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형 장애인 개인예산제로 새로운 미래 여는 두 사람의 이야기

내가 원하는 삶, 내가 직접 그려갑니다
서울형 장애인 개인예산제로 새로운 미래 여는 두 사람의 이야기


8월의 어느 날, 서울 문정동의 한 전시장에 그림 33점이 걸렸습니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온 작가의 꿈을 담은 작품들입니다. 전시장에 자신의 작품을 하나씩 내걸며 지체장애를 가진 송인식(71) 씨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해냈구나. 꿈을 이뤘구나.’


같은 시간, 누군가는 깊은 바다를 향해 조금씩 나아갔습니다. 프리다이빙 자격 심화 과정에 도전하는 청각장애인 구철영(52) 씨입니다. 좋아하는 운동을 배우는 데서 멈추지 않고, 전문 강사로 성장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바다를 누빌 기회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품었습니다.


‘서울형 장애인 개인예산제’를 통해 새로운 삶을 열어가는 구철영(왼쪽)・송인식 씨.‘서울형 장애인 개인예산제’를 통해 새로운 삶을 열어가는 구철영(왼쪽)・송인식 씨.


이들의 도전 뒤에는 ‘서울형 장애인 개인예산제’가 있습니다. 장애인 당사자가 자신의 욕구와 삶의 목표를 바탕으로 직접 계획을 세우고, 심사를 거쳐 계획 실행에 필요한 예산을 지원받는 제도이지요. 서울시 시범사업으로 올해 3회차를 맞습니다. 시범사업 결과에 따라 내년도에 본사업 시행 여부가 결정됩니다. 심사에 통과한 장애인 당사자는 인당 최대 240만 원의 지원금을 받아 자신이 세운 계획을 실행합니다. 정해진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대신, 자신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고 필요한 지원을 받는다는 점에서 기존의 장애인 지원 제도와 크게 다릅니다.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이용자 구철영·송인식 씨는 이 제도를 통해 각자의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중이지요. 그들이 직접 선택하고 도전한 길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취미가 새로운 가능성으로,
프리다이빙 강사로 새로운 길 개척하는 구철영 씨의 이야기


청각장애를 가진 구철영 씨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1:1 과외와 멘토링을 하는 ‘데프스터디연구소’를 운영합니다. 학습자들과 깊이 소통하며 그들의 성장을 돕는 일이 일상입니다. 틈틈이 수영과 헬스로 건강을 관리하고 여행하며, 그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기도 합니다. 특히 수영은 30년 넘게 해올 정도로 좋아하는 운동입니다. 그가 서울형 장애인 개인예산제로 계획한 것은 ‘프리다이빙 자격 과정’ 수강. 취미로만 그칠 수도 있었던 활동이 이 제도 덕분에 새로운 길로 이어졌습니다.


“필리핀 여행에서 처음 스노클링을 했던 경험이 매우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육지에서는 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언어적 장벽이 있지만, 물속에서는 모두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수어를 사용할 수 있는 청각장애인에게 물속은 더 자유롭게 소통 가능한 공간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때 프리다이빙의 매력을 깨닫고 전문 자격 과정인 AIDA 1·2 과정을 수료했는데, 이번에 서울형 장애인 개인예산제 참여자로 선정되면서 심화 과정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구철영 씨 프리다이빙 모습구철영 씨 프리다이빙 모습


