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마라토너 차승우

 


신문과 방송을 통해 그의 기사를 보았지만 정작 그가 시각장애인인지 몰랐다. 동그란 두 눈에 해맑게 웃는 모습 속에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말 장애인 맞아?" 라는 말이 나올 것이다. 최근 하이서울마라톤과 국제평화마라톤에서 풀코스를 완주하고 전문 마라토너도 하기 힘든 트라이애슬론(수영,사이클,달리기)을 완주한 그를 만났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뒤늦게 시각과 청각 장애를 알다


2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난 차승우씨는 선천적으로 시신경에 문제가 있어 어렸을 때부터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영양실조인줄 알고 음식만 조절하면 되겠지 하고 방치하다가 16살 때 국립의료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니 시신경위축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5Km를 혼자 걸어서 초등학교를 다녔고 맨 앞자리에 앉아 칠판에 써 놓은 글씨를 보려고 일부러 머리를 앞으로 당기면서 수업을 받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정형편 때문에 차승우씨는 일찍 일을 해야 했다. 가족들을 위해 섬유회사를 10년 동안 다녔다. 그러던 중 20대가 되면서 갑자기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것을 알게 됐다. 조용한 곳에서는 그래도 사람 소리를 알아 들을 수 있었는데 주위에 사람이 많으면 소리를 집중할 수 없어 가까이에서 이야기하는 것 조차 들리지 않았다. 88년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차승우씨는 깊은 슬픔에 빠졌다. 이 때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라고 말한다. 가난과 아버지의 죽음, 가족의 슬픔으로 인해 그에게 비친 세상은 시각장애 그 자체인 암흑이었다.



차승우씨는 한번도 자신이 장애인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 장애의 굴레에 빠지지 않고 살아가는 힘이 되었을 지 모른다. 96년 중학교 검정고시를 붙으면서 차승우씨는 뒤늦게 학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가족과 독립: 홀로 세상과 만나다

2000년 차승우씨는 지금 살고 있는 수서동 임대아파트로 독립하게 되었다. 낯선 환경, 1cm 앞은 잘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모든 것이 생소하고 두려웠다. 1주일에 한번 정도 복지관에서 와서 청소를 해주는 것 이외에는 씻고 입고 요리하는 모든 것을 혼자의 힘으로 해내야 했다. 그렇게 차승우씨는 작은 지팡이 하나로 6년 동안 세상과 만나며 살아오고 있다. 내가 누울 수 있는 곳이 있고 샤워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행복하다고 하는 그에게 걱정은 정말 없는 것만 같았다.


마라톤 시작: 자원봉사를 하며 시각장애인 이용술씨를 만나다

2001년 안마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2년 동안 차승우씨는 안마기술을 배웠다.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보다 어느 정도 앞을 볼 수 있어서 행운이라고 하지만 오해를 받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동그란 두 눈을 뜨고 있어 시각장애인이 아닌데 안마를 하는 것은 아니냐 하는 경우도 있었고 길을 물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그냥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차승우씨는 자기보다 더 안 보이는 사람들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시각장애인 이용술씨를 만나 여의도에서 10Km를 달리는 것을 시작으로 그는 처음으로 마라톤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2002년도 동아마라톤(서울국제마라톤) 풀 코스 완주

이용술씨와 함께 거제도, 수안보 등 지방 마라톤대회에 참가(풀코스)하면서 차승우씨는 점점 달리기에 자신이 붙기 시작했고 기록에 도전하고 싶은 열망에 2002년도 동아마라톤대회에 출전하여 4시간 13분의 기록으로 골인하게 되었다. 힘들고 어려웠지만 빨리 가서 쉬고 싶은 생각에 이를 악물고 달렸다고 한다.

한약냄새가 나면 여기가 제기동이구나, 강물 냄새가 나면 여기가 한강 둔치구나, 산길을 달리다 보면 가을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100Km 울트라마라톤 완주

한번은 하프코스를 달리다가 도로 옆에 나 있는 경계턱에 부딪쳐 넘어졌다. 20 분 정도 쓰러져 있자 구급차가 와서 싣고 간 일도 있었다.

2005년 부산에서 열린 100Km 울트라 마라톤에 참가를 했는데 저녁 9시에 출발해 다음날 정오까지 달리기를 했다. 14시간 54분 동안 졸린 눈을 뜨며 달리고 또 달렸다. 이날 대회가 1월에 열렸는데 아침에 눈이 쏟아져도저히 달릴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고 주위에서는 택시 타고 가라고 했지만 차승우씨는 만류를 뿌리치고 끝까지 완주한 뒤 눈 위에 누울 거라고 다짐하며 100Km를 완주했다. 골인점에 도착하자 마자 차승우씨는 큰 대자로 쓰려졌다. 간호사가 차승우씨에게 달려와 혹시 어떻게 된 줄 알고 맥박을 재고 살피는 가운데 차승우씨는 조용히 눈을 뜨고 미소로 괜찮다고 답했다고 한다.


