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에서 피어난 따뜻한 변화

만남에서 피어난 따뜻한 변화


발달장애인과 서울대 의대생이 함께하는 ‘사회와 의료현장에서의 리빙랩’


“하나, 둘, 셋!” 구령에 맞춰 팔을 뻗고 몸을 움직이자 웃음소리가 번집니다. 서로의 서툰 동작에 웃고, 옆 사람의 자세를 따라 하며 박수를 보냅니다. 처음 만났을 때의 어색함은 사라지고, 서로를 부르는 다정한 목소리가 공간을 채웁니다. 지난 5월 14일, 과천시장애인복지관에서 열린 ‘사회와 의료현장에서의 리빙랩’ 네 번째 만남의 현장. 발달장애 당사자들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생들은 이날 함께 운동하며 건강을 돌보고, 마음의 거리도 한 걸음 더 좁혔습니다.


과천시장애인복지관에서 '사회와 의료현장에서의 리빙랩' 수업에 참여한 발달장애인들과 서울대 의대 학생들이 함께 운동하고 있다.과천시장애인복지관에서 '사회와 의료현장에서의 리빙랩' 수업에 참여한 발달장애인들과 서울대 의대 학생들이 함께 운동하고 있다.


‘사회와 의료현장에서의 리빙랩'(이하 리빙랩)은 푸르메재단 산하기관인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이 4년 전부터 서울대 의과대학과 함께 운영해 온 특별한 수업입니다. 의대생들이 15주에 걸쳐 지역사회에서 발달장애인과 1대 1로 만나 일상을 함께하며, 장애에 대한 이해와 공감, 소통의 방법을 배우는 실천형 교육 과정입니다. 전공선택 교과목으로 서울대 의대생들이 직접 선택해서 듣습니다. 올해부터는 과천시장애인복지관도 함께하며 배움의 현장을 넓히고 있지요. 올해까지 발달장애인 37명, 서울대 의대생 37명이 이 과정을 거쳐 갔습니다.


서로 살피고 배려하는 마음 자연스럽게 싹터


이날 프로그램은 건강을 주제로 한 신체활동으로 진행됐습니다. 강사의 지도에 따라 스트레칭부터 맨손운동, 밴드 운동까지 다양한 동작을 함께했지요. 의대생 채예은 씨는 운동하는 내내 “언니, 손 안 아파요?” “밴드를 좀 살짝 잡아볼까요?”라고 물으며, 짝궁인 이혜원 씨와 페이스를 맞췄습니다. 예은 씨는 “처음에는 언니(혜원 씨)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며 “하지만 고민과 욕심을 내려놓고 편하게 친구처럼 대하니 더 좋은 관계를 쌓을 수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혜원 씨 역시 “오늘 짝궁이랑 같이 운동해서 재미있었다. 다음에 또 만나고 싶다”고 말하며 밝게 웃었습니다.


과천시장애인복지관에서 '사회와 의료현장에서의 리빙랩' 수업에 참여한 발달장애인들과 서울대 의대 학생들이 함께 운동하고 있다.


운동하는 틈틈이 서로의 일상에 대한 대화도 오갔습니다. “진우 님, 지난번에 약속한 거 기억나요? 하루 20분 산책하고, 단 음식 줄이기로 했잖아요. 잘 지켰으면 하이파이브!” 백진우 씨가 약속을 잘 지켰다며 자신 있게 손을 들자, 짝궁인 의대생 이상준 씨가 경쾌하게 손바닥을 마주칩니다. 절친한 사이로 보이지만, 두 사람이 처음부터 가까웠던 것은 아닙니다. “지난 시간까지 만날 때마다 진우 님이 저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대해서 사실 조금 서운했어요. 그런데 오늘은 진우 님이 제게 먼저 손 내밀어주고 처음으로 눈도 마주쳤어요. 더디지만 분명하게 변하고 있음을 알고 나니 진우 님과의 활동이 점점 더 기대됩니다.”


