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의 늪-김휘주
김 휘 주 씨
후천적으로 장애를 갖게 되신 분들은 꼭 자신의 장애를 부정하는 단계를 거쳐 가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현실을 인정한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많이 듣곤 한다. 그런데 태초부터 장애를 안고 태어난 나는 27년을 살았음에도 아직 내가 장애인이란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착각의 늪’에 빠져 살아왔다. 초등학교 시절엔 전교 어린이회 임원까지도 해 보고 중고등학교 때는 써클 활동에 대학교 시절엔 학보사 기자까지. 대단하지는 않지만 나름 대외활동이 많은 분야에서 별 어려움 없일했었기에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서도 별반 다를 것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한 건 적어도 우리 사회에선 나뿐이었을까? 본래 가고 싶어했던 외무공무원으로서의 길이 ‘장애’를 이유로 막힌 후에야 나는 내 스스로 만들었던 늪의 면적이 전에 비해 보잘것없어졌음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돌아보기 시작한 취업정보 사이트의 구인란의 대다수는 단순생산직 혹은 콜센터 업무, 내 능력을 펼치기엔 부족하다는 나에 대한 오기가 발동해 평소 관심을 두고 있던 인권 혹은 복지분야 시민단체들의 채용공고가 나오면 그곳에 원서를 접수하기도 여러 번, 때마다 나를 기다린 결과는 최종면접 불합격이었다. 그나마 열린 사고방식을 갖고 있을 줄 알았던 NGO들조차도 내가 뚫고 들어가기엔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어찌하랴, 하고 싶은 일 자체가 나의 신체적 특성은 철저히 무시되어야 하는 현장감 있는 일인데,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조차 ‘현실을 망각한 착각’일까??
꽤 여러 번의 실패를 겪고 나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과연 내가 그토록 갈망하는 현장의 의미는 어떤 것인지, 그 생각의 고리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열쇠는 ‘실천’이었다. 장애를 갖고 있는 당사자들이 직접 대안을 고민할 수 있는 바로 그 곳이 현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실천의 장을 만들고자 하는 사회의 노력은 너무나도 미약한 것이 또한 현실이다.
장애의 종류와 정도에 따라 알맞은 교육을 받고 그 후엔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아 비장애인 동료들과 함께 어울려 실아가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의 특성을 알아가도록 할 수 있는 자연스러움, 이 모습이 평범한 일상의 모습으로 바뀌는 날을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현실은 그 전 단계인 재활 그 자체에 대한 배려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에 재활병원의 필요성이 절실한 것이리라.
7년 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해 온 소년소녀 가장을 위한 동호회에서 작년부터 한 아이를 맡아 재정지원과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한 달에 한두 번씩 그 아이의 집을 찾아 아이를 양육하고 계시는 외할아버지, 그리고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가끔 야외에도 나가는데, 아이 집에 방문하면 할아버지께서 늘 하시는 말씀 중 하나가 ‘몸도 불편한데, 신경써줘 고마워’ 란 말씀이다. 장애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제대로 교육받을 기회조차 없었던 아버지 세대의 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아 씁쓸한데,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도 교과서에 나와 같은 모델이 등장한 적은 없었다, 지금 맡고 있는 아이가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데, 일부러 어린 아이를 맡았었다. 아이들에게 이런 모습을 어릴 적부터 보게 하면 그 아이가 커서는 또 다른 씨앗으로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는 전도사 역할을 해 줄 거란 기대가 있었기에. 하지만 모든 일은 순리가 있는 것, 기본적인 재활의 인프라가 잡혀야 자활과 교육은 뒤따르는 거라 믿는다. 그래서 푸르메에 대한 기대도 크다. 그들은 이 깊은 착각의 늪을 현실의 늪으로 바꾸는 파수꾼일 것이기에.
김휘주 씨는 올해 2월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졸업예정인 예비사회인 입니다. 선천성 뇌성마비를 딛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장애인 인권 개선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그는 푸르메재단을 후원하고 있는 아름다운 청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