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지 말아요! 캠페인] 김미화,그래 웃자

“슈퍼우먼 같으세요, 대단하세요!” 사람들은 나를 만나면 일단 여러 가지 일을 척척 잘 해내고 있는 것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보여지는 이미지가 다일까? 나는 주어진 일 이외의 일은 정말 못하는 사람이다.


일과 가정 일을 다 완벽하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집에 있으면 덜렁대고 일 못하고 게으른 엄마 때문에 아이들이 오히려 부지런하다. 더불어 친정어머니까지 돌봐주려고 전전긍긍하신다. 요즘은 남편까지 나서서 집안일을 신경 쓰지 않게 잘 돌보고 있다. 일하는 여성은 어떡하면 일도 잘하면서 집안의 남편, 아이들, 부모님께도 완벽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러나 어느 순간 이미 지쳐 쓰러지려는 순간 나는 깨닫게 됐다. 수퍼우먼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내가 건강하게 한 가지 일이라도 잘 하는 게, 그게 나를 위하고, 가족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 길이라는 것을... 코미디언이 남 웃기는 일만 잘 하면 되지 뭘 더 바라겠냐 생각하니 마음도 편해지고 욕심도 줄었다. 일 욕심, 돈 욕심 모두 다.



사람마다 어려움의 깊이는 다 다르다.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인생이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다.


우리 엄마는 스물여덟 나이에 과부가 됐다. 시골로, 시골로 보따리장사를 하며 어린 자식들을 키웠다. 물건을 사라며 소리 지를용기가 나질 않아 그 시절 크림빵 하나 값과 같은 막걸리 한 잔으로 용기백배해서 "옷 사세요!"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엄마는 그 시절이 지긋지긋해서 지금도 밀가루의 ‘밀’자만 들어도 신물이 난다고 한다. 그러나, 나에게도 그 시절이 그렇게 고통스러웠을까? 오히려 엄마가 없는 공간에서 혼자 국수 끓여 먹고 친구집에 가서 텔레비전 보면서 코미디언들도 보고, 공부도 안 해도 되고, 산으로 들로 시간이 남아돌아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고래고래 유행가를 부르며 돌아다녔다.


하도 유행가를 구성지게 잘 불러서 천지극장 앞 우리 동네 공터에는 판자촌 식구들이 모두모여 "미화 노래 한번 불러봐라!" 하고 난리가 났었다. 노래를 부르면 어른들은 팔다 남은 참외도 주시고 자두도 주시고, 오원짜리 동전도 주셨다. 달콤한 십리사탕 사먹을 생각에 침이 질질 났다.


엄마는 그 시절 목숨을 포기할까 모진 생각도 하셨단다. 그러나 요즘은 그때 만약 죽었다면 이런 좋은 날도 못 보고, 우리 딸 성공해서 이렇게 좋은 모습도 못 보고 어떡할 뻔했느냐며 가슴을 쓸어내리신다.


돌이켜보면 나는 외로울 때마다 노래를 크게 불렀다. 노래를 큰소리로 부르고 다니면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동네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노래를 큰 소리로 불렀으니 듣는 사람 입장에선 얼마나 웃겼을까? 초등학교 다닐 때 엄마가 없는 대부분의 날들은 그렇게 혼자서 돌아다니며 시장 구경도 해보고 산에서 갖가지 열매도 따먹으면서 야인(?)생활을 했던 것 같다.


엄마는 아직도 우리 어렸을 때와 학교 다닐 때 뒷바라지를 못 해준 것을 미안해하신다. 학교 다닐 때는 작은 해장국집을 했었는데 살림집이 따로 없어서(아주 작은 방이 딸려 있긴 했지만) 손님들이 늦게까지 안 가시면 동생과 나는 늘 골목에 쭈그려 앉아 손님들이 빨리 돌아가길 기다렸다.


그러면서 재미있는 상상도 하고 동생 앞에서 배삼룡 선생, 서영춘 선생 흉내를 내가며, 어떻게 꽈야 더 웃기게 몸이 꽈지는지를 평가받았었다. 그런 시간들이 오늘날의 나를 만들었는데 우리 엄마는 괜히 미안해하신다.


살다보면 정말 쓰러지고 싶은 날이 있다. 좌절감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 나는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그러면 눈물이 난다. 그때 바로 거울을 본다. 무지 웃긴다. 그러면 ‘그래, 웃자!’ 하고 다시 용기를 낸다. 그리고 또 울고, 거울보고 웃고... ‘인생 뭐 있어, 이렇게 사는 거지 뭐.’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용기가 난다.


누구나 어렵다. 그 어려움을 어떻게 하면 ‘안’어려움으로 바꾸느냐? 그건 마음에 달려 있다. 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안쪽에만 달려 있어서 자기만이 열 수 있다. 자!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을 향해 큰 소리로 노래 부르자.“나도 어렵고, 너도 어렵고, 우리 같이 이 어려움을 헤쳐나가자---아--!”


 



김미화 (개그우먼, 방송진행자)


1984년, KBS 2기 공채 개그맨으로 시작해 1988년부터 1991년까지 연속해서 해마다 KBS 코미디 대상을 수상했다. 1999년 대한민국연예예술상 희극인 여자연기상과 TV방송 진행상, 2002년 백상예술대상 코미디언 연기상을 받는 등, 코미디언뿐 아니라 방송 진행자로서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됐다. 현재 MBC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SBS TV <김미화의 U>, SBS <재미있는 TV천국> 등의 진행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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