함께 소풍 계획을 짜고 있는 발달장애인과 서울대 의대 학생 모습함께 소풍 계획을 짜는 발달장애인과 서울대 의대 학생 모습


운동을 마친 뒤에는 짝궁과 함께 오는 6월 1일 예정된 소풍 계획도 함께 세웠습니다. “양재천에서 달리고 뭐 먹을까요?” “잡채 재료는 어디서 살까요? 주로 다니시는 마트는 어디예요?” “수육 좋아해요? 대공원 가서 같이 먹어요!” 짝궁끼리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으며 분위기는 금세 들떴습니다. 태블릿과 휴대폰을 꺼내 하고 싶은 것을 메모하거나 지도 앱을 열고 동선을 점검하며 일정을 정했습니다. 과천 지역에 대해 잘 모르는 학생들을 위해 발달장애인들이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기도 했지요.


‘봉사’ 아닌 서로에게 배우는 시간


리빙랩 수업이 특별한 이유는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은 책이나 강의실에서 배울 수 없는 ‘사람을 이해하는 법’을 익힙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을 막연한 대상이 아니라, 저마다의 성격과 취향, 감정을 지닌 한 사람으로 만나게 됩니다.


함께 소풍 계획을 짜고 있는 발달장애인과 서울대 의대 학생 모습


의대생 조형준 씨는 “강의계획서를 보면서 고등학교 때 했던 ‘봉사활동’과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수강신청을 했다”며 “막상 수업을 듣고 같이 활동하다 보니 봉사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짝궁과의 활동을 통해 제가 더 많은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전했습니다. 형준 씨와 짝을 이룬 김민수 씨 역시 “서로 대화가 될지 걱정했는데 짝궁이 먼저 친근하게 다가와 주어서 좋았다”며 “둘 다 운동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찾으니 대화가 잘 통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는 기회도 됐습니다. 의대생 정승윤 씨는 “발달장애인을 직접 만난 적이 없고 미디어로만 접했기에, 어떤 돌발상황이 생기지는 않을지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며 “그러나 짝궁(윤여득 씨)과 함께 활동하면서 그런 마음이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감정이 풍부하고 자신에게 솔직한 여득 형님의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제가 배울 점이 많다고 느꼈어요. 여득 형님과 진정한 친구가 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도 많았습니다. “몇 번을 만나도 눈도 안 마주치고 대답도 안 하는 발달장애인 짝궁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고충을 토로하는 학생도 있었지요. 하지만 학생들은 장애인을 만나면서 서로 소통하고 교감하는 데는 ‘언어’ 말고도 다양한 방법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 수업을 기획한 서울대 의대 손호준 교수는 “의과대학의 커리큘럼을 보면 의학의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는 과정은 체계적이지만,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법을 알려주는 과정은 부족하다고 판단해 2023년 이 수업을 시작했다”며 “발달장애인 분들과 함께하면서 상대방의 속도에 맞춰 기다리는 것, 말이 잘 통하지 않더라도 눈빛과 표정, 작은 몸짓으로 상대방의 변화를 알아채는 경험 등이 학생들에게는 모두 다 배움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리빙랩 수업 후 그날의 활동 내용과 배운 점을 공유하는 손호준 서울대 의대 교수와 학생들 모습.
리빙랩 수업 후 그날의 활동 내용과 배운 점을 공유하는 손호준 서울대 의대 교수와 학생들 모습.


리빙랩 수업을 시작한 지 4년. 수업의 교육적 가치에 공감한 푸르메재단과 서울대 의과대학은 의학교육과정 전반에서 협력을 확대하기 위한 업무협약도 맺었습니다. 앞으로 사회참여형 교과목 운영, 봉사·연구 활동, 현장실습, 인적 교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손을 맞잡고, 장애와 사회 문제를 이해하는 미래 의료인을 함께 길러갈 계획입니다.


의료는 병을 고치는 기술이지만, 좋은 의료는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과천시장애인복지관 교육실을 가득 채운 웃음소리와 응원의 박수, 서로를 부르는 다정한 목소리는 그 사실을 다시 보여주었습니다. 작은 만남에서 시작된 변화가 언젠가 진료실과 병원, 우리 사회 곳곳을 더 따뜻하게 바꾸어 갈 것입니다.


글=오선영 부장(마케팅팀)
사진=푸르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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