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장애인 주거정책의 핵심, 홈쉐어

<장애인 복지, 캐나다에서 길을 찾다>
장애인이 ‘보통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 어떻게 가능할까.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은 푸르메재단 조사단이 그 실마리를 찾아 장애인 복지 선진국 캐나다로 떠났다. 장애인의 노후를 위해 국가가 함께 저축하는 세계 유일의 장애인 적금(RDSP) 제도, 돌봄 제공자와 집을 공유하며 새로운 가족을 형성하는 홈쉐어 제도, 발달장애인을 위한 사회통합형 임대주택 ‘코러스 아파트’ 등 캐나다의 복지 현장을 살펴보고, 진정한 장애인 복지 선진국을 향한 이정표를 제시한다.




<1편>
“당신의 장애 자녀, 제가 데리고 살겠습니다”
캐나다 장애인 주거정책의 핵심, 홈쉐어


초여름의 늦은 오후, 캐나다 밴쿠버시 교외의 어느 큼직한 주택 뒷마당에서 꼬마들이 비눗방울을 쫓아 뛰어다닌다. 상쾌한 바람이 부드럽다. 어른들은 음식을 준비하거나 차양막을 세우느라 분주하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한인 장애 가정을 위한 주말 피크닉이다.
훤칠한 청년 이민석(가명, 32) 씨가 환한 표정으로 중년의 남성과 함께 나타났다. “민석아!” 건너편에서 그 둘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어느 부부가 반갑게 인사하며 다가간다. 민석 씨를 친아들처럼 생각하는 김재식(58) 씨, 그리고 민석 씨의 친부모인 이현 씨 부부다. 이들은 민석 씨를 교집합으로 삼은 ‘가족’이다. 어떤 사연일까?


장애인 부모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짊어지는 제도
자폐성 장애를 가진 민석 씨는 2023년 4월 1일부터 부모 곁을 떠나 김재식 씨의 집에서 살고 있다. 홈쉐어(Home Share)를 시작한 것이다. 여기 브리티시컬럼비아주(BC주)에서 홈쉐어란 ‘가정을 공유한다’는 뜻으로, 장애인이 다른 가정에서 거주하며 보통의 일상을 살아가도록 돕는 제도다. 온타리오주에서는 ‘생활을 공유한다’는 의미로 라이프쉐어(Life Share)라 부른다.
이현 씨 부부는 발달장애인 부모의 절박함에서 홈쉐어를 택했다고 말한다. “민석이는 재활용 분리수거에 꽂혀서 뭐든 사용한 것처럼 보이면 당장 가져다 버려야 직성이 풀렸어요. 중요한 물건까지 마구 버리는 바람에 온 식구가 힘들었죠.” ‘집에서도 이렇게 힘든데 다른 집에 가면 얼마나 더 할까’ 싶어 홈쉐어는 언감생심이었다.
하지만 김재식 씨를 만나 홈쉐어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민석 씨는 놀라운 변화를 보였다. 한인 장애가정 지원기관 ‘히어앤나우(Here&Now)’가 연결해 준 귀인이었다. 아들은 이제 물건을 버리는 강박증도 줄고, 지독한 편식도 사라졌다.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낮활동 프로그램도 잘 다닌다. 김재식 씨 부부가 차분하게 타이르고 가르친 덕분이었다. 이제는 홈쉐어 집을 ‘자기 집’으로 여긴다. 주말에 ‘본가’에 왔다가도 저녁이면 돌아간다. 자고 가라고 권해도 ‘자기 집’이 더 편하다고 손사래 친다.



김재식 씨와 대화 중인 민석(왼쪽) 씨


홈쉐어 서비스의 제공자인 김재식 씨에게 비결을 물었다. “그저 ‘마음’인 것 같아요. 처음에는 당연히 서먹했죠. 민석이가 ‘짐 싸, 짐 싸’ 하며 집에 가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신뢰가 쌓이면서 저희 부부와 깊은 정이 들었습니다.”
그는 2년이 넘도록 민석 씨의 건강과 생활을 매일 기록하면서 부모와 소통하고 있다. 때로는 민석 씨 부모가 ‘민석이를 우리가 맡아줄 테니 휴가를 다녀오라’고 권하기도 한다. 두 가정은 이렇게 민석 씨를 중심으로 ‘따로 또 같이’ 가정을 이루어 조금 특별하지만 평범한 삶을 누리고 있다.



