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같은 사랑을 하고 싶다.
얼마 전 어느 방송국에서 제작된 ‘너는 내 운명’이라는 휴먼다큐멘터리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부인 서영란씨는 대학 4학년 때 대형 할인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다가 동료인 9살 연상의 정창원 씨를 만난다. 두 사람이 사랑하다가 영란씨가 갑자기 간암말기 판정을 받고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는다.
항암치료를 했지만 이미 온몸으로 전이된 암세포로 더 이상 방사선 치료 외에는 다른 치료를 할 수 없는 상황. 그러나 영란씨의 얼굴에서는 늘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자신이 선택한 사람에게 어두운 얼굴을 보이지 싫기 때문이다.
정창원 씨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죽기 전에 영란씨와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다. 결혼식 하루 전날 영란씨는 마비증세가 오면서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하고 그만 세상을 떠나게 되고 창원씨는 죽음을 초월한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다. 이 두 사람의 사랑 앞에 나는 눈물을 흘렸다.
살아가면서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좁게는 자신과 이성에 대한 사랑부터, 크게 인류에 대한 사랑까지, ‘사랑(Love)’을 테마로 한 영화, 음악은 인류가 시작되고 고정적으로 등장하는 테마가 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진정한 사랑은 무얼까? 휴먼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위대하고 진정한 사랑은 ‘조건’이나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처음의 마음’을 간직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부인 영란씨가 조건적인 사랑을 했더라면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아름답지도 않고, 우리가 접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죽음을 초월한 창원씨의 사랑이 우리에게 강한 메시지와 감동을 주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상품화하고 이유와 조건을 순수함으로 포장한 사랑을 흔히 본다. 이런 사랑의 결말은 하나같이 서로에게 냉담하다. 때로는 회한과 상처, 눈물로 나타난다.
모든 사람을 진실된 사랑을 할 수는 없다. 농담처럼 스스로를 진실되게 사랑하지 않은데 하물며 타인을 그렇게 대할 수 있느냐고 말한다.
나도 ‘다른 사람을 정말 순수하게 영원히 사랑할 수 있겠다’ 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힘들고 지치면 차라리 그냥 혼자 살지 뭐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지나가는 강아지 한 마리 눈에 들어오지 않다가 마음 속에 ‘사랑’이 싹트게 되면 그 모든 것이 살아서 움직이게 된다. 만나는 사람마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서 다가온다. 내 사랑도 조건 없고 변함없기를 기대한다.
여덟 살 때 이미 호머의 작품을 읽을 정도로 천재였던 영국 여류시인 엘리자베스 베렛. 그러나 열 다섯 살 때 낙마사고로 척추를 다치고 가슴동맥이 파열되면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장애인이 된다.
그녀의 영감을 사랑하게 된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 엘리자베스는 로버트에게 이런 말을 한다. “동정과 눈물을 위해서 사랑하지 말고, 사랑만을 위해서 사랑해 달라”고. 둘은 결혼해 아들을 낳아 15년간 행복하게 살지만 엘리자베스는 남편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게 된다.
만약 로버트가 엘리자베스를 조건이나 명성으로 사랑했더라면 두 사람의 아름다운 사랑은 이루어 졌을까.
아픔까지도 보듬어주고 사랑을 할 수 있는 진정한 사랑. 누구나 마음은 있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세상은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것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서로를 아껴주고 함께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아름답다. 그 곳에는 ‘진실된 사랑’의 강물이 흐른다.
글 | 푸르메재단 임상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