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찾는 이유 - 노찾사 한동헌 대표

 



2007년 6월 5일 푸르메재단 사무실에 ‘반가운 손님'이 방문했다. 노찾사의 한동헌 대표. 격동의 80년대 ‘나무’, ‘나의 노래’, ‘그루터기’ 등의 가요를 작곡하고 노찾사의 대표역할을 맡아온 그다. 98학번으로서 투쟁, 집회 등의 단어조차 어색하게 느껴지던 시대에 학교를 다닌 나로서는 동아리 방 구석에 놓인 먼지 쌓인 악보집에서나 그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 테이프가 늘어나도록 들었던 故김광석의 ‘다시부르기’ 앨범에서 한 대표가 만든 노래를 그의 목소리로 들으며 따라 부르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는 나를 모르지만 그는 나에게 친근하다.

1997년 노찾사 해체 후에도 공연을 많이 하셨는지.

“초청하는 곳이 있으면 행사에 도움을 주곤 했다. 공식적인 공연은 아니고 프로젝트 성격이 강했다. 2005년 활동 재개를 하면서 이화여대 강당에서 공연을 했고 그 후 연습을 계속 해 온 것들이 있어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2007년 공연을 하게 된 것이다.”



<2007년 5월 공연 "1987, 그 20년 후에> 모습



정기적인 모임이 있나.

“노래하는 친구들은 주말마다 연습을 한다. 특별한 사무실이나 상근직원은 없기 때문에 노래 연습을 중심으로 모인다. 목동에 멤버 중 한 명이 운영하는 연습실이 있다. 조금씩 갖춰나갈 생각이다.”


기사를 보니 재단을 만들려는 계획이 있는 것 같다.

“재단은 아니고 사단법인 형태를 만들려고 한다. 노래뿐만 아니라 문화 운동의 성격도 갖출 것이다.”

그동안 거쳐 간 단원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 지금은 몇 명인지.

“사실 잘 모르겠다. 많아서. 언론이랑 만날 때 얘기하는 걸로는 150여 명 정도 된다. 지금은 10여 명 정도 되는데 입회, 탈퇴의 과정이 뚜렷한 것은 아니다.”

노찾사의 대표곡을 꼽는다면, 그리고 개인적으로 애정이 많이 가는 곡은.

“대표곡은 ‘사계’, ‘광야에서’, ‘그날이 오면’,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 정도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문승현, 김재섭씨가 작곡한 노래들을 좋아한다. 문승현의 그 날이 오면, 사계, 오월의 노래, 김재섭의 산하, 아하 사람이, 겨울나라 등이다. 아, 겨울나라는 신곡이다. 좋은 곡이다. 들어봐라.”

평소에는 무슨 일을 하나.

“생업은 영화 만드는 일이다. 영화 제작사 혹은 프러덕션이라고 불리는. 이름은 다르마 영화사이고 첫 번째 영화는 가을에 제작 들어가서 내년 봄 쯤 개봉하는 것이 목표다.”



멤버 중 '일부'의 모습 <윗줄 왼쪽부터 한동헌, 조성태, 신지아, 문진오

아랫줄 왼쪽부터 민숙영, 송숙환, 권진원, 최문정>


노찾사가 재출발할 때 뭔가 방향성을 잡았을 것 같은데 어떤 것인가.

“통일된 의견을 만들 수는 없었다. 하나마나한 것 같은 그저 그런 좋은 얘기만 하게 되기도 했다. 가장 큰 문제의식은 이른바 대중음악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얼마나 우리 삶을 잘 담아내고 있느냐다. 현 시대의 사회와 사람들의 삶을 잘 담아내는 것이 노래의 중요한 기능과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우리의 노래가 영감의 원천이 되고, 용기나 힘을 불어넣어주며, 치유의 기능까지 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동시대성을 가지겠다는 의미다. 표현 양식, 기법, 음악언어 등이 시대에 맞게 변해갈 수 있겠지만 사랑의 마음, 연대 정신,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변할 수 없는 요소다.”

소수자에게 따뜻한 시선을 두어온 노찾사가 장애인과 연대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장애인의 삶과 상황에 대해 많이 접하지 못했다. 주위에 얘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고 계기가 없었다는 게 변명 아닌 변명이 될 것 같다. 그들은 사회적 소수자다. 노래를 통해 삶의 현실을 담아내려는 우리로서는 그들을 외면할 수 없다. 나아가 그들이 스스로 노래를 통해 표현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것도 우리의 역할이 될 것이다.”



마지막 질문인데 노찾사의 외연은 정해져 있는 것인가. 더 넓어질 수도 있는 것인가. 비슷한 뜻과 시선을 가진 뮤지션이나 단체와 함께할 수도 있는 것인가.

“뚜렷하게 정의는 못하겠지만 다분히는 80년대의 진보적 가치의 연장선상에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 기본이 될 것 같다.”

1987년으로부터 20년이 흘러 다시 6월이다. 많은 매체들이 앞 다퉈 20년 전 일을 조명하고 있다. 대학생 60%가 6·10항쟁에 대해 모른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고, 함께 부르는 노래가 차츰 없어지는 이 시기에 노찾사가 가야할 길은 무엇일까?

푸르메재단의 입장에서는 20년 동안 노동자, 빈민, 진보적 지식인들의 삶을 담아내고 사회에 이야기 거리를 제공했던 그 따뜻한 시선을 장애인들에게도 맞추어주면 좋겠다. 그들의 삶의 기쁨과 아픔을 담아내는 노래, 그들에게 치유와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노래를 찾아내어 부르는 것도 좋겠다.

2007년. 민주화라는 큰 물길은 열었지만 아직 사회 곳곳에 물이 흘러가지 못해 이곳저곳에서 물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더 눈을 낮추고 크게 뜬다면 우리가 찾을 수 있는 노래는 끝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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