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리본을 달아주세요
유 종 윤
(서울아산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유 종 윤 (서울아산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아침 회진을 돌며 병실에 들어선 순간 중풍환자의 벌거벗은 모습이 보입니다. 보호자가 의식이 흐린 환자의 대소변을 치우느라 법석입니다. 커튼을 열어젖힌 채 다른 사람이 보든 말든 열심입니다. 커튼을 가리고 하라고 말하는 것도 지쳤다고 보호자가 털썩 주저앉아 웁니다. 환자는 멍하니 보호자를 쳐다볼 뿐입니다. 그의 눈 속에는 간절한 미안함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네요.
오늘도 변함없이 보호자와 퇴원 종용으로 입씨름을 합니다. 입원한 지 1~2개월 된 환자가 태반입니다. 충분한 재활치료를 위해서는 턱없이 짧은 기간입니다. 퇴원 후 돌아갈 변변한 재활시설이 갖춰진 병원이 없다는 것 역시 잘 알지만 응급환자가 넘치는 상황에서 어쩔 수가 없습니다.
창문 너머로 먼 산을 응시하는 휠체어를 탄 앳된 얼굴의 소녀가 보입니다. 교통사고로 목이 다쳐 손만 겨우 움직이는 환자입니다. 다시 걸을 수 있을지, 대소변은 가릴 수 있을지, 과연 일생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됩니다. 그래서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병원 밖의 생활은 병원 안의 생활보다 훨씬 더 어려우니까요.
중풍으로 젊은 나이에 반신불수가 된 환자가 밥을 안 먹겠다고 합니다. 치료도 안 받겠다고 누워만 있습니다.
안됩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재활환자의 회복을 막는 가장 나쁜 것은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포기하면 보호자도 더욱 지칩니다. 환자가 힘들면 보호자도 힘들고, 보호자가 고통스러워하면 환자도 고통스러워합니다.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그럴수록 꾸준히 운동하십시오. 줄기세포다, 신경 재생이다, 놀라운 의학의 결과가 하루하루 다르게 발전합니다. 21세기는 18세기 산업혁명과 비견되는 의학혁명시대가 될 것입니다. 신경손상이건, 암이건 현재 몸 관리를 하지 않으면 새로운 치료를 받을 기회조차 잃게 됩니다. 마음이 답답하면 하느님께, 부처님께 기도해 보세요.
몇 년 전 이야기입니다. 잘 아는 수녀님이 방문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싫은 사람 욕도 하고 하소연도 하면, 수녀님도 “저런 XX가 있나?” 하고 맞장구를 칩니다. 그런데 한참 지나 수녀님이 불현듯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자”고 하십니다.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갑자기 맥이 풀렸지만 기도를 했습니다. 몇 분이 지나자 신기하게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주기도문 중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그렇습니다. 우리가 용서를 받으려면 먼저 남을 용서해야 합니다. 마음 한 구석의 쌓아있던 분노가 녹으면 그 자리에 사랑이 돋아납니다. 환자건 보호자건 서로를 위해 기도를 해보세요.
예전에 읽었던 카프카의 소설 <변신>이 생각납니다. 가족에게 헌신적이던 세일즈맨이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 흉측한 모습의 전갈로 변한 자신을 발견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후 생활은 본인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악몽의 순간들이었고 결국 세일즈맨은 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등에 박혀 시름시름 앓다 죽어갑니다. 그리고 그가 죽은 뒤 가족들은 평온하게 산책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현실이 무섭습니다.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마저 자기 인생의 걸림돌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사람들은 이기적일 수 있습니다. 박힌 사과를 뽑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장애인 자신뿐입니다. 누가 사과를 뽑아주기를 기다리지 마세요.
예전의 모습은 잊으라고, 자신만이 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보호자에게 신경질내지 말고 고맙다고 따뜻하게 말해보라고, 이제 별 수 없지 않느냐고, 성질을 죽이는 수밖에 없다고… 환자에게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보호자에겐 이런 말을 합니다. 당신 눈앞에 누워 있는 환자는 새로 탄생한 아기라고, 어머니의 지극정성으로 앞으로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라고, 자식이 잘 돼야 부모도 편하지 않겠느냐고…
머리 나쁜 사람을 닭대가리라고 부르지요? 이유를 아시나요? 병아리가 알에 깨어나면 처음 보고 만난 것을 자기 엄마라고 생각합니다. 병아리는 그것이 독수리든, 사람이든, 부모로 알고 졸졸 따라다니지요. 뇌에서 일어나는 imprinting이라는 작용입니다.
하지만 알에서 깨어나 수시간이 지나면 이러한 작용이 사라집니다. 이를 critical period라고 하지요. 병아리보다야 critical period가 길겠지만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언제까지 복종하고 따르지는 않는다는 말이지요
자기 부모가 아픈 할머니, 할아버지를 지극히 모시는 것을 보고 성장한 자식들은 힘없는 부모가 옆에 있는 것이 낯설지 않습니다. 그리고 보필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critical period가 지나서도 망각하지 않고, 부모를 따르고 이에서 더 나아가 부모를 아끼게 되는 것이지요.
늙으면 누구나 힘도 없고 병에 시달립니다. 현재의 자신이 병수발로 힘들고 지치지만 기쁜 마음으로 하세요. 이는 하나님이 보증하는 ‘다보장 평생 보험’이 아닐까요?
‘노란 리본 이야기’를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겁니다. 노래도 있지요. 형기를 마치고 나오는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의 용서를 구하며 그 표시로 집 앞에 있는 참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달라고 편지를 씁니다. 그리고 마침내 마을로 돌아온 그는 집 앞에 있는 오래된 참나무에는 노란 리본으로 덮여 있는 것을 봅니다.
이 사람의 형기는 과연 몇 년일까요? 노래가사를 보니 It's been three long years, 3년 이군요. 겨우 3년으로 이 야단법석을 떱니다. 사랑하는 여인이 단 3년을 못 기다리고 떠났을까 이렇게 노심초사합니다.
장애인은 3년, 10년, 아니 그 이상이라도 기다려주길 원하지요. 가사에서 남자는 나무에 노란 리본이 없다면 그대로 버스 안에 있겠다고 합니다. 또 버스기사에게 자기 대신에 나무를 봐 달라고 합니다. 이것이 장애인의 심정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장애에 마음을 열고 곁에서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믿음을 주신다면 투병에 많은 도움이 되겠지요.
먼저 노란 리본을 달아주세요. 환자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과 회복에 대한 주저함이 사라지지 않을까요?
유종윤 교수
한양대 의대를 졸업하고 1995년 서울아산병원 재활의학과 스텝으로 근무 중 출근길에 빗길에 차가 전복되면서 가슴아래가 마비되는 중상을 입었다. 하지만 여기서 굴하지 않고 재활치료와 훈련을 받고 전공공부를 계속해 교수로 임용됐다. 회진을 돌 때 환자의 의료기록조차 쓸 수 없었고 주위의 도움없이는 식사조차 하지 못했지만 피나는 노력으로 이를 극복했다. 자신이 하반신 마비의 중층장애인 환자이면서 의사이기도 한 그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환자를 마음으로 이해하고 격려하는 인술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