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
박 태 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박 태 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왜 그렇게 창피했던가? 지금도 스스로를 질책하면서 잊을 수 없는 일이 있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1학년 때 다른 학교에서 전학을 온 터라 다른 학생들로부터 어느 정도 따돌림을 받는데 익숙해져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새로운 집단에 들어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었던 시기였던 것도 같다.
그 시절 우리 반에는 뇌성마비 친구가 있었다. 몸이 불편한 친구였고, 친구들로부터 따돌림과 놀림을 받고 있었던 친구였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 친구의 항상 웃는 모습이었다. 누가 놀리던, 누가 손가락질을 하던지 간에 그 친구는 항상 웃었다. 뇌성마비의 아이가 창피해서 도망간 부모 대신에 할머니와 살고 있다는 소문도 들렸었건만, 친구들의 놀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항상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다.
▲ 푸르메재단 판문점1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친구는 70명 중 반에서 10등 정도의 우수한 성적도 기록하고 있었다. 장애우를 위한 시설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던 1970년대 말의 상황에서 일반 학생들과 경쟁해서 그 정도의 성적을 올릴 수 있었다는 것은 너무나도 대단한 일이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명랑한 성격을 갖는다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친구는 나에게 다가왔다. 항상 나와 이야기하고 싶어했으며, 같이 공부하고 싶어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는 친구와 가까워진다는 것은 중학생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와 가까워짐으로써 자신마저 따돌림을 받을 수 있다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 친구와 가까워지는 것보다 그 친구를 따돌리고 놀리는 편에 서는 것이 더 쉽고 더 간단한 일이라는 것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쉽게 깨달을 수 있는 중학생의 논리였다.
▲ 푸르메재단 판문점2
그러나 그로부터 27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친구보다 더 큰 병을 앓고 있다. 그 친구가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지만, 그 친구를 따돌렸던 과거의 추억은 너무나도 부끄러운 자화상으로 남아 있다. 오히려 나는 그러한 과거로부터 정신적 장애를 갖고 있다. 당장 눈앞에 부끄러움 때문에 편안함을 택했던 나는 한참이 지나서야 그것이 스스로에게 장애를 입히고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 세상에 누구든지 장애를 겪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것이 육체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간에 모든 것이 정상적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겉으로만 보이는 것으로 장애를 판단한다. 스스로의 장애는 생각하지 않고, 남의 장애는 잘 보인다. 스스로가 장애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바쁘게 살고 있다. 스스로의 장애에 대해서 돌아볼 시간조차 갖지 않는다.
▲ 푸르메재단 판문점3
얼마 전 푸르메 재단의 주선으로 장애우들과 함께 판문점을 견학할 기회가 있었다. 출발 전에 잠시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던 박원순 변호사께서는 ‘장애우’라는 이름을 다른 이름으로 고칠 방법을 찾아보자는 제안을 해 주셨다. ‘장애우’라는 비정상적인 이름 대신에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다시 한 번 중학교 시절의 그 친구가 생각이 났다. 나나 다른 친구들이 갖고 있지 못했던 항상 명랑한 모습을 갖고 있었던 그 친구. 다른 누구보다도 불편한 몸을 이겨내면서 열심히 공부했던 그 친구. 그 친구가 힘겹게 적고 있었던 노트의 글씨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친구는 비록 체육이나 기술은 나보다 못했지만, 그의 성격과 생활은 나보다 덜 비뚤어져 있었을 것이다.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한번 꼭 만나서 그 당시를 함께 생각하면서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그 친구를 생각하면서 푸르메 재단의 소중함을 생각해 본다. 세상 사람들의 조그마한 친절에도 고마워하지만, 스스로의 삶을 아름답게 하기 위하여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능력’을 가꾸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정당하게 대우받고 재활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하루라도 빨리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