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아니라는, 끝내 뭉클한 그 말





 


공지영(소설가)┃사진 한영희





 





가끔 삶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그것은 아마도 사람이란 무엇인가, 하는 말과 사랑이란 무엇인가 혹은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말로 이어져 간다. 정진석 추기경을 만나러 가는 날은 맑고 찬 날씨가 이어지고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산다는 일이 내게는 경이롭게 느껴진다. 진부할 줄 알았던 일상이 실은 늘 새롭다. 그것이 다른 사람이 이미 천년만년 동안 반복한 삶이었다 해도 이날을 처음 사는 내게는 늘 새로운 아침인 것이다.





 





 












 





왜 신부님이 되셨나요, 라는 상투적인 질문이 예상을 깨고 맨 앞에 튀어나왔다. 정진석 추기경은 추기경이기 전에 서울대교구 주교였고 그 이전에 신부가 되었다. 그 이전에는 서울 공대를 졸업한 공학도였다. 온 나라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였다 해도 서울대를 졸업한 젊은이가 신부가 되는 일은 그리 녹녹한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뜻밖에도 전쟁, 이라는 낱말이 그에게 먼저 튀어나왔다.





“과학자가 되고 싶었어요. 우리나라의 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전쟁을 겪으면서 생각이 변했어요. 전쟁 중에 사람을 죽이는 모든 무기가 과학의 산물이었거든요. 내가 기계부대에 근무했는데, 예를 들어 미군 2.5톤 트럭의 부품은 탱크와 같았어요. 서로 호환이 가능한 거였지요. 발명품을 손에 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그것은 흉기도 되고 이기도 된다는 걸 체험한 거예요. 게다가 몇 번의 죽을 고비에서 살아난 후, 내 삶의 나머지는 신이 준 덤이다라는 생각도 거기에 한몫했지요.”





덕소에서 도강을 할 때 바로 뒤에서 얼음이 꺼져 바로 뒷줄에 있던 사람들이 얼음물에 빠져 죽은 일, 문경새재를 넘을 때 지뢰가 터져 바로 앞에 가던 동료가 죽은 일을 그는 회상했다. 10대 후반 그렇게 목격한 어이없는 죽음은 그에게 실존적 질문을 던져주었을 것이다. 모두가 죽음 앞에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그것은 그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의 질문을 던진 모양이었다. 이상하지만 이것 역시 새로운 일은 아닐 것이다. 죽음 앞에서 삶을 생각하는 것 말이다.





후회하신 적 없나요, 물었다. 후회하기에는 그는 이미 너무 오랜 세월을 살았지만 그래도 한번 물어보고 싶었다. 그는 뜻밖에도 웃었다. “없어요. 잘한 거 같아….”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그가 말을 이어갔다.







 












 










“행복해요.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물질을 초월하는 것이에요. 가난은 어쩌면 이 세상이 없어질 때까지 계속되는 것인데, 움켜쥐는 사람에게는 영원히 만족은 없어요. 가장 행복한 사람은 적당히 가진 사람이고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지.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이 행복이니까.”
정진석 추기경은 아침 6시쯤 일어나 미사를 드리고 8시 아침 식사를 할 때까지 원고를 쓴다.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그는 말했다. 편집자와 실랑이할 일도 독자들이 이걸 알아줄까 걱정도 없으시잖아요, 내가 물으니까 그가 큰 소리로 웃었다.





“솔직히 그래요. 내 마음대로 쓰면 되니까 그건 그렇군요. 하지만 저녁에 산책을 하면서 묵주기도 20단을 바치는 것도 내게는 큰 행복이에요. 솔직히 추기경이 되고 나서 만나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누가 누군지 잘 기억하지도 못하는 때가 많은데… 그 시간에 조용히 정리가 되죠. 어떤 의미에서는 무아지경이라고나 할까?”
솔직히 언제 신이 옆에 있다고 느끼세요, 내가 물었다. 뭐랄까 사랑할 때, 미사 드릴 때 혹은 낙엽이 질 때… 같은 말을 상상하며 앉아 있는데 그는 선뜻 대답하고 만다. “…글쎄요, 믿지 않을지 모르겠는데… 항상입니다.”





그는 나의 기색을 살폈다. 믿지 않을지 모르겠는데, 라는 그의 단서는 실은 정확했다. 믿어지지 않았다. 늘… 신을 느낀다. 항상 신이 곁에 있음을 느낀다. 정말일까, 하는 의문을 눈치챘는지 그는 말을 이어간다. “신이 항상 곁에 있지 않으면 사는 것은 정말 어려워져요. 나를 알아봐주고, 사랑해주고 지켜주는 그분이 없다면 말이지요. 자살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틀림없이 있다고, 그게 사람이 아니라면 바로 하느님이라고.”






 









 









그는 너무나도 추기경다운 대답을 했다. 원고를 쓸 생각을 하면 솔직히 재미가 없었다. 그러나 그가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을 꺼냈다. 나도 기억하는 말, 가끔씩 생각하는 말, 그가 파킨슨씨 병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죽어가면서 했다는 그 말,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십시오”라는, 그 지당하며 진부하나 끝내 나를 뭉클하게 만드는 그 말.





말은 어떤 의미에서 부질없다. 기껏해야 몇 개 안 되는 모음과 자음의 집합이다. 그러나 그 말을 신선하게 만들고 뭉클하게 만드는 것은 그의 삶이다. 하얗게 센 그의 머리가 느긋한 그의 표정이 나를 편안하게 했다. “잘한 거 같아…”라는 말을 70이 넘은 후 나는 저렇게 편안히 할 수 있을까. “신부가 되길… 잘한 거 같아. 베풀고 나누며 살 수 있게 되었으니까”





 








요즘 들어 삶이 나 하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꾸 생각하게 된다. 지구 어디선가 차마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될 일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 하루 종일 내가 사람인 것이 싫어진다. 거꾸로 가난하고 아름다운 삶을 사는 사람을 보면 잘 살아야지, 다짐하게 된다. 아마 정 추기경을 만나고 난 후 내 삶의 저울은 잘 살고 싶다, 로 조금 기울 거 같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그가 늘 되뇌인다는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를 중얼거렸다.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월간 샘터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