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에게만 있는 '특별한' 절차
<박윤영·채준우의 다르다Go?> 11화
박윤영과 채준우는 장애·비장애 커플이다. 함께 여행하고, 둘이 떠드는 게 여전히 제일 좋다. 둘은 45일간 유럽여행을 다녀온 뒤 여행에세이 <너와 함께한 모든 길이 좋았다(2018)>를 펴냈고, 최근에는 장애 인권을 다룬 책 <장애인이 더 많은 세상이라면(2023)>을 출간했다.
윤영
“이제 120통 째야”
“우와, 난 겨우 96통짼데 대단하다!”
”그보다 21세기에 이게 말이 돼...? 하하“
준우와 함께 좋아하는 가수가 있어요. 데뷔는 한참 지났지만, 여전히 정상급 인기를 구가하고 있죠. 아마도 누구나 듣기 편한 음악을 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러다 콘서트 소식을 알게 되었고 누구보다 빠르게 예매 사이트에 들어갔죠.
국내 공연장 휠체어석 현황. 음향장비가 설치돼 있거나 반투명 아크릴석으로 막혀 공연장이 보이지 않는다. 출처: 서울신문
<휠체어석은 일반예매 오픈 후 익일 오전부터 고객센터를 통한 전화예매만 가능합니다.> 이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문구였어요. 이 한 줄의 문장으로 깨달았죠. 예매 사이트에 얼마나 빠르게 접속하는가와 같은 ‘일반적인’ 기준과 나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요. 아마도 인터넷 시스템에 휠체어석을 넣어두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공연장마다 다르긴 하지만 휠체어석을 유동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까닭일 수도 있고요. 휠체어석을 포함해 여유 공간에는 여지없이 카메라나 여러 기기가 들어차는 것을 종종 보았거든요. 어쨌거나 우리는 도합 216통의 전화를 거는 중이에요. 하지만 고객센터는 계속 통화 중이고요. 휠체어석 담당자가 뭐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일반 문의를 한꺼번에 받는 걸 보니 이번 티켓팅도 그른 것 같아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런 일들이 새롭지 않아요. 비슷한 일들은 그전에도 꾸준히 있었으니까요. 이미 단련이 돼 있다고나 할까요. 이를테면 극장에 가거나, KTX나 비행기를 탈 때도 꼭 저만 다른 절차가 있었어요. ‘나 같은 사람’을 위한 전용석으로 가려고 해도 복지카드를 보여줘야 했죠. 언뜻 장애인이 복지카드를 내는 건 당연한 일처럼 보여요. 그게 뭐가 특별한 일인가 싶죠. 하지만 복지카드를 요구한다는 의미는 단순히 장애 유무를 증명하는 데 그치지 않아요. 주민등록번호와 집 주소는 물론이고 내게 어떤 장애가 있으며, 그 장애가 얼마나 심한지 적혀있으니까요. 꽤 내밀한 개인정보인데도 군말 없이 보여 달란 뜻이기도 해요.
여태 당연한 줄 알았어요. 카드 한 장으로 개인정보를 죄 다 공개하면서도 그게 뭐가 문젠지 저 역시 깨닫지 못했으니까요. 처음으로 의문을 품게 된 곳이 유럽이었어요. 이곳저곳을 다니는 동안 장애인증명서 같은 걸 요구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거든요. 전용석을 예매하려고 할 때도, 간혹 장애 할인이 적용될 때도 마찬가지였죠. 이윽고 나를 증명하는 일에서 해방됐다고나 할까요?
에펠탑 장애인 매표소에서 윤영은 검증 없이 입장할 수 있었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대관람차인 런던아이와 파리의 랜드마크인 에펠탑은 대기 줄이 무척 혼잡했어요. 어쩔 수 없이 준우가 홀로 예매하러 가기로 하고 영문장애인증명서를 쥐어 보내줬죠. 얼마 후 준우는 상기된 표정으로 돌아왔어요. 그런 서류는 묻지도 않고 티켓을 내어줬대요! 그들은 저를 발견하면 그저 “휠체어 사용자의 탑승을 위해 운행을 잠시 정지합니다” 따위의 방송을 내보내는 것이 전부였죠.
