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지 말아요! 캠페인] 장영희, 무릎 꿇은 나무를 아는가














장영희 "무릎 꿇은 나무를 아는가"
[푸르메재단 Don`t Give Up 희망나눔 캠페인]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랑하는 제자에게

가끔 누군가의 뒷모습이 앞모습보다 더 정직하게 마음을 전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얼굴은 웃고 있어도, 짝사랑하는 연인을 오랫동안 기다리다 돌아서는 사람의 뒷모습은 어쩐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처지고 슬퍼 보이고, 짐짓 별 것 아니라는 듯 숨기려 해도 지금 막 기쁜 소식을 들은 사람의 뒷모습은 어딘지 불끈불끈, 생동감 있고 기뻐 보인다.
오늘 오후 내 연구실에 들렀다가 돌아서 가는 너의 뒷모습이 자꾸 눈에 밟혀 오늘밤 네게 편지를 쓴다. 차라리 내 무릎에 얼굴을 묻고 ‘선생님, 저 어떡해요? 사는 게 너무 힘들어요.’ 하고 슬퍼했다면 위로라도 했을 텐데, 그랬으면 내 마음도 좀 덜 아팠을지 모르는데, 괜찮다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잘 사는 모습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활짝 웃으며 돌아서는 네 뒷모습은, 어쩐지 휘청휘청 위태롭고 온몸으로 펑펑 울고 있는 것 같았다. 한 사람의 삶에서 결코 길다고 할 수 없는 지난 몇 년 간 네가 지나온 길은 아예 희미한 빛조차 없는 깜깜한 터널이었다. 내가 이제껏 가르친 그 어떤 학생보다도 재능이 뛰어나고, 교수들 사이에서는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 통하던 너, 튀지 않으면서도 밝고 명랑하고, 겸손하면서도 똑똑하고, 무엇보다 마음이

따뜻하고 착해서 늘 친구들을 다독거리던 너.좋은 집안에서 자라나 좋은 학교 나오고, 좋은 직장 들어갈 때까지 그야말로 ‘정석’의 삶을 산 너는 좋은 사람 만나 좋은 가정 꾸미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멋지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야 했다. 그리고 당연히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네가 졸업하자마자 첫 직장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1년 만에 모든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할 때, 앞으로 네가 살아가야 할 멋진 삶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네가 결혼할 사람이라면서 그 사람과 함께 인사 왔던 날을 기억하니? 내가 생각하던 대로 그 사람은 명문대학 출신의 잘 생기고 똑똑한 청년이었고, 어디로 보나 완벽한 조건을 갖춘 좋은 신랑감이었다. 그때가 아마도 8월 중순쯤이었을 거야. 학교 근처의 작은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을 때 옆에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식사를 하던 도중 그 사람은 벌떡 일어나더니 돌아가는 선풍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쪽으로 고정시켜 놓는 것이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못내 그 선풍기가 마음에 걸렸다. 옆에 앉아 있는 네게 허락도 받지 않고 자기 쪽으로만 선풍기를 돌리던 그 사람이 왠지 불안했다.


나의 예감은 적중해 버렸다. 그 사람은 네가 함께 할 자리는 손톱만큼도 허락하지 않은 채 만사에 자기뿐이었고, 결국 네게 상처만 남겼다.


그래서 너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나는 원래 공부에 재능과 관심이 있던 너니까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한 번쯤 발을 헛디뎌 실수한 것은 금방 제자리로 돌아와 다시 출발선에서 시작하면 된다고 믿었다. 남보다 조금만 더 빨리, 조금만 더 열심히 뛰면 그까짓 실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한 번 빗나가기 시작한 삶은 자꾸 엉뚱한 데로만 치달아, 외로웠던 너는 그곳에서 다시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고, 새삼 돌이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많은 경험 끝에 이제 너는 이 넓고 험한 세상에 두 살짜리 아기와 혼자 남았다. 이제 넌 아프고 지친 널 아랑곳하지 않고 무심히 앞으로 가는 사람들 뒤에 홀로 남아 이 무서운 삶을 살아내야 한다.


정말 ‘불행’이라는 단어는 네게 어울리지 않는데, 내 눈앞에서 네가 ‘불행’해지는 것을 나는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구나.


며칠 전 네가 이메일에 썼던 글이 생각난다. 어차피 한 사람이 느끼는 행복의 양에도 한계가 있고 아마 최고의 행복조차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별로 행복하지 않게 느껴지듯이, 한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절망에도 한계량이 있는 모양이라고. 그래서 남들이 보기에 ‘불행’한 사람들도 어떡하든 살아가기 마련인 모양이라고. 예쁜 아가가 있어서 행복하고, 아가를 위해 전에는 푼돈이었던 얼마간의 돈을 버는 게 소중하고, 그리고 이런 작은 축복들이 절망적이고 어두운 삶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고... 의연한 네 모습이 더욱 가슴 아팠다.


어디선가 읽은 이야기인데, 사람이면 누구나 다 메고 다니는 운명자루가 있고, 그 속에는 저마다 각기 똑같은 수의 검은 돌과 흰 돌이 들어 있단다. 검은 돌은 불운, 흰 돌은 행운을 상징하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일은 이 돌들을 하나씩 꺼내는 과정이다. 그래서 삶은 어떤 때는 예기치 못한 불운에 좌절하고 넘어지고, 또 어떤 때는 크든 작든 행운을 맞이하여 힘을 얻고 다시 일어서는 작은 드라마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아마 너는 네 운명자루에서 검은 돌을 먼저 몇 개 꺼낸 모양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남보다 더 큰 네 몫의 행복이 분명히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로키산맥 해발 3,000미터 높이에 수목 한계선인 지대가 있다. 이 지대의 나무들은 너무나 매서운 바람 때문에 곧게 자라지 못하고

마치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한 채 서 있단다. 눈보라가 얼마나 심한지 이 나무들은 생존을 위해 그야말로 무릎 꿇고 사는 삶을 배워야 하는 것이지. 그런데 세계적으로 가장 공명이 잘 되는 명품 바이올린은 바로 이 ‘무릎 꿇은 나무’로 만든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 온갖 매서운 바람과 눈보라 속에서 나름대로 거기에 순응하는 법을 배우며 제 각기의 삶을 연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슬픈 선율을, 그리고 또 때로는 기쁘고 행복한 선율을....


너는 이제 곧 네 몫의 행복으로 더욱더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할 연습을 하고 있다고,

그러니까 조금만 더 힘내라고--이것이 아까 네 뒷모습에 대고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다. 사랑한다.











서강대학교 영문학과 장영희 교수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선친 장왕록

교수에 이어 영문학자의 길을 걷고 있다. 한국문학번역상(1993년), 올해의 문장상(수필부문·2002년)을 받는 등 수필가·번역가로도 활약하고

있다. 일상의 작은 에피소드에서 삶의 보석 같은 진리를 캐내는 글쓰기로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저서로는 <문학의 숲을 거닐다>

(2005 샘터사), <생일> (2006 비채), <축복> (2006 비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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