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메는 우리의 버팀목” 권은영 가족 이야기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10주년]


“푸르메는 우리의 버팀목”
권은영 가족 이야기


서울 종로에 푸르메센터가 문을 연 2012년, 유전성 강직성 하반신 마비 장애를 가진 다섯 살 은영이가 엄마 노효선 씨의 손을 잡고 찾아왔습니다. 그로부터 14년. 올해 만18세가 되는 은영이는 길고 긴 재활의 길을 푸르메와 함께 걸었습니다. 열한 살까지는 푸르메재활의원(현 푸르메어린이발달재활센터)에서, 이후로는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에서 치료받았지요. 은영이와 가족들은 그 오랜 시간 푸르메에 힘을 보태준 고마운 기부자이기도 합니다. 많은 아이가 좋은 환경에서 제때 알맞은 치료를 받을 수 있기를 바라며 부모님과 은영이, 오빠는 물론 양가 조부모님까지, 온 가족이 한 달도 빠짐없이 기부를 이어왔습니다. 가족의 기부액은 1천만 원을 훌쩍 넘습니다.


2016년 기적처럼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통합형 어린이재활병원.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이하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은 장애어린이와 그 가족들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개원 10주년을 맞은 오늘, 은영이와 엄마 노효선 씨의 이야기를 통해 알아봅니다.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에서 만난 노효선 씨와 은영이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에서 만난 노효선 씨와 은영이


Q 푸르메와 인연을 맺은 순간을 기억하시는지요? 처음 푸르메재활의원과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을 찾았던 날, 가족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궁금합니다.


- 2012년, 처음 푸르메재활의원을 찾았던 날을 잊지 못해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2층에 펼쳐진 풍경 때문이었죠. 병원의 차갑고 딱딱한 분위기 대신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놀고 쉴 수 있는 아기자기한 공간이 바로 보였거든요. ‘아, 여기서라면 우리 아이가 겁먹지 않고 치료받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참 따뜻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치료를 기다리는 시간조차 은영이에게는 즐거운 일상이었어요. 도서관에서 동화책을 넘겨보고, 놀이 공간에서 흔들말을 타며 웃던 모습들. 특히 기린 인형 옆에서 사진을 찍던 은영이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곳은 우리 가족에게 고단한 치료실이 아니라, 아이가 아이답게 머물 수 있었던 고마운 쉼터였습니다.


Q 은영 양이 오랜 기간 치료를 받아오면서 가족이 ‘정말 많이 달라졌구나’ 하고 가장 크게 느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작아 보여도 가족에게는 특별했던 변화를 들려주세요.


- 은영이는 그림을 그려요. 하지만 처음에는 그 큰 도화지에 점 하나를 찍고 선 하나를 긋는 일조차 은영이에게는 온 힘을 다해야 하는 고된 과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참 신기한 변화가 나타났어요. 그 큰 도화지에 바탕색을 꼭꼭 채워 그리고, 그 위에 보고 느낀 것들을 자신만의 속도로 그려나가기 시작했거든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끈기와 집중력이 가장 특별한 변화였어요.


눈사람을 좋아하는 은영이가 자신과 친구들의 모습을 눈사람으로 표현한 그림눈사람을 좋아하는 은영이가 자신과 친구들의 모습을 눈사람으로 표현한 그림


Q 푸르메와 함께한 시간 가운데 지금도 또렷하게 떠오르는 장면이 있나요. 치료사 선생님의 한마디, 은영 양의 반응, 가족이 함께 웃거나 울었던 순간처럼요.


