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사는 법이 달라진다

양창순(신경정신과 의사)


지난 봄, 철쭉꽃이 흐드러진 공원을 지날 일이 있었다. 똑같은 철쭉꽃 이라도 한 가지 색깔만 쭉 늘어서 피어 있는 곳보다 여러 가지 색깔이 한데 어우러져 피어 있는 곳이 훨씬 더 아름다웠다.


예를 들어, 주황빛이나 분홍빛 철쭉이 한 종류만 피어 있는 곳보다 주황, 연한 분홍, 진한 분홍, 하얀색 철쭉이 함께 어우러져 피어 있는 곳이 더 풍성하고 더 예뻤다. 조금 과장하자면 가슴 울렁거리게 반하는 느낌이랄까. 거기에 아직 미처 다 지지 않은 노란 개나리가 군데군데 어울려 있는 곳은 보기에 더 좋았다.



그러다가 문득, 꽃들은 '넌 나와 종류가 다르니까 혹은 나와 색깔이 다르니까 하면서 서로를 밀어내는 법이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한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린 지금 대단히 정밀한 시대에 살고 있다. 예를 들어, 인공위성이 전세계 구석구석을 훑어내는 솜씨는 가공할 정도다. 첨단 의료장비로 살펴보지 못할 우리 몸의 단면이 없다. 뇌의 구조도 칸칸이 들여다볼 수 있다. 그 칸들이 무슨 일을 하는 지 세세한 부분까지 모르는 게 없을 정도다. 알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건 우리 마음뿐이다. 여전히 들여다볼 수 없는 게 있다고 생각하면 위안이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하필 마음일 땐 어떤 위안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만큼 마음을 알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은 원초적이고 뿌리깊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알고 상대방의 마음을 안다면, 그리하여 서로 완벽하게 진실한 순간을 나눠가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도 누구의 인생이나 지금보다 훨씬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린 웬만해선 내 마음도, 남의 마음도 제대로 알 수 없다. 그래서 티격태격, 오해와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



 꼭 알맞은 처방이 한 가지 있기는 하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 을 하는 것이다. 나의 모습이든 상대방의 모습이든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사는 법이 달라진다. 특히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다면 먼저 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평가하거나 비난하거나 변화시키려고 들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린 상대방이 단지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그를 비난하고 변화시키려고 할 때가 많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대부분 '다르다' 와 ‘틀렸다' 를 혼동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모습 중에서 내 마음에 안드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열에 아홉은 그가 나와 달라서 그런 것뿐이다. 그런데 우린 그것을 상대방이‘잘못하고'있다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난 옳고 넌 틀리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런 생각은 인간관계를 힘들게 하는 가장 큰 갈등 요소 중 하나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 인간관계 - 부부나 부모 자식, 가까운 친구, 조직의 동료나 상사나 부하직원 등을 포함해 - 에서 그와 같은 오해와 갈등이 일어난다.


혹시라도 지금 내 주변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상대방을 원망하고 밀어내기 전에 그와 내가 기질이나 성격, 자라난 환경,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그리고 가능한 한 상대방의 지금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해 보는 것이다. 그런 노력이 조금씩 이어지다 보면 아마 깜짝 놀랄 정도로 인간관계에서 이해가 깊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꽃들도 한다.


양창순 선생님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해 정신과 전문의와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서울 백제병원 부원장을 거쳐 현재 <양창순 신경정신과>와 <대인관계 클리닉> 원장으로 일하며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로 출강하고 있습니다. 2년간 CBS 라디오 아침 프로 <양창순의 아름다운 당신에게>를 진행했습니다. 동아일보에 고정칼럼<dr.양의 성공학="" 대인관계="">과 월간『좋은생각』에 <양창순의 작은 속삭임>을 연재한 뒤, 현재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운영중인 CEO를 대상으로한 SERICEO(www.sericeo.org)에 심리클리닉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저서로 <표현하는 여자가 아름답다>와 <내가 누구인가를 말하는 것이 왜 두려운가>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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