개구리소리,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달린다

사람들은 보통 지나치기 쉽지만 차승우씨에게는 자연이 주는 소리와 냄새가 늘 새로운 모습을 다가온다. 광주에서 열린 100Km 울트라 마라톤에서도 도로를 달리면서 들리는 저녁 풀벌레 소리, 개구리 소리가 아직까지 귓가에 생생하다고 한다.





장애인으로서는 국내 최초로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하여 완주

철인 3종 경기는 수영, 사이클, 마라톤 세 경기를 완주하는 스포츠이다. 차승우씨는 2005년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하기 위해 우리나라 철인 3종 경기의 간판스타인 박병훈씨에게 훈련을 받았다. 대관령 99고개를 넘는 사이클 대회가 있었는데 차승우씨는 이 곳에서 박병훈씨의 도움을 받으며 달리고 또 달렸다. 비장애인도 사이클을 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구불구불한 도로를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장애인이 탄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고 하는 일이다. 보통 장애인들이 사이클을 타려면 한 차선 정도를 확보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어디로 넘어질 지 모른다고 한다. 그런 힘든 상황에서도 차승우씨는 페달을 힘껏 밟았다고 한다.

수영 또한 그 동안 한번도 해보지 않아 물에 들어가면 거의 맥주병처러 가라앉았는데 6개월 연습한 결과 자신이 붙었다고 한다.

이런 연습을 결과 차승우씨는 올해 3월 천안에서 열린 듀애슬론(사이클,마라톤)에 도전해 완주를 했다.

6월에는 통영에서 열린 트라이애슬론(수영,사이클,마라톤)에 도전하여 장애인으로는 처음으로 완주를 했다.


왜 달리는가? : 지치고 힘들 때 달리면 행복하다

저마다 사람들은 취미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또한 어렵고 힘들 때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 또한 사람들마다 다르다. 차승우씨에게 왜 달리냐고 물으면 그는 달리면 행복하다고 대답한다. 앞을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압이나 무엇을 듣는 것 외에는 시각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어쩌면 그가 힘들고 외로울 때 달리면서 자연과 만나고 그 자연 속에서 작은 행복을 찾는 것이 그에게 있어서는 커다란 행복인지 모른다. 마라톤이 아니더라도 5Km, 10Km를 꾸준히 달리다 보면 자연이 주는 좋은 향기를 맡을 수 있다고 한다.





(사진 동아일보 제공)



소박한 꿈: 좋은 배우자를 만났으면 그리고 함께 달렸으면……

현재 차승우씨는 1주일에 5일 카이로프락틱 교육을 받고 있다. 또 프리랜서로 지압을 통해 생활비를 벌고 있다. 욕심은 없다고 한다. 한 달에 생활할 수 있는 최소 비용만 있고 자신을 이해해주고 옆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배우자를 만나면 좋겠다고 한다. 아직 소년처럼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부끄럽고 쑥스러워한다.





2007년도 보스턴 마라톤대회에 출전해 보고 싶다

아직 해외 마라톤 출전 경험이 없는 차승우씨는 꼭 한번 보스턴마라톤대회를 참가해보고 싶어한다. 그것이 국제대회라는 의미보다는 마라토너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달려보고 싶은 대회이고 국내에서 달리는 것과는 다른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올해 하이서울 마라톤대회와 국제평화마라톤에서 풀 코스를 완주한 그는 지금 최적의 컨디션에 있다. 그 동안 도전과 기록을 위해 달렸다면 이제는 달리면서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했으면 한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을 얻기보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뛰고 싶다고 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세상 속에서 그가 꿈꾸는 세상이 과연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시각장애인도 이렇게 달릴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장애인들에게 큰 힘을 줄 수 있고 또한 자신이 푸르메재단을 홍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기꺼이 달린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돌아가는 경제적인 혜택이나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는 자신이 그렇게 달림으로써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한다.


장애인 마라토너에 대한 배려

해마다 장애인 마라톤이 전국에서 열린다. 이럴 때마다 장애인들이 이동할 수 있는 차량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기업이나 단체나 정부에서 이런 대회 때 차량지원을 해줄 수 있다면 좋겠고 가능하면 많은 장애인들이 참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으면 한다고 조심스럽게 부탁을 했다.





그와 헤어지면서 우리는 그를 볼 수 있지만 그는 우리를 자세히 보지는 못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의 웃는 모습과 순수한 모습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비쳐지는지 그는 잘 모를 수 있다. 그가 장애인이든 장애인이 아니든 그의 웃음은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편견을 지우게 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가 20대에 평생 소원이 욕실에서 샤워하는 것이 꿈이었는데 그 꿈이 지금은 이루어졌다. 40대에 그가 바라는 꿈이 일상의 소박함에 있는 것을 볼 때 우리는 너무 많은 욕심 속에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든다.


푸르메재단 임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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