- 다섯 살부터 열한 살까지 푸르메재활의원에 다녔고, 열두 살부터 열다섯 살까지는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에서 치료받았습니다. 푸르메에서 치료받은 시간이 긴 만큼 여러 가지 추억이 생각납니다. 푸르메센터에서 매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열린 ‘푸르메 작은음악회’는 우리 가족에게 가장 따뜻하고 벅찬 추억입니다. 치료받는 아이들과 치료사 선생님들이 서툰 몸짓으로 노래와 율동을 연습해 무대에 올랐죠. 은영이가 오빠 영진이와 함께 무대에서 ‘예쁜 아기 곰’을 부르던 모습, 그때의 떨림과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에서 치료받을 때도 병원에서는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나 이벤트를 마련해주셨어요. 병원에서 같이 재활치료를 받는 아이의 아버님이 사진작가(박성관 작가)셨는데, 그분의 재능기부로 아이들이 모델처럼 멋진 사진을 찍기도 했지요. 재활치료 받는 모습도 예쁘게 사진으로 남길 수 있었고요. 또 미술대회에 참여한 것도 기억에 남아요. 그 대회에서 은영이가 대상을 받았거든요.


은영이는 ‘푸르메 작은음악회’의 추억을 담은 그림으로 2021년 푸르메 어린이그림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은영이는 ‘푸르메 작은음악회’의 추억을 담은 그림으로 2021년 푸르메 어린이그림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또 푸르메센터 옥상에는 아주 특별한 공간이 있었어요. 바로 성악가 조수미 선생님이 기부해 주신 ‘휠체어 그네’였죠. 은영이가 그 그네를 종종 탔는데, 그 인연을 계기로, 은영이와 저희 가족이 넷플릭스 프로그램 <테이크 원(Take 1)> 조수미 선생님 편(1회)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Q 재활치료는 길고 지치는 과정인데, 치료를 이어가며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였나요? 그 시간을 버티게 해준 힘은 무엇입니까?


- 재활은 끝이 없는 길입니다. 그 길 위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아이의 ‘성장’이 오히려 ‘퇴행’처럼 보이던 청소년기의 시작 무렵이었습니다. 어릴 땐 벽에 기대어 서고, 골반만 잡아주면 걷던 은영이가 키가 크고 뼈가 자라면서 근육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관절이 굳기 시작했어요. 휠체어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예전에 하던 동작들이 안 될 때, 부모로서 느끼는 무력감은 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더 절망적인 것은 치료 환경이었습니다. 청소년이 되면 갈 수 있는 병원은 손에 꼽을 정도고, 1년 치료받기 위해 2~3년을 대기해야 합니다. 은영이도 중학교 때 치료가 끊겼다가 최근에 다시 순번이 왔지만, 올해 만18세가 되면 이마저도 마지막 치료가 됩니다. 아이는 자라는데 치료의 문턱은 더 높아만 가는 현실이 가장 가슴 아픈 부분입니다.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 홍지연 부원장(맨오른쪽)의 진료를 받는 은영이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 홍지연 부원장(맨오른쪽)의 진료를 받는 은영이


제 개인적으로는 두 번의 암 투병을 겪으며 한계를 느꼈습니다. 2015년 갑상선암, 그리고 2024년 소장암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제 몸보다 ‘은영이는 누가 돌보나’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이 지독한 시간을 버티게 해준 건 가족이었습니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은영이를 돌보기 위해 애써준 남편, 그리고 자식과 손주를 위해 헌신해 주신 친정 부모님이 계셨기에 제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 자리를 빌려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장애아이의 성장이 고통이 되지 않도록, 그리고 부모가 아플 때 가족의 희생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국가와 사회의 공적인 돌봄 시스템과 지속 가능한 재활치료 또는 재활운동 시스템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함께 짊어져야 할 몫이기 때문입니다.


Q 은영 양 가족은 푸르메에서 치료를 받는 가족이면서 동시에 기부자이기도 한데요. 치료받는 입장에서 병원에 바랐던 점과 기부를 이어오게 만든 마음은 어떻게 맞닿아 있었나요?


