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뼉치는 사람도 대접받는 시대로
장영희 서강대 교수
나는 무엇이든 잘 잃어버리고 건망증이 심하기로 유명하다. 깨어 있는 시간의 반 이상은 무언가를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려 안타깝게 찾으며 시간을 낭비한다.
기필코 이번만은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겠다고 안전하게 깊숙한 곳에 두고는 더 못 찾는 경우도 허다하다. 주변 사람이 보기에도 한심한지 꼭 기억해야 할 것을 적어 두거나 목록을 만들어 두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모르시는 말씀이다. 목록을 만들면 목록 자체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하루하루 살아가며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늘 실수 연발에 노심초사, 그저 꽁지 빠진 닭처럼 돌아다니며 정신없이 살아간다.
장영희 서강대 교수
오늘만 해도 중요한 회의를 깜박하는가 하면 지난주에 걷은 학생들 페이퍼를 치과에 가져갔다가 두고 왔다.
어렸을 때는 그래도 총기 좋다는 말을 들었는데 언제부터인지 나의 삶이 복잡해지고 살아남기 위해 기억해야 할 것이 많아졌을 때 내 머리는 나름대로 반항하듯, 오히려 모든 것을 기억하기를 거부해 버린 것 같다.
그나마 크게 흉잡히지 않고 사는 것은 아마 내 직업 덕분이 아닌가 싶다. 일반적으로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학문에 너무나 열중한 나머지 건망증이 심하고 일상적인 일에 여러 가지 실수를 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내 건망증은 학문적인 것과는 별 관계가 없다. 얕은 감상이나 사소한 잡념 때문일 뿐, 내가 쓰는 논문 주제나 강의에 대해 골똘하게 생각하느라 건망증 증세가 생긴 것 같지는 않으니 더더욱 슬픈 노릇이다.
서로 주인공 되겠다며 싸워
이런 증상은 사실 어렸을 때부터 있었지만 요새는 자연적인 노화 현상과 함께 정도가 더 심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주위에 치매에 걸려 고생한다는 사람의 말을 들으면 남의 일 같지 않고, 수발 들어줄 자식도 없으니 나중에 기관에 들어갈 목적으로 일흔 살에 타는 적금도 들어 두었다.
얼마 전 어떤 잡지를 보니 치매 예방법이 나와 있었다. 호기심에서 유심히 보았다. 하루 두 시간 이상씩 책을 읽는다, 의도적으로 왼손과 왼발을 많이 쓴다, 많이 웃는다, 오랫동안 혼자만 있는 생활을 피한다, 일회용 컵이나 접시를 쓰지 않는다, 가능하면 자주 자연을 접한다 등등 어느 정도 상식적인 예방법이었다.
마지막이 재미있었다. ‘가능하면 자주 감동을 한다.’ 감동을 많이 하라? 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되는지 모르지만 감동을 하면 치매 예방이 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마음의 움직임이 두뇌의 움직임과 직결된다는 말이다. 그럼 치매라는 병이 흔한 이유는 기계처럼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언제부터인가 ‘감동’이 없어진 것과 상관이 있는지 모른다. 그러니 치매에 안 걸리려면 감동을 많이 해야 한다. 그게 정말이라면 최근에 나의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될 만한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를 읽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제이미는 공부는 잘 못해도 착하고 배려 깊은 아이였다. 제이미는 연말에 할 학예회 연극에서 배역을 맡고 싶어 했다. 제이미의 엄마는 제이미가 연극에 참여하고 싶어 무척 큰 노력과 기대를 하기 때문에 혹시 배역을 맡지 못하면 실망할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배역이 정해지는 날, 방과 후에 제이미를 데리러 간 엄마는 조바심하며 차 속에서 기다렸다. 학교 정문을 나와 엄마에게 달려오는 제이미의 두 눈이 자부심과 흥분으로 빛났다.
무대 아래 사람들 무시 말아야
“엄마, 알아맞혀 보세요, 내가 무슨 역으로 뽑혔는지.” 제이미가 외쳤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는 엄마에게 제이미가 곧 덧붙였다. “엄마, 나 손뼉치고 응원하는 사람으로 뽑혔어요!”
제이미의 순진무구함이, 겸손이, ‘박수치는 역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모습이 내게 이렇게 감동스럽게 다가오는 건 왜일까.
너도 나도 무대 위의 주인공이 되겠다고 서로 밀치고 쟤보다 내가 더 잘났다고 목청껏 떠들면서, 응원하고 박수치는 일은 짐짓 같잖게 여기고 무시하는 시대 탓은 아닐까. 박수치는 역할도 훌륭한 역할로 대접받는 감동의 시대가 오면, 온 국민의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을지.
<동아일보 2007.10.25자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