 홈쉐어 집 거실에서 편안하게 쉬고 있는 민석 씨


“내가 없어도 내 아이는 잘 지낼 거예요”
선우(가명, 30) 씨 가족도 홈쉐어를 통해 벼랑 끝에서 희망을 찾았다. 어머니 김수정 씨는 아들을 혼자 돌봐야 하는 처지가 되자 주정부 담당기관의 긴급지원을 통해 홈쉐어 제공자를 소개받았다. 오랜 대기기간 없이 홈쉐어에 연결됐다. 한국에서 통합교육을 경험한 초등학교 교사 출신 장진갑(55) 씨였다.
장 씨는 전직 교사답게 선우 씨의 일상 계획을 야무지게 수립했다. 이른바 ‘개별화 교육계획’을 세운 것이다. 방 정리를 어려워해 서랍마다 ‘약 넣는 곳’, ‘필기구’처럼 표지를 붙였다. ‘해피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하루를 기록한다. 무엇을 먹고, 어떤 활동을 했고, 잠은 잘 잤는지 등을 정리해서 매일 어머니에게 보낸다. 월요일은 한턱내는 날, 화요일은 문화 스포츠의 날, 이런 식으로 주간 활동 계획도 세웠다.
“‘우리 애가 잘 지내고 있구나’ 마음이 놓여요. 50~60% 정도는 생활이 잡힌 것 같아요. 내가 언젠가 세상을 떠나면 손톱은 누가 깎아주고, 옷이나 신발은 누가 챙겨줄지 걱정이었는데, 이제는 아이의 미래에 대해 어느 정도 안심이 됩니다.”
선우 씨는 매일 아침 일어나 스스로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6시 30분에 집을 나서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출근한다. 병원 청소팀 직원으로 한 달에 1,000캐나다달러(한화 약 100만 원)의 월급도 받는다. 당연히 월급 관리도 배운다. 군것질을 얼마나 했는지 영수증도 확인받는다. 당뇨기가 있어서다. 선우 씨는 ‘내가 아빠’라고 생각하는 든든한 동반자와 하루하루를 채우고 있다.



(왼쪽 사진) 홈쉐어 집을 찾아온 어머니와 이야기하는 선우 씨 모습, (오른쪽 사진) 잘 정돈된 선우 씨 의 방


이처럼 감동적이면서도 자못 생소한 이야기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캐나다의 홈쉐어 제도는 BC주와 온타리오주를 중심으로 활성화되어 있다. 특히 BC주가 가장 적극적인데, 2025년 기준으로 약 4,300명의 성인 발달장애인이 훔쉐어를 이용한다. 온타리오주에서도 1,500명의 장애인이 지역사회 가정에서 거주한다. 캐나다에서 홈쉐어는 이미 그룹홈이나 지원주택을 추월해 성인 발달장애인 주거 형태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캐나다 장애인 주거정책의 대세, 홈쉐어
제도적으로 뒷받침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이야기다. 우선 주정부가 홈쉐어 제공자에게 보상을 제공한다. 해당 장애인에게 어느 정도 도움이 필요한지 평가해 최경증(Level 1)부터 최중증(Level 5)까지 매달 1,500~5,300캐나다달러(한화 약 150만~530만 원)를 홈쉐어 제공자에게 지급한다. 대신 ‘홈쉐어 서비스 표준규정’을 제정해 강력하게 모니터링한다. 홈쉐어 제공자는 주정부의 담당기관 CLBC의 가정환경 조사(Home Study)를 통과해야 하고 분기별 방문조사, 수시연락, 교육훈련, 비상시 보고 등 관리감독을 받아야 한다.
2018년 캐나다 상원은 각 주에 “대규모 시설의 시대는 끝났다. 가정과 같은 환경을 통한 지원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권고하며 홈쉐어 프로그램을 최선의 사례로 소개했다. BC주정부 역시 홈쉐어가 장애인의 삶의 질이 높은 모델이자 그룹홈에 비해 지원예산이 절반에 불과한 효율적 정책으로 평가한다. 물론 부모나 전문가가 아닌 일반 시민이 자기 집에서 장애인과 함께 산다는 것은 간단치 않은 일이다. 누구나 예상 가능한 여러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해온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2018년 BC주에서는 54세 다운증후군 장애인 플로렌스 지라드 씨가 홈셰어 가정에서 방임을 당해 굶어 죽은 사건이 발생했다. 이처럼 극단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지만, 사적인 가정에서 은밀하게 발생할 수 있는 학대나 방임을 예방하는 것의 중요성이 대두됐다. 이에 BC주는 연 1회 진행하던 가정방문을 분기당 1회로 늘리는 등 관리·감독 규정을 대폭 강화했다.
한국은 장애인과 그 가족을 위해 홈쉐어를 도입할 수 있을까. 사회적 공감대를 이루고 법적 근거도 마련할 수 있을까. 막막한 느낌이다.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가족 개념, 문화의 차이가 크다. 그럼에도 장애인의 엄마들이 더는 무릎 꿇지 않고, 부모가 떠난 장애인이 보통의 삶을 살아가려면, 우리는 낯선 대안을 마주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글= 정태영 푸르메재단 사무국장
사진= 푸르메재단, 김재식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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