- 저희 부부와 은영이, 영진이가 기부를 시작했을 때, 친정 부모님과 시부모님께서도 망설임 없이 동참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온 가족이 기부자가 된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우리가 푸르메에서 누린 이 좋은 환경과 따뜻한 추억들이, 우리만 누리는 '특별한 행운'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왼쪽)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있는 은영이, (오른쪽)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에서 박성관 작가가 촬영해 준 은영이 모습 
(왼쪽)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있는 은영이, (오른쪽)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에서 박성관 작가가 촬영해 준 은영이 모습 


재활치료를 받는 당사자 가족으로서 가장 가슴 아픈 말은 ‘재활 난민’이라는 단어입니다. 치료 받을 곳을 찾아 전국을 떠도는 아이들이 더는 없어야 합니다. 은영이가 이곳에서 웃으며 치료받고, 미술대회에 나가고, 음악회 무대에 섰던 것처럼, 다른 모든 장애아이도 집 가까운 곳에서 이런 기회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에게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은 단순히 아픈 곳을 고치는 공간을 넘어, 일상이자 따뜻한 추억이 되는 공간이었습니다. 어떤 아이도 치료의 기회 앞에서 소외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다른 장애아이들도 병원이 치료받는 곳이자 따뜻한 추억이 되는 공간이길 바라는 마음과 맞닿아 있습니다.


Q 푸르메재단에서 희귀난치병을 가진 아들과 철인3종경기에 도전하는 ‘은총 아빠’ 박지훈 씨의 강연을 듣고 기부를 결심하셨다고 했는데, 그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 박지훈 씨의 강연을 듣던 날이 생각납니다. 희귀난치병을 앓는 은총이를 위해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하고, 푸르메재단에 기부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깊은 존경심을 느꼈습니다. 같은 장애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그 마음이 얼마나 절박하고, 또 얼마나 사랑으로 가득한 것인지 깊이 공감했어요. 강연을 들으면서 ‘나도 저 따뜻한 마음에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지훈 씨가 은총이를 통해 세상에 용기를 주었듯, 저 역시 우리 아이들에게, 그리고 우리 주변에 작게나마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날의 결심이 우리 가족 3대가 함께 나눔을 실천하게 된 소중한 씨앗이 되었습니다.


Q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이나 푸르메재활의원이 단순히 치료 받는 공간을 넘어 가족에게 특별한 의미로 남은 순간이 있었나요. 예를 들어 “푸르메가 우리에게 이런 곳이구나” 하고 느꼈던 때가 궁금합니다.


- 푸르메는 오랜만에 찾아가도 마치 고향집에 온 것처럼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이 듭니다. 아마도 은영이가 다섯 살부터 이곳에서 치료를 받으며 자라왔고, 우리 가족의 10년 넘는 세월과 추억이 구석구석 쌓였기 때문인 것 같아요.
무엇보다 이곳은 제가 가장 마음을 편히 놓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장애아이 엄마들과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의 고단함을 알아주던 시간이 저를 버티게 했거든요.
의사 선생님과 치료사 선생님들도 단순히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분들이 아니라, 장애아이 가족의 곁에서 함께 걸으며 진심으로 우리를 이해하고 지지해 주는 든든한 동반자였습니다. 세상 밖에서는 가끔 주눅 들거나 설명해야 할 것들이 참 많았는데,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은영이와 제가 온전히 이해받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푸르메는 우리 가족에게 단순히 병원 그 이상의 의미였습니다. 5살 꼬마였던 은영이가 18살 숙녀로 성장하는 동안, 이곳은 우리 가족에게 마음의 안식처이자 언제든 돌아와 쉴 수 있는 고향 같은 곳이 되어주었습니다.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 로비에서 엄마와 함께 그림을 그리는 은영이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 로비에서 엄마와 함께 그림을 그리는 은영이


Q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 10주년을 맞았습니다. 앞으로 이곳이 장애어린이와 그 가족에게 어떤 공간으로 남기를 바라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 이제 10주년을 맞이한 푸르메가 앞으로도 지금처럼, 우리 가족에게 그랬던 것처럼, 다른 장애아이들과 그 가족들에게 안도감과 힘을 주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아이도 치료의 기회에서 소외되지 않고, 어떤 부모도 ‘재활 난민’이라는 이름으로 떠돌지 않도록 푸르메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정리=오선영 부장(마케팅팀)
사진=푸르메재단, 권은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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