로서는 더 큰 보람을 느꼈어요.”
“살면서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나요?
“예전 KBS 인간극장을 촬영할 때 담당 PD하고 아직 연락을 하면서 살아요. 그리고 최근 판문점에 갔을 때 정호승 시인을 만났는데, 제가 다른 사람하고는 사진을 잘 안 찍는데 정호승 시인하고는 사진을 찍었어요. 시집도 하나 샀고요. 정 시인이 따뜻하고 인간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또 누가 있더라, ‘달려라 형진이’라는 책을 출간하도록 제의를 했던 조선일보 최보식 기자, 영화 ‘말아톤’ 감독 정윤철 감독 등이 있네요. 아무래도 일회성으로 만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형진이를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마음이 그 이후에도 지속이 될 때 만남이 계속 되는 것 같아요.”
“강연이나 인터뷰, 새로 시작한 재단 일로 바빴을 텐데 좀 쉬셔야 하지 않나요?”
“ 네, 이제 제 자신을 좀 챙기려고 해요. 그 동안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 신경 쓰고 제 자신을 챙기지 못하니까 오히려 다른 사람을 더 챙기지 못하는 것 같아요.
요즘 아들과 영화도 보러 다니고 해요. (웃음) 예전에는 책을 읽어도 책의 내용이 들어오지 않았는데 요즘은 들어오는 것 같아요. 그리고 낙엽과 풀, 꽃들도 이제는 하나 둘씩 그 존재들을 기억하구요.”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으세요?”
“ 말아톤 복지재단이 잘 운영되고, 희망일터 프로젝트가 다시 처음부터 세부적으로 잘 계획되고 진행이 되었으면 해요. ”
“형진씨의 동생 슬옹이가 형진이 때문에 힘들지 않았나요?
“ 처음에는 형에게만 너무 신경을 써서 슬옹이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나아졌어요. 대학교 4학년이 된 슬옹이는 ROTC 장교로 입대할 예정이에요. 형진이가 일을 그만두면서 실업급여가 나오고 있는데 그 돈을 지방에 있는 동생이 생활비로 쓰고 있어요. 착한 형이 되었죠. (웃음)”
지난 9월 20일 일본 TBS에서 단편드라마로 우리나라 영화 ‘말아톤’을 드라마로 재구성해서 방영이 된 적이 있다. 담당 PD는 드라마가 성공하면서 상을 받았고 한국으로 박미경씨와 배형진씨를 만나러 왔다고 한다. 박씨는 아무리 사소한 일이지만 일본 사람들이 자신의 모자를 배려하는 모습 속에서 진한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두 아들을 세찬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게 강하게 키우신 어머니 박미경씨, 때론 슬픔과 기쁨으로 얼룩진 삶이지만 슬픔은 슬픔으로, 기쁨은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어머니 박씨의 그 오랜 삶의 향기를 나는 첫눈이 내린 다음날 접할 수 있었다.
유리잔에 무엇이 담기든, 그 내용물을 알 수 있다. 늘 어린이 같은 형진씨의 투명한 삶, 그 행복한 유리그릇 속에 담긴 모자의 따뜻한 모습은 오후 창가에 들어오는 햇살처럼 아름다웠다
정호승 시인이 싸인을 해준 시집을 보여주는데 그 시집 첫 면에 ‘ 모든 색채는 빛의 고통입니다.’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 그것은 그 객체가 뿜어내는 고통인 것을 시인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나 보다.
글과 사진=임상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