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가족을 위한 큰 나무가 되겠습니다"

푸르메재단 설립 20주년을 맞으며
인터뷰ㅣ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대표


2025년 푸르메재단이 설립 20주년을 맞았습니다. ‘환자 중심 재활병원을 세워 장애인과 그 가족의 고통을 줄여주겠다는 백경학‧황혜경 부부의 결심에서 시작된 푸르메재단. 모두가 무모하다고 여겼지만, 놀랍게도 푸르메재단은 지난 20년간 목표한 일의 대부분을 이뤄냈습니다. 2012년 지금 재단과 종로장애인복지관이 들어선 푸르메센터를 건립한 데 이어 2016년 서울 마포구에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이하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을 개원하고, 2022년 경기도 여주에 발달장애 청년 일터인 푸르메소셜팜까지 완공했습니다. 백경학 상임대표는 힘겹게 재활치료를 받는 장애인과 그 가족의 삶을 조금이나마 바꾸고 싶다는 생각으로 달려왔다장애인이 보통의 삶을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기까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장애어린이와 부모의 삶 생각하며 걸어온 20


꿈 하나로 시작한 일이지만 그것을 이루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금세 깨달았습니다. 재활병원을 세우기 위해 백방으로 자문을 구하러 다녔지만 희망적인 얘기를 해주는 곳이 없었습니다. 국내 굴지의 대학병원에서조차 우리도 적자를 감당 못 하는데, 민간 재단이 어떻게 병원을 짓고 운영하겠느냐고 되물었습니다. 백 대표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계획을 조금 수정했지요. 10년 안에 작은 재활의원을 먼저 만들기로 했습니다. 지역사회 안에서 장애인의 삶에 밀착하여 재활을 도와줄 의료시설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겁니다. 재활의원을 운영하면서 그 경험을 바탕으로 20년 내에 재활병원을 세우겠다고 말입니다.
목표를 수정했어도 가시밭길이었습니다. 건립비용 모금도 힘들었지만, 다른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재활의원을 짓겠다고 하니 혐오시설이라며 반대서명이 일어나는 등 지역 주민의 반대가 컸습니다. 이들에게 멱살을 잡히기도 했습니다. 여러 번 공청회를 열고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했습니다. 백 대표는 고통 받는 장애인과 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부모의 마음으로 일했다우리가 하는 일이 장애인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할 수 있다고 믿으며 고비를 이겨냈다고 했습니다.
그 노력 덕분에 푸르메재단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목표를 이뤘습니다. 재단 설립 2년 뒤인 2007년에 국내 최초의 민간 장애인 치과인 푸르메치과를, 2012년에 푸르메재활센터(現 푸르메어린이발달재활센터)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11년 만에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을 개원했습니다. 쉼 없이 달려온 백 대표가 가장 설렜던 순간이기도 합니다.
어려웠던 만큼 보람도 컸습니다. 2016328일에 처음 병원 문을 열고 한 달간 시범운영을 했어요. 어린이들이 치료받으러 줄지어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벅찼습니다. 어린이재활병원이 없어서 아이를 데리고 성인병원에 다녀야 했던 어머니들이 저희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지요. 주말마다 병원에 가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앞으로 푸르메가 어떤 일을 해나가야 할지를 다시금 생각했습니다.“


절실할 때마다 찾아온 기적


지난 20년을 돌이켜보면 백경학 대표는 고마운 분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가장 고마운 분들은 재단 설립 초기부터 푸르메를 믿고 기꺼이 나눔을 실천한 기부자들입니다. 푸르메재단을 세우는 데 주춧돌을 놓아준 부인 황혜경 기부자부터 푸르메센터를 건립할 때는 이철재 기부자가, 병원 세울 때는 고 김정주 넥슨 회장이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푸르메소셜팜을 만들 때는 이상훈‧장춘순 부부가 기적처럼 나타나 주었습니다.
모든 기부자가 감사한 인연이지만, 김주기 기부자님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파독 간호사로 일하시다가 병을 얻어 장애인이 된 분인데, 2007년 이가 아파서 푸르메치과에 오셨어요. 이가 아프면 단순히 음식을 못 먹는 게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과 대화하기 어려워 대인관계가 무너지고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는 걸 알게 됐지요. 푸르메치과에서 임플란트 시술을 받은 뒤 그분의 삶이 크게 달라졌다고 했어요. 기초생활수급자로 월 34만 원을 지원받는 상황이었는데, ‘치료해 줘서 고맙다2만 원 정기기부를 신청하셨어요. 못 받는다고 거절했지만 기어코 1만 원 정기기부를 하셨죠. 저희가 하는 일의 가치, 어려움 속에도 남을 생각하는 마음을 일깨워주신 분입니다.”


발달장애인 위한 일터 넘어 노후 문제까지 치열하게 고민할 것



스무 살 청년이 된 푸르메재단은 이제 앞으로의 20년을 바라봅니다. 우선 목표는 푸르메소셜팜을 발달장애 청년 일터로서 지속 가능한 모델로 계속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백 대표는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을 모델로 하는 권역별 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이 국책사업이 됐다푸르메소셜팜도 우리나라에 장애인 일자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는 곳으로 키우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발달장애 청년들이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할 수 있는 수도권에 제2농장을 비롯한 여주 농장의 생산시설 확대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입니다.
발달장애인의 노후를 준비하는 일도 백 대표와 푸르메재단 앞에 놓인 과제입니다. 백 대표는 현재 서른 살 전후인 푸르메소셜팜 직원들이 은퇴하기까지 20년 정도가 남았다이들의 노후를 어떻게 돌볼지 지금부터 고민하고 준비해야 20년 후를 안심하고 맞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많은 분의 도움으로 장애어린이가 세상으로 나아갈 문을 열고, 장애청년이 세상을 살아갈 터전을 만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바꿔왔듯, 앞으로 일어날 변화의 중심에도 푸르메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장애인과 그 가족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큰 나무가 되겠습니다.”


글=오선영(마케팅팀)
사진=푸르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