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고 쉬고, 일하고 여행 가고: 독일 발달장애인의 일과 삶

<독일은 어때요?> 5화




"독일은 어때요?" 칼럼니스트 민세리가 한국인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독일에서 16년 넘게 거주하며 특수교육학자, 장애인복지전문가, 통번역가 그리고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현재 박사과정에 있다. 이번 연재칼럼에서는 독일 발달장애인의 일과 삶에 대하여 생생한 현지 소식을 전달하고자 한다.



일하고 쉬고, 일하고 여행 가고: 독일 발달장애인의 일과 삶


"독일 장애인들은 주로 무슨 일을 하나요?"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대답하기 난감하다. 독일에는 '장애인 대표 직업'이 없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직업 선택 폭이 비장애인만큼 넓은 나라가 독일이다.


그 비결은 무엇보다도 이원화 직업교육제도에 있다. 이원화 직업교육제도란 우리나라로 치면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 단계에서 약 3년간 일주일에 2일은 직업학교에서 이론수업을 받고, 나머지 3일은 기업에서 실무교육을 받는 직업교육 및 훈련 제도이다(물론 대학 진학이 목표인 학생은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이 기간에 학생은 사회보험이 적용되는 기업에 직업훈련생으로 고용되어 한화로 평균 150만 원의 월급을 받으며 일을 배우고, 이후 정식 직원으로 채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원화 직업교육제도 속에서 배울 수 있는 국가 공인 직업은 300개 정도다. 분야도 의료·기술·제조·판매·사무·서비스·디지털 등으로 다양하다. 취업 조건으로 대학 졸업장을 우선시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독일은 이러한 직업훈련 수료를 대학졸업장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긴다. 직업에 따라 직업훈련 수료가 대학졸업장보다  우선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직업훈련을 수료한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사회에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으며 직업생활을 할 수 있다. 게다가 독일에는 장애인과 (장애인을 고용한) 사업주를 위한 개인 맞춤형 근로지원서비스가 체계적으로 마련돼 있다.


직업훈련을 받는 독일 장애인의 모습 (출처: Pfennigparade 홈페이지)
직업훈련을 받는 독일 장애인의 모습 (사진 출처: Pfennigparade 홈페이지)


물론 발달장애인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독일에서 발달장애인은 장애인작업장에서 직업훈련을 받고 취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의 장애인보호작업장과 유사한 장애인작업장은 독일에 3천 개가 넘으며, 현재 약 30만 명의 장애인이 근무한다. 이곳에서 장애인은 정년까지 일하고 퇴임할 수 있다. 장애인작업장 수가 워낙 많고 직업 분야와 직무가 매우 세분화되어 있기 때문에 발달장애인은 자신의 흥미와 적성에 맞는 직업 및 직무를 선택하여 평생 일할 수 있다.


독일의 발달장애인은 통합기업에서도 근무한다. 통합기업은 전체 직원의 30~50%가 중증장애인으로 구성된 일반 기업이다. 장애인작업장이 장애인만으로 구성된 특수노동시장에 속한다면, 통합기업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근무하는 일반노동시장에 속한다. 장애인 사회통합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기업 형태로, 많은 장애인이 통합기업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 현재 독일에서 통합기업 수와 통합기업에서 근무하는 발달장애인 수는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예술 작품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장애인작업장에서 근무하는 발달장애인 (사진 출처: Landesverein 홈페이지)
예술 작품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장애인작업장에서 근무하는 발달장애인
(사진 출처: Landesverein 홈페이지)


나는 17년 넘게 독일에 살면서 많은 발달장애인의 삶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그들의 직업과 직무가 다양한 만큼이나 여가생활도 상당히 다채롭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독일 발달장애인은 일하지 않는 주말이나 휴일에 자신이 원하는 여가 및 취미 생활을 한다. 장애인만을 위하거나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각종 여가 프로그램(예를 들어 산책, 등산, 유람선 투어, 농구∙축구∙볼링∙요가 같은 각종 스포츠 활동, 댄스 등)이 잘 발달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법정 휴가일이 25일 정도이기 때문에 1~2주가량 여행을 떠나는 경우도 많다. 그 외 또 다른 활동으로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발달장애인들도 있다.


독일의 대표적인 발달장애인복지단체인 레벤스힐페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여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출처: lebenshilfe 홈페이지) 독일의 대표적인 발달장애인복지단체인 레벤스힐페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여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사진 출처: Lebenshilfe 홈페이지)


며칠 전 나는 지하철에서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어느 발달장애인 남성의 옆자리에 앉았다. 유독 밝은 표정인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몇 차례 눈이 마주쳤다. 남성이 내게 말을 걸었다. "지금 소방 자원 봉사활동 하러 가요!" 그는 자신이 정기적으로 자원봉사를 하는 소방서 견장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며 덧붙였다.
"장애인작업장에 출근하지 않는 날에는 소방서에 가요."
"오늘 날씨가 30도 넘는다고 하던데 고생 많겠어요"라고 내가 다소 걱정스럽게 말하자 남성은 두 손으로 견장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더워도 상관없어요. 제가 좋아하는 일이니까요!"


남성의 부드러운 미소에서 나는 강렬하게 느꼈다. 그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말이다. 이처럼 독일에는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발달장애인이 많다. 그 바탕에는 일과 휴식의 조화가 있다. 우리나라가 발달장애인의 근로생활을 더욱 적극적으로 촉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글, 사진=민세리 칼럼니스트


상세보기
X

개인정보 수집 · 이용에 대한 동의

1. 수집항목: 이름, 이메일, 성별, 연령

2. 수집 이용 목적: 광고성 정보 발송(푸르메재단 소식 등)

3. 보유 이용기간: 동의 철회 시까지

4. 개인정보 처리위탁

제공대상 개인정보 이용목적 개인정보 항목
스티비 이메일(뉴스레터) 발송 이름, 이메일, 성별, 연령
㈜더블루캔버스 뉴스레터 신청 이름, 이메일, 성별, 연령

5.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동의 거부권이 있으나 거부 시에는 뉴스레터 서비스 이용이 불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