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웃음
벌써 십 년쯤 지났나 보다. 중학생인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일이다. 한가로운 여름 오후, 아이는 놀이터에서 모래 장난을 하고 나는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갑자기 비명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어보니 한 여자 아이가 아들 손에 있는 장난감을 빼앗으려 하고 있었다. 상대가 여자 아이인데다 몸집도 훨씬 작아 보여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여자 아이가 아들의 얼굴을 사정 없이 할퀴는 게 아닌가.
전미영 사무국장
책을 팽개치고 뛰어 갔다. 모래 위에 쓰러져 울고 있는 아들의 얼굴을 보니 할퀸 상처에서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황당한 것은 여자 아이의 태도였다. 울고 있는 아들에게도, 깜짝 놀라 달려간 내게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빼앗은 장난감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니, 도대체 뭐 이런 애가 다 있어!”
근처에 있던 여자 아이의 엄마도 달려 왔다. 그 엄마는 다짜고짜 딸의 손에서 장난감을 빼앗아 내팽개쳤다. “너, 또 왜 이러니!” 딸에게 화를 내며 아이의 손목을 나꿔 채고 질질 끌다시피 하며 가버리는 게 아닌가. 쓰러져 울고 있는 내 아들이 괜찮은지 살펴보지도 않고,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었다. 피가 머리 끝으로 확 솟구쳤다.
“이것 보세요!”
나는 아들을 여자 아이 앞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여자 아이를 무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너, 얘한테 빨리 미안하다고 해. 친구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그냥 가면 되니? 빨리 미안하다고 해!”
여자 아이는 말똥말똥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기가 막혀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아이를 때릴 수도 없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가 엄마한테 향했다.
“아니, 애 교육을 도대체 어떻게 시키는 거예요? 장난감 뺏고 피가 나도록 할퀴고 그래도 사과 한 마디 안 하도록 가르쳤습니까? 엄마가 이러니 애가 이 모양인 것 아닌가요?” 내가 쏘아 부치자 갑자기 그 엄마의 눈에서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그리고 대뜸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래, 내가 이러니 애도 이 모양이다, 어쩔래? 당신은 그렇게 잘났어? 당신 애는 그렇게 잘났고 애 교육도 그렇게 잘 시킨 모양이지?”
막무가내 반말에 적반하장 화를 내는 모습에 말문이 막히는 단계를 넘어 소름이 쫙 끼쳤다. ‘이 사람이 정상이 아닌 모양이다’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 때 근처에 있던 다른 엄마들이 뛰어 왔다. 두 명이 분을 참지 못해 고래고래 소리치는 그 엄마를 데려가고 다른 한 명이 내 옆에 남았다.
그 때까지도 너무 놀라고 기가 막혀 “어- 어” 소리 밖에 내지 못하고 있는 내 손을 다른 엄마가 잡았다. “많이 놀라셨죠? 제가 대신 사과할게요. 제 친구인데, 딸이 자폐증이에요. 평소에 너무 마음 고생을 많이 해서 이렇게 터진 모양이에요. 본래 그런 사람은 아니니까 이해하세요.” 여자 아이의 엄마 쪽을 보니까 다른 두 친구한테 안겨서 엉엉 울고 있었다. 얼굴이 확 달아 올랐다. 애가 조금 이상하다는 걸 왜 눈치 못챘을까. 저 엄마는 얼마나 힘들면 그랬을까……
장애아의 엄마는 얼마나 힘들까.
내 생각은 십 년 전의 그 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기껏해야 똑같이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갖는 얄팍한 동질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정말 많이 달라진 것 같다. 푸르메재단의 한방장애재활센터를 찾는 부모를 보면 그런 점을 실감하게 된다.
지금 내가 센터에서 만나는 장애아의 부모들은 참 밝고 당당하다. 아이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 “엄마가 이러니 아이도 이 모양 아니에요?”라는 내 말에 설움과 분노가 터졌던, 십 년 전 만났던 그 엄마의 안타까운 모습이 아니다. 세상에 맞서 아이를 지켜 주기 위해 훨씬 더 강해지고 당당해졌다. 설명하고 주장하고, 서슴없이 도움을 구한다.
장애에 대한 인식은 느리지만 조금씩 변하고 있다. 내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장애를 가진 아이가 홀로 설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부모들이 그런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십 년이 지난 지금, 장애아의 부모들은 웃음으로써 강해진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왜 고통스럽지 않을까. 눈물 자국 위에 핀 웃음이 그래서 너무 눈부시다.
푸르메재단 사무국장 전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