구씨는 이전 서울형 장애인 개인예산제 1·2회차 사업에서 다른 장애인에게 필요한 교육을 제공하는 ‘공급자’로 참여한 독특한 이력이 있습니다. 1회차에는 청각장애인 당사자의 업무 능력 향상을 이끌어 재계약을 도왔고, 2회차에는 또 다른 청각장애인이 새로운 진로를 찾을 수 있도록 다양한 스펙 쌓기를 도우며 멘토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3회차에는 자신이 지원을 받게 되었지요. 구씨는 “1·2회차에 다른 장애인 당사자를 도우며 서울형 장애인 개인예산제의 긍정적인 효과를 몸소 경험했다”며 “이번에는 수혜자로서 책임을 다해 또 하나의 좋은 본보기를 만들고자 신청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가 세운 계획은 프리다이빙 전문 자격 과정인 AIDA 3·4 과정을 이어서 수료하는 것. 이후 프리다이빙 강사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안전하고 특별한 수중 경험을 전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사실 청각장애를 가진 제가 프리다이빙을 배우기란 쉽지 않습니다. 배우고 싶다고만 생각하고 있을 때, 김미림 강사님을 알게 되었지요. 청각장애인 여성으로서 이집트까지 건너가 강사 자격증을 취득한 김미림 강사님의 모습에 용기를 얻어 프리다이빙에 입문했습니다. 의사소통의 장벽 없이 수어로 깊이 있게 소통하며 배울 수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프리다이빙을 교육하는 김미림 강사(왼쪽)와 함께한 모습
프리다이빙을 교육하는 김미림 강사(왼쪽)와 함께한 모습


7월부터 12월까지 6개월간 이어지는 빼곡한 교육 과정을 밟으며 구씨는 이제 더 먼 곳을 바라봅니다. 프리다이빙 강사이자 수상안전요원으로 성장해 청각장애인들에게 프리다이빙의 즐거움을 알리고, 위급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대학 시절 배워놓은 영어와 미국 수어 능력으로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우리 바다의 아름다움을 알릴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프리다이빙을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여행과 바다를 매개로 자연스럽게 만나고 서로의 차이를 넘어설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함께 바다를 누비고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장벽을 허물어가는 선한 연결고리가 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오래 간직한 꿈이 미래로,
전문 화가로의 삶을 계획하는 송인식 씨 이야기


송인식 씨의 하루는 이른 새벽에 시작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고 집안일을 챙긴 뒤 하루의 일정을 계획합니다. 외부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면 붓을 잡습니다. 매일 작품에 전념하는 일상이 그에게는 커다란 행복이지요.


그림은 송씨의 오랜 꿈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전문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데도 대회에 나갈 때마다 상을 받았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느라 한동안 그림을 그리지 못했지만, 2013년 퇴직 후 다시 붓을 들었습니다. 작품을 통해 자신의 삶에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도 컸습니다. 그리고 올해 서울형 장애인 개인예산제를 만나 새로운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내가 직접 세운 계획에 따라 지원받을 수 있다는 제도의 취지가 마음에 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송인식 씨그림을 그리는 송인식 씨


송씨가 세운 계획은 ‘개인전 개최’. 당초 준비하던 것보다 더 큰 규모의 개인전을 열기로 했습니다. “본래는 적은 비용으로도 가능한 수장고 전시(작품을 수장고 내부의 서랍형 트레이에 전시해 관람자가 꺼내보는 형태로 진행하는 전시)를 계획하고 있었어요. 서울형 장애인 개인예산제 덕분에 좋은 전시장에서 더 많은 작품을 선보일 수 있게 됐지요. 한 달 동안 전시에 내걸 작품을 고르고 마무리 작업을 하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제 평생의 꿈을 이뤘으니까요.”


그렇게 지난 8월 3일 서울 문정동의 엠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이 시작됐습니다. 준비한 작품은 모두 33점. 지금까지 여러 차례 전시에 참여했지만, 이번처럼 비중 있는 개인전은 처음입니다.


8월 3~31일 서울 문정동 엠아트센터에서 진행된 ‘송인식 개인전’ 현장8월 3~31일 서울 문정동 엠아트센터에서 진행된 ‘송인식 개인전’ 현장


서울형 장애인 개인예산제의 가장 큰 특징은 장애인 당사자의 ‘자기주도성’입니다. 계획을 짜고 전시를 여는 과정에서 송씨의 역할이 매우 컸습니다. 전시 공간인 엠아트센터를 찾아내고 관계자들과 소통하며 전시 견적을 알아보는 등 일련의 일들을 직접 해냈습니다.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은 송씨의 구상을 바탕으로 필요한 질문을 던지고 계획을 구체화하는 과정을 도왔지요. 서연정 지역포괄촉진부 부서장은 “오랫동안 간직한 그림에 대한 열정, 앞으로 전문 작가로 살아가고 싶다는 꿈, 그리고 그 꿈을 이루고자 하는 송인식 님의 강한 의지를 계획서에 잘 담아내고자 노력했다”고 말했습니다. 송씨는 “서연정 부서장님을 비롯해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의 여러 선생님이 도와준 덕분에 저는 그림과 전시 준비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고 감사를 표했습니다.


