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메 덕분에 잘 성장했어요!

[푸르메재단 20주년_다시 잇다]


"푸르메 덕분에 잘 성장했어요”
푸르메 첫 홍보모델 안지영 씨 & 어머니 서경주 씨 인터뷰



안지영(사진 오른쪽) 씨와 어머니 서경주 씨


따스한 봄바람이 불기 시작한 3월, 서울 상암동의 마포푸르메직업재활센터를 찾았습니다. 푸르메의 오랜 친구 안지영 씨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2007년 서울 종로구에 문을 열었던 푸르메한방어린이재활센터에서 치료받던 다섯 살 꼬마가 어느새 훌쩍 자라 어엿한 스물두 살 청년이 됐습니다. 지난 2월 특수학교 전공과정을 졸업한 그는 마포푸르메직업재활센터에서 견습 과정을 마치고 정식 훈련생으로 일하고 있지요. 아직은 서툴지만 하나하나 포장해 나가는 손길에 정성이 듬뿍 담겼습니다. 일하는 소감을 묻자 지영 씨는 “포장하는 게 재밌다”며 밝게 웃습니다.


마포푸르메직업재활센터에서 ‘열일’ 중인 안지영 씨


치료받는 어린이에서 홍보모델로,
푸르메와의 오랜 인연


지영 씨와 푸르메의 인연은 각별합니다. 푸르메재단은 2005년 설립 후 2년 뒤 첫 사업으로 서울 종로구에 민간 최초의 장애인 전문 치과인 푸르메나눔치과와 함께 푸르메한방어린이재활센터를 열었습니다. 마포구에 살던 지영 씨 가족은 서울장애인부모회를 통해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머니 서경주 씨는 다운증후군인 지영 씨를 데리고 푸르메한방어린이재활센터에 다니기 시작했지요. 이곳에서 2년 6개월가량 재활치료를 받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백경학 상임대표 부부의 사연과 푸르메재단의 설립 이야기를 알고 크게 감동받았다고 합니다.
‘이 재단을 도와야겠다’고 마음먹은 경주 씨는 딸과 함께 적극적으로 재단 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지영 씨는 재단의 어린이 홍보모델로 오래 활약했고, 2016년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이하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 착공식에서는 장애어린이 대표로 감사 편지를 낭독했습니다. 지영 씨는 “션 아저씨와 사진 찍었어요. (병원 착공식 때)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했어요”라고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립니다.



(왼쪽 사진) 2012년 푸르메재단 홍보모델로 가수 션과 함께 활동한 모습
(오른쪽 사진) 2016년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 착공식에서 편지를 낭독하는 모습


어머니 경주 씨도 정기후원자가 되었습니다. 재단 홍보대사인 이지선 교수와 함께 ‘기부데이’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장애가족지원사업의 심의위원으로도 활동 중입니다. “푸르메재단을 보면서 이렇게 선한 마음을 가진 곳을 도와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저희가 그 고마움을 갚을 방법이 없었죠. 그래서 ‘홍보라도 많이 해줘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푸르메를 신뢰한 이유,
장애어린이와 가족을 존중하는 마음 때문


푸르메재단이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을 건립한 이유는 재활치료를 받을 곳이 없어 전국을 떠돌며 수년을 기다리던 장애어린이와 그 가족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전국에 25만 명이 넘는 장애어린이가 있지만, 당시 어린이 전문 재활병원은 한 곳도 없었습니다. 그 무렵 아이를 키우던 경주 씨의 상황은 어땠을까요?
“지영이를 낳으면서 직장을 1년 휴직하다가 결국 그만뒀어요. 주간에 재활치료를 계속 받아야 하니 직장에 다닐 수가 없었죠. 다른 곳들은 치료 대기가 너무 길고, 마포장애인복지관과 노원구에 있는 다운복지관에서만 치료가 가능한 상황이었어요.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1시간 30분씩 지하철을 타고 가서 치료받는 생활을 3년간 지속했습니다.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가 없으면 한 팔에 아이를 안고, 한 팔로 유모차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렸죠. 그렇게 유모차 바퀴가 닳고 고장날 정도로 다니다 보니, 유모차를 4대나 썼어요."



