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전통과 행복한 사회
‘부자가 3대 가는 것도 어렵다’는 말도 있지만 조선시대 최고의 부자로 불렸던 최 부잣집은 12대에 걸쳐 만석꾼을 지냈다. 최 부잣집이 주위의 칭송을 받으며 오랫동안 부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부자이면서도 나눔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어려운 사람들이 손을 집어넣어 잡히는 만큼 쌀을 가져가도록 구멍을 뚫은 ‘구멍뒤주’는 지금도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우리나라의 ‘나눔’에 대해 말하면 항상 ‘선진국에 비해 나눔문화가 부족하다’고 한다. 산업화 이후 우리는 살기가 너무 바빠 주위를 돌아다 볼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기부를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물어 보면 대다수가 ‘나눔을 실천할 정도로 여유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 전통의 면면에는 항상 ‘나눔’이 있었다. 서양이 프로테스탄티즘에서 나온 십일조의 나눔 전통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품앗이 문화’가 있다. ‘품앗이’는 원래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공동으로 돌아가며 경작하는 것으로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위해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주는 전통과 맥을 같이 한다. ‘계’나 ‘경조사 부조금’ 등의 문화도 이런 나눔의 방법으로 생활 속에 자리 잡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 복지도 ‘일하는 복지’, ‘생산적 복지’가 화두가 되고 있다. 무조건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일할수록 더 많은 혜택을 받아 생산성을 높이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도 노동력이 있는 백성에게 가을 추수기에 되돌려 받는 환상(還上)을 주었고, 노동력이 없는 백성에게는 상환의무가 없는 곡식을 제공하는 등 두 가지 구휼정책을 병행했다. 또한 가뭄에는 곡식을 방출하면서 극빈자에게 시중가보다 싼값에 곡식을 사도록 구매우선권을 주어 장사 밑천이 되도록 하였다고 한다.
2007년 노벨평화상은 방글라데시의 빈민은행가 유누스와 그가 설립한 그라민은행이 수상했다. 그라민은행은 빈민에게 무담보 무보증 소액대출인 마이크로 크레딧을 실시해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우리나라도 사회연대은행, 함께 만드는 세상 등 그라민은행을 모델로 빈민층이 대출을 받아 자활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라민은행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이자가 원금액수를 초과하지 못한다는 원칙을 두고 있다. 조선시대에도 빈민들이 대출을 받아 자립할 수 있도록 이자가 원금을 초과하지 못하는 ‘일본일리(一本一利)’라는 원칙을 두었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의 전통에는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해 어려운 사람을 돕는 십시일반(十匙一飯)의 나눔정신이 있었다. 지금도 전주시 금암1동사무소 앞에는 사랑의 쌀뒤주를 , 강원도 인제군 남면사무소 앞에는 사랑의 쌀 항아리를 두어 어려운 사람들이 필요한 만큼 가지고 간다고 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조용히 쌀을 두고 가는 사람이나 감사한 마음으로 자기가 필요한 만큼만 가져가는 사람들 모두 나눔의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가 있다.
우리나라의 기부금 규모와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매년 늘어나고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이웃사랑캠페인을 시작한 1998년 12월 이래 모금규모도 213억원에서 지난해 2,177억원으로 10배 이상 성장하여 우리사회의 나눔도 양적으로 크게 증가했다. 이제부터는 생활 속에서 나눔의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나눔문화’가 필요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지난해 10월 12일부터 매월 12일을 ‘나눔의 날’로 선포하고, 금전적 기부에서 자원봉사 혹은 자리양보에 이르기 까지 여러 형태의 기부중 적어도 한 달에 한번은 나눔을 생각하고 실천하도록 다양한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앞으로도 나눔의 가치와 의미를 전통 속에서 더욱 발전시켜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신필균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 스웨덴 스톡홀름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이사장, 아동청소년그룹홈협의회 회장을 역임한 사회복지 전문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