송인식 씨가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서연정 부서장과 대화하고 있다.
송인식 씨가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서연정 부서장과 대화하고 있다.


송씨는 서울형 장애인 개인예산제를 두고 ‘적재적소’라고 평합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지원이 가장 적절한 순간에 꼭 맞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전시를 준비하며 작품에 제 삶과 마음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낸 자신이 자랑스럽고, 정말로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지요. 다른 장애인에게도 이러한 기회가 많이 생기길 바랍니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개인에게 꼭 맞는 지원으로 ‘나다운 삶’ 만들어가는 제도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서울형 장애인 개인예산제를 담당하는 엄한나 상담가족지원팀장은 “이용자와 함께 계획을 세울 때는 무엇보다 장애인 당사자가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어떤 경험을 해왔는지, 장애로 인해 어떻게 삶이 달라졌는지, 그동안 어떤 꿈과 욕구가 있었는지를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야 당사자의 삶과 깊이 연결되는 의미 있는 목표와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엄 팀장은 “한 번 만나면 4~5시간씩 대화할 정도로 심도 있는 상담을 진행했다”며 “대면 상담 외에도 온라인으로 끊임없이 의견을 주고받으며 당사자의 생각을 계획서에 담아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회복지사의 역할은 계획을 대신 세워주는 게 아닙니다. 당사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며 스스로 원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지요. 구철영・송인식 씨의 사례에서 보듯 장애인 당사자가 주도권을 가지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목표와 계획을 세워 실행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푸르메재단 산하기관인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은 서울형 장애인 개인예산제를 위해 4년 전부터 3년차 이상의 사회복지사 10여 명으로 구성된 전담 TF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이 보통의 삶을 누리도록 사회 변화를 이끌어간다는 푸르메재단의 미션과도 꼭 맞는 제도이기에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서울형 장애인 개인예산제는 단순히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는 제도가 아니에요.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꿈을 다시 시작하게 하고, 좋아하는 일을 새로운 직업과 자립의 가능성으로 연결하면서 삶의 변화를 일으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장애인 당사자가 지원의 대상에만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삶을 직접 계획하고 선택하는 주체가 된다는 것이지요.”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엄한나 팀장(오른쪽)과 상담 중인 구철영 씨.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엄한나 팀장(오른쪽)과 상담 중인 구철영 씨.


송인식 씨는 이번 개인전을 계기로 지역 화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더 알리고, 앞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작가 활동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구철영 씨는 전문 프리다이빙 강사로 성장해 다른 사람의 안전을 지키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새로운 기회를 만들고 싶어 합니다. 두 사람이 걸어가는 길은 서로 다르지만, 출발점은 같습니다.


‘나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서울형 장애인 개인예산제는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세운 계획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함께합니다. 사람마다 필요로 하는 것이 모두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지원도 똑같은 내용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없지요. 정해진 틀에 사람을 맞추는 게 아니라 당사자의 삶에 꼭 맞는 지원을 하는 것.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나다운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서울형 장애인 개인예산제가 만들어가는 변화입니다. 그 변화의 중심에서 푸르메재단과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이 늘 함께하겠습니다.


글= 오선영 부장(마케팅팀)
사진= 푸르메재단


상세보기
X

개인정보 수집 · 이용에 대한 동의

1. 수집항목: 이름, 이메일, 성별, 연령

2. 수집 이용 목적: 광고성 정보 발송(푸르메재단 소식 등)

3. 보유 이용기간: 동의 철회 시까지

4. 개인정보 처리위탁

제공대상 개인정보 이용목적 개인정보 항목
스티비 이메일(뉴스레터) 발송 이름, 이메일, 성별, 연령
㈜더블루캔버스 뉴스레터 신청 이름, 이메일, 성별, 연령

5.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동의 거부권이 있으나 거부 시에는 뉴스레터 서비스 이용이 불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