오래전 일이지만 경주 씨에게는 잊지 못하는 상처가 하나 있습니다. 지영 씨가 두 돌 지날 무렵 서울의 한 유명 대학병원에서 물리·작업치료를 받을 때 일입니다. “치료용 간이침대가 줄지어 있는 공간에서 20명 남짓한 아이가 동시에 치료받았어요. 옆에서 하는 말소리가 전부 들리고, 기저귀도 남들 다 보는 자리에서 그냥 갈아야 하고. 치료실이 시장통 같았지요. 그곳에 아이의 인권은 없었어요. 3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많은 아이를 치료해야 하니 병원 운영 측면에서는 효율적이겠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 마음은 아팠죠. 게다가 그런 환경에서 갓 두 살 난 아이를 앞에 두고 네발 기기를 연습시키던 여자 물리치료사가 저에게 ‘산전에 아이에게 장애가 있는 걸 몰랐어요?’, ‘장애 여아는 크면 자궁 적출을 빨리하는 게 안심이 될 거다’는 식의 말까지 서슴없이 하는데, 그때 받았던 충격이 지금까지 잊히질 않네요. 치료 효과를 떠나 ‘아이들이 이런 환경에서 치료받는 게 옳은가?’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 기억 때문에 경주 씨는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더 돕고 싶었답니다. 해외의 선진 모델과 치료 환경을 도입하고, 새로운 치료 방식을 시도하는 푸르메재단의 노력에 힘을 보탰습니다. 경주 씨는 “푸르메의 방식은 병원 운영에는 비효율적일지 모르겠지만, 장애어린이와 부모를 존중한다는 점에서 확실히 다를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어려움은 또 있었습니다. 지영 씨의 재활치료에 매진할 무렵,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초등 1학년은 어느 때보다 엄마의 손이 많이 필요한 시기. 하지만 경주 씨에게는 첫째 아이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늘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당시 저는 큰아이에게 마치 군대 사령관처럼 굴었어요. 아침부터 밤까지 빠듯한 일정을 짜놓고 작전대로 움직이는 거예요. 몇 시까지 이걸 끝내고, 다음엔 저걸 하고…. 계획대로 안 되면 막 화를 내기도 하고요. 사실 숙제도 봐주고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이야기도 들어줘야 하는데, 제게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안쓰럽고, 너무 미안해요."
그래서 경주 씨는 장애인 가족 지원에 비장애 형제를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특히 돌봄 지원은 장애 당사자뿐 아니라 부모 손길이 많이 필요한 초등 저학년 시기의 비장애 형제에게도 절실하다고 강조합니다.


자녀의 장애 감추지 않고 
다양한 경험 함께한 게 행복 비결


예나 지금이나 자녀의 장애를 밖으로 드러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경주 씨는 “자녀의 장애를 빨리 인정하고 드러내는 게 오히려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이라고 말합니다. 딸 지영 씨가 푸르메재단 홍보모델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한 것이 자신감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2008년 푸르메와 함께 갔던 거제도 여행을 지금도 가장 행복한 기억의 하나로 꼽을 정도입니다. “장애 자녀를 키우면서 겪는 수많은 어려움과 삶의 고비를 혼자 견뎌내기란 무척 힘듭니다. 장애 자녀를 돌보고 가정을 유지하고 사회생활을 하고. 그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죠. 장애를 감추지 않고 드러내고, 주위 사람들과 관계를 잘 형성해 나가는 게 훨씬 도움이 됩니다."



안지영 씨가 커다란 손 하트로 푸르메에 대한 마음을 전했다.


푸르메재단 설립 초기부터 함께해 온 이들. 지영 씨에게 ‘푸르메’는 어떤 의미일까. 질문을 들은 지영 씨는 곧장 “푸르메, 사랑해요!”라고 대답합니다. 18년 전 만난 재단 임직원, 치료사 선생님의 이름을 지금도 잊지 않고 말할 정도로, 푸르메는 지영 씨의 마음 깊숙이 자리 잡았습니다. 지영 씨가 자란 만큼 푸르메재단도 성장하여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과 푸르메소셜팜 등을 건립하고 15개 산하기관을 통해 장애인의 삶을 전방위로 지원하고 있지요. 장애 자녀를 둔 부모로서 앞으로 푸르메재단에 바라는 점은 무엇일까요?
“푸르메재단은 지금까지 너무 큰 역할을 해줘서 그저 고마운 마음뿐이죠. 그래도 한 가지를 더 바란다면, 도시형 일자리를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푸르메소셜팜은 근사한 일터이지만, 지역 주민이 아니라면 출퇴근하기 어려운 위치니까요. 푸르메소셜팜처럼 큰 규모가 아니더라도, 도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친환경 아이템을 활용한 ‘도시형 작업장’을 구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발달장애인을 고용하는 푸르메만의 시그너처 작업장을 만들면 이것이 한국의 새로운 모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글=오선영(마케팅팀)
사진=이지연(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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