한번은 스위스 인터라켄에 있는 브리엔츠 호수를 산책했어요. 투명한 옥빛으로 빛나는 호수 위에는 유람선이 그림처럼 떠 있었죠. ‘와, 저런 거 한번 타보고 싶다’라고 속으로 생각하는 찰나 선원의 외침이 들렸어요.
“당신들 탈 건가요?”
아무런 절차 없이 브리엔츠 호수 유람선을 즉석에서 탈 수 있었다.
정말이지 귀를 의심했어요. 우리에게 하는 말이 맞나 싶어서 우리는 동시에 주변을 좌우로 살폈죠. 아.무.도 없었어요.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유람선을 향해 뛰기 시작했죠. 선원은 그런 우리를 보고 출발하려던 채비를 멈춘 채, 안전하게 탈 수 있도록 안내했어요. 배에 올라서도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어요.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은 채 단번에 무언가 이루어진 최초의 날이었거든요. 저보고 ‘나중에’, ‘다음에’라고 말하지 않는다니요!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어요. 이날을 ‘맨몸으로 배 탄 날’ 뭐 그런 기념일로라도 삼아야겠어요!
준우
이제 와 돌이켜 보면 윤영은 유럽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장애를 드러내야 하는 사람이었네요.
전동휠체어를 화물칸에 싣고 기내 휠체어를 이용해야 한다는 이유로 항공사에 정보를 끝없이 넘겼어요. 100kg이 넘는 휠체어를 왜 가져가야 하는지, 그 휠체어는 안전한지 밝히는 것도 전부 윤영의 몫이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저는 그게 어떠한 허락을 구하는 과정 같기도 했고 무엇보다 탑승 수속이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했다는 점이 탐탁잖았습니다.
런던아이를 탈 때 별다른 검증없이 장애인 티켓을 발권할 수 있었다.
그런데 유럽에 도착하자 바뀐 것은 시차뿐만이 아니었어요. 우리를 둘러싼 시스템도 바뀌었습니다. 누군가 영문으로 된 장애인증명서가 꼭 필요할 것이라 해서 챙겨갔지만 꺼낼 일은 한 번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윤영의 존재만으로 편의시설이나 티켓, 휠체어 좌석이 나타난다는 것은 커다란 변화였습니다.
장애인이 복지카드를 내고 자신의 장애를 증명하는 일이 사실은 무척이나 부자연스러운 것임을 유럽을 여행하며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한동안은 의문이었습니다. 무엇이 윤영의 장애 드러내기를 멈추게 만들었는지 말이죠.
실마리는 장애인 등급제도에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유럽 대부분 국가는 장애인등급제를 사용하고 있지 않으니까요. 물론 예전에는 한국처럼 등급제가 존재했지만 2000년대 초반 대부분 폐지하거나 개편된 상태입니다. 지금은 필요한 사람에게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하죠. 윤영을 쓱 보는 것만으로도 끝날 수 있었던 것이 이제야 이해가 됩니다. 구분하지 않으면 증명할 필요도 없으니까요.
이토록 편한 방법을 두고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번거로움을 고수합니다. 매년 부족하게 편성되는 예산 탓에 자격 검증을 더욱더 까다롭게 해야 하거든요. 그래야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아주 소수의 인원을 선별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장애인을 눈앞에 두고도 진짜 장애인이 맞는지 확인하는 웃지 못할 광경을 끝내지 못하는 겁니다.
저는 여태껏 저 자신을 “비장애인”이라고 소개해 본 적이 없습니다. 당연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도 제게 물어보지 않았고 그렇게 소개할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사실 평소엔 비장애인이라는 단어조차 꺼낼 일이 잘 없죠.
이렇게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어디를 가나 저를 위한 자리가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이제는 윤영에게도 윤영을 위한 자리가 어디를 가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윤영이 자신의 장애를 드러내는 게 매우 어색한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되도록 빨리요!
*글, 사진 = 박윤영 작가, 채준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