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바꾸는 좋은 메시지가 기부로 이어집니다

변화하는 기부트렌드 속 우리가 나아갈 방향은
인터뷰_ 노연희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매년 연말이면 단골로 등장하는 기사가 있습니다. ‘한국 세계기부지수 최하위등 내용의 기사입니다. 이런 기사를 접하다 보면 우리는 기부에 인색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요. 경기불황과 취업난, 물가상승 등으로 우리 사회의 기부 동력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의견도 끊임없이 나옵니다. 더구나 2025년 우리 경제는 더욱 어려울 것으로 전망돼 기부에 대한 관심은 더 적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부에 이렇게 어두운 전망만 있을까요? 노연희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푸르메재단 기부컨설팅위원회 위원)와 함께 짚어봤습니다.


우리나라 기부율 낮지 않아… 비영리 부문 성장률 둔화 단계



노연희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노연희 교수는 우리나라의 기부 현황이나 변화 추이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지난 20년의 추세에서 기부 참여율이 전반적으로 하락세를 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그리 낮은 수치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빙코리아 2024’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기부 참여율은 202161.2%를 기록한 뒤 202359.8%로 소폭 떨어졌지만, 2019년의 46.5%보다는 상당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국세청이 집계한 기부 총액도 2017년부터 꾸준히 증가하다가 2020년 코로나19팬데믹으로 소폭 하락한 후, 2021156천억 원으로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2022년 기부 총액은 이보다 다소 낮은 151천억 원이었습니다. 노 교수는 “2000년대 초반부터 2010년대 초중반까지 우리나라의 기부 총액은 연 10% 정도씩 폭발적으로 늘었다최근의 추이는 성장률 둔화 또는 유지 단계로 보는 게 더 적절하다고 말했습니다.


연도별 기부 총액 (단위: 조 원, 출처: 기빙코리아 2024)


개인 기부 비중이 높은 점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2022년의 경우 개인 기부가 10.7조 원(71%), 기업 기부 4.4조 원(29%)으로 개인 기부 비중이 기업보다 높았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직전 3(2017~2019)간 개인 기부액은 평균 8.9조 원, 팬데믹 기간 3(2020~2023)에는 평균 9.7조 원으로, 팬데믹 기간에 개인 기부금 평균이 약 9% 증가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매년 연말 기사에 인용되는 세계기부지수는 사실 조사 주체나 내용이 불분명해요. 그 결과를 보고 우리가 기부를 안 한다고 보는 시각은 좀 바뀌길 바라요. 실제로 우리는 기부를 잘 하고 있습니다. 기빙코리아나 통계청 조사로 나오는 기부 참여율이 낮은 수치가 아니거든요. 우리의 기부 참여율이 얼마나 낮으냐보다는 모은 기부금을 어떻게 잘 쓰느냐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하죠. 또 기부금의 전체 규모나 참여율보다는 기부가 일부 대형 단체에 집중되면서 소규모 단체들이 소외된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기부를 사회 참여 방법으로 인식… 기부 호소보다 좋은 메시지주어야


기부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요소는 경제적 여건입니다. 40대 이상의 기부자층에서는 보통 가구 소득이 중요합니다. 요즘 기부 활동에서 주목받는 20~30대의 MZ세대는 조금 다릅니다. 가구 소득보다는 취업 여부가 더 큰 영향을 미칩니다. “MZ세대의 경우, 우리집 전체의 소득이나 연봉의 높고 낮음보다는 정규직(또는 최소 1년 이상의 계약직)에 취업했느냐가 더 중요해요. 내가 번 돈을 내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느냐’, 즉 경제적 자립 여부가 기부에 영향을 더 크게 미치죠. 20대보다 30대에서 기부가 더 활발해지는 이유는 자신의 재정 자원을 자율적이고 주도적으로 쓸 수 있는 위치가 되기 때문입니다.”


MZ세대 기부의 또 다른 특징은 자기주도성입니다. 이들은 기부를 하나의 사회 참여 방식으로 여깁니다. 기부를 통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를 바꾸고자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기부할 때 (기부 단체의 비전‧활동‧사업 등이) ‘내가 원하는 방향인가’, ‘내 문제와 관련이 있는가를 생각합니다. 노 교수는 젊은층에 어떤 메시지를 주느냐가 중요하다기부해 달라고 직접적으로 호소하지 않더라도 좋은 이슈와 메시지를 던지면 기부가 뒤따를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예전에는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해. 그래야 착한 사람이야같은 도덕적 명제 아래 기부를 했다면 지금은 달라요. 이것은 나의 문제이고, 우리 삶에 깊이 연관된 문제라는 인식이 기부로 이어지죠.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만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하니 우리가 함께 해결한다는 일종의 연대 의식을 갖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기부자들이 기부 영역이나 방식을 자신이 선택하고 주도한다고 느껴야 하죠. 기부자들에게 그러한 메시지를 정확하게 주는 게 중요합니다. 펀드레이징(Fundraising)보다 이슈레이징(Issueraising)이 필요한 시점이에요.”


이러한 경향은 기부자들의 기부 동기변화와도 일맥상통합니다. 기빙코리아 조사에 따르면, 과거에는 동정심이 압도적 1위를 차지했지만, 2017년부터 2023년까지 최근 7년간 사회적 책임감이 가장 높은 동기로 자리잡았습니다. 기부를 단순한 동정심의 표현이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뜻입니다.



기부 동기 (출처: 기빙코리아 2024)


기부자 향한 진정성 있는 소통 중요


연령별로 봤을 때 기부의 핵심은 40대입니다. 기부 경험이 있는 사람 가운데 연령별 평균 기부 금액을 살펴보면 40(351,513)가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60(306,882), 50(298,920)가 뒤를 잇습니다. 노 교수는 기성세대 기부자를 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라고 말합니다. “기부자들은 나를 진심으로 대하는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아요. 사실 이 부분은 연령 불문 모든 세대 기부자에게 통하는 원칙이기도 합니다.” 비영리단체의 진정성은 사업에도 있어야 하지만, 기부자를 대하는 태도에도 담겨야 한다는 뜻입니다.


제가 만난 한 기부자는 23년간 한 단체에 정기기부를 하다가 가정형편이 너무 어려워져서 결국 중단하셨어요. 그런데 기부 중단 후에 단체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어서 정말 속상하셨다고 해요. ‘인생이 허무했다고 말씀하실 정도로요. ‘23년간 정말 감사했다. 기부자님 덕분에 우리 사업이 잘 운영됐다는 인사 정도는 했어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기부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특별한 기술이 아니라, 진심 어린 말과 행동입니다.”



활동 내용과 성과를 기부자에게 잘 전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복잡한 설명이나 과장 없이 시각적 자료로 간단하고 이해하기 쉽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노 교수는 비영리단체에 대한 신뢰는 긍정적인 소통에서 나온다기부금을 어디에 썼는지 구구절절 알리는 것보다 기부자가 관심 있게 보고 기부한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어떤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를 명확하고 가시적으로 알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비영리단체들간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점이에요. 앞서도 말했든 비영리 부문의 성장이 둔화된 상황에서 일부 대형 단체에만 기부가 쏠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사업의 방향성이나 지향하는 목표가 같은 단체들이 협력해서 같은 이슈를 제시하고 함께 사업을 펼쳐나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같이 성장해야 전체 비영리 부분이 성장하고, 기부 규모도 커질 수 있어요. 그러한 노력이 시민사회 기반을 키우는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글‧사진= 오선영 (마케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