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지 말아요! 캠페인] 윤정숙, 삶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
윤정숙 "삶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 | ||
[푸르메재단 Don`t Give Up 희망나눔 캠페인] 포기하지 않은 길 | ||
누구나 그렇듯이 내게도 ‘그때 내가 포기했었다면...’ 하는 순간이 있었다. 그것도 여러 번이다. 그래도 가장 힘겨웠던 것은 이십대 말. 정말이지 내 인생에서 가장 위태롭고 힘든 시기였다. 그때 그대로 주저앉았으면 지금 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니 내가 살아 있기나 했을까. 고통은 객관적인 지표로 계량하거나 예측할 수 없다. 정말 힘들게 하는 것은 고통 그 자체보다는 고통을 대면하는 자신의 마음이고, 삶을 대하는 방식이다. 어느 순간의 힘겨움이 영원히 나를 놓아주지 않을 것 같은 암담함과 무기력에 갇혀버린 그런 마음이었다. 삶은 절망과 희망, 분노와 용서, 그리고 기쁨과 슬픔이 사계절처럼 어김없이 반복되고 순환한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이나 관계도 영원히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은 없다. 힘겨움의 매순간을 직면하면서 넘어선다면 고통은 단순한 순환이 아니라 삶의 깊이를 하나씩 깨달으며 자신을 성장시켜주는 길이 된다. 마흔을 한참 넘어 깨달은 것은 아무리 원해도 포기할 수도, 포기되어지지도 않는 것이 삶이란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던 80년대 초반 ‘운동권’ 남편과 결혼했다. 당연히 결혼생활은 시작부터 ‘가난과 쫓김’의 연속이었고, 급기야 남편은 만삭의 나를 남겨두고 수감되었다. 어린 나이에 혼자 아이를 낳고, 갓난아이를 업고 옥살이 남편을 뒷바라지하였다. 남편이 출옥했지만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고, 기꺼이 받아들인 가난이었지만 차비도 전화요금도 내기 어려울 때는 막막했다. 다시 남편이 투옥될 것 같은 긴장과 깊은 불안, 그리고 언제나 세상이 좋아질지 가늠할 수 없는 암담함에 질식할 것 같았다. 주위 친구들은 끌려가고, 쫓겨나고, 다치고 사라졌다. 시대도 내 삶도 암울했다. 돈을 벌어야 했지만 대학졸업장마저 거절된 데다가 아이 맡길 곳도 없어 그나마 일을 계속할 수 없었다. 진정, 힘들었던 것은 앞으로 내 삶이 어떻게 되어갈지 가늠되지 않는 막막함이었다. 내 미래를 내다볼 수 없는 시대 한가운데서 운동하는 남자의 ‘아내’인 것 말고, 나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매일 밤이 불면이었다. 늘 씩씩하고 당당해야 할 것 같은 운동가의 아내상은 내게 벅찬 일이었다. 일상생활은 늘 누군가에게 감시되었고, 언제 무슨 일이 있을지 몰라 일기조차 쓸 수 없었다. 인생이란 시나리오에는 없는, 그리고 편집도 절대 불가능한 장면의 연속이라는 생각을 했다. 원하는 삶을 향해 스스로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나는 어떤 힘에 의해 밀려다니며 사는 것 같았다. 난 아직 이십대였다. 그러나 미래를 위한 계획도, 깔깔대는 웃음도, 따뜻한 저녁 식탁도 내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나의 삶’을 다시 시작할까라는 물음 앞에서 답을 찾지 못한 채 매일같이 서성거리며 지냈다. 그러나 가슴 한구석에서 요동치는 나와 세상에 대한 탐구심과 호기심을 그대로 접을 수는 없었다. 내 삶에서 가장 길고 어두웠던 스물아홉을 넘어가면서 ‘지금의 내가 나의 전부는 아니다’라며 수없이 내 마음을 두드렸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또 다른 자신을 만나는 길은 새로운 관계로 들어가는 일이다. 사람들 속으로 세상 속으로 들어가자.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 말고 부딪치며 새로운 가능성을 찾자고 마음먹었다. 많은 사람들에겐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당시 내겐 그것조차 대단한 결심이었다. 움츠리면서 절망감에 빠진 나는 다른 시간과 공간으로 들어가기를 간절히 바랐다. 내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면서 한 발씩 성장하는 나의 삶을 원했던 것이다. 그렇게 마음먹고 나서야 아무 느낌 없이 무감하게 지나쳤던 집 앞의 목련꽃이나 거리의 플라타너스가 눈에 꽉 차 들어왔다. 그들의 빛깔도 꽃 모양도 모두가 다르다는 것이 느껴졌다. 알 수 없는 안도감에 숨쉬기가 한결 편안해졌다. 그러나 이후의 내 삶이 물 흐르는 듯했던 것은 아니었다. 일하면서 사회적 편견과 장벽과 부족한 능력을 절감하며 또한 아이 때문에 포기하고 싶을 적도 많았다. 그때마다 그때의 캄캄, 암담했던 ‘자폐의 시간’이 떠올랐다. 혼돈과 고립의 긴 시간 속에서도 꿈틀거리면서 그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는 생각에 밤을 새우던 수많은 날을 떠올렸다. 돌아갈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것이라면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포기란 자기 안의 무수한 가능성을 폐기하는 것이며, 자기 삶이 서서히 녹슬어가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존재에 대한 가장 지독한 나태와 무례함이다. 서른 이후 줄곧 NGO 영역에서 일했다. 당연히 돈 버는 것도, 번듯한 직책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삶을 선택했으므로 열정과 자부심을 품고 살았다. 아주 작은 능력이지만 가난과 차별로 고통받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에 쓰여진다는 것이 행복했다. 내 존재를 신뢰하고, 탐구하고 열망하면서 삶을 주도하며 살고 있다는 충만감이야말로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가장 근사한 보상이다. 내가 포기하고 싶을 때 희망을 주는 것은 언제나 사람이었다. 나라면 주저앉았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기꺼이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을, 자신의 작은 것을 기꺼이 나눌 때 자신이 먼저 행복해진다는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따뜻하게 손 내밀어주는 사람들을 만날 때 기운을 얻는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희망으로 마음이 밝아진다. 그런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해준, 포기와 절망의 순간을 넘어서게 한 지난 시간들에 고마움을 갖는다. 삶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 살면서 희망과 좌절이 언제 올지 예측하고 계량할 수는 없다. 어쩌면 자신의 기대와 소망을 비껴가는 일들을 겪으며 사는 게 삶일지 모른다. 삶은 ‘해답이 찢겨나간 문제집’처럼 굽이굽이 휘어진 길을 돌아가면서 돌부리도, 신작로도, 막다른 골목도 만나는 일이다. 다만 그것이 어떤 길이든지 걸음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사는 것이 그러한 길의 연속이라는 마음을 가질 때, 두렵고 포기하고 싶은 바로 그 일을 대담하게 해낼 때, 자신을 에워싼 힘든 조건과 고정관념에 굴복하지 않을 때 삶은 달라진다. 삶을 다르게 만들어 본 사람은 어떤 길에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어떤 길이어도 그건 삶의 기꺼운 도전이 된다. ‘삶의 어느 한 점에 묶여 있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한’ 삶은 달라진다고 한다. 다음 길목에서 만나게 될 무엇이든지 계속 걷는 사람은 다시 반복되지 않을 지금을 사랑하며 몰입한다. 지금 여기에 몰입하며 나아가는 삶은 성장한다. 오늘의 내 모습은 내일의 나를, 내일의 나는 미래의 나를 만드는 삶의 정직한 연결고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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