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사랑받을 사람, '장애인(長愛人)'입니다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류승연 작가 인터뷰
영화 <그녀에게> 포스터
“내 아이는 오래 사랑 받을 사람 '장애인(長愛人)'입니다.” - 영화 <그녀에게>
최근 장애자녀를 둔 부모들 사이에 크게 화제가 된 영화가 있습니다.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는 어머니의 삶을 그린 <그녀에게>입니다. 전직 기자이자 중학생인 장애-비장애 쌍둥이를 키우는 류승연 작가의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이 그 원작이죠. 그는 이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요?
“우리 이야기가 대중에게 닿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제가 책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장애자녀를 키우면서 느끼는 행복’인데, 고난과 어려움이 더 강조됐다는 점은 좀 아쉬워요. 비장애 관객보다 장애자녀 부모들이 열심히 봐주셨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 중 하나죠.”
영화에 강사 역할로 직접 출연한 류승연 작가
그럼에도 그간 미디어가 장애를 다루던 방식을 벗어나 ‘현실을 그대로 담아냈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가치는 충분합니다. “그 방향이 옳든 그르든 우리 사회는 변하고 있고, 또 변해갈 것이라고 믿어요.”
내 아이, 어떻게 키울 것인가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들어보셨어요? 어릴 때 동네 놀이터에 가면 꼭 한 명씩 있었어요. 발달장애라는 말조차 없던 시대지만, 조금 달라보이는 그 친구를 ‘동네 바보 형’이라고 놀리면서도 같이 어울렸죠.”
이제는 놀이터에서도, 거리에서도, 학교, 직장, 지하철, 식당에서도 그들을 만나기 힘듭니다. 다들 어디로 간 걸까요?
“제가 아이를 키울 때만 해도 한 달에 1백만 원을 투자하면 서너 살 수준, 2백만 원 이상 투자하면 초등학교 3, 4학년 수준까지 발달 수준이 올라갈 수 있다는 말이 있었어요. 그래서 다들 대출 받아 가며, 2년씩 대기하면서 치료에만 매달렸죠. 사회에서 분리된 채로요.”
하지만 요즘은 부모들의 태도가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치료만이 답이 아니라는 생각에서입니다. 재활치료도 일상과 연결될 때 더 의미가 있고 효과가 크다는 점을 깨달았지요.
“돌 지나고부터 13년째 재활치료를 받는 동환이는 학교 적응에 애를 먹었어요.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치료실과 집만 오가다 보니 사회성 발달에 필요한 경험을 놓쳐버렸죠. 선배 엄마들의 이런 실패를 토대로 요즘 엄마들은 재활치료를 줄이고, 일상의 경험을 늘리는 데 더 집중하고 있어요.”
(왼쪽) 2018년 출간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2024년 출간한 <아들이 사는 세계>
‘고립된 상황 속에서 아무런 사회성도 배우지 못했기에 열한 살의 아들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순간적인 반응밖에 하지 못하는 ’괴물‘이 돼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아들이 사는 세계>, p145
세상과 만나야 합니다
문제는 가정에서 이런 노력을 기울여도 발달장애인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표준화된 교육 과정, 일상과 분리된 특수교육의 시스템이 사회적 발달을 저해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류승연 작가는 이 문제를 위 책의 후속인 <아들이 사는 세계>에 구체적으로 담았습니다.
<최근 20여 년간 발달장애 특수학교 학생의 변화와 기본 교육과정의 한계, 그리고 교과통합주제중심 교육 활동>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음성 언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수업을 이해하고 따라가는 학생은 전체의 16.55퍼센트에 불과했다. - <아들이 사는 세계>, p249
“재활치료 역시 마찬가지 문제가 있어요. 현행 재활치료는 단계별 기능 향상이 목적이에요. 한 예로 지퍼를 여닫으려면 큰 물건부터 시작해 작은 물건까지 집기 훈련을 해서 손가락 힘을 키우고, 아래 위로 당길 수 있는 미세 근육 훈련까지 마쳐야 지퍼를 잡아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동환이가 6학년 때 담임선생님에게 매일 지퍼 여닫는 훈련을 받더니 1년 만에 성공했어요. 치료 측면에서 보면 절대 할 수 없는 단계였지요.”
즉, 특수교육이든 재활치료든 일상의 영역으로 들어와 실생활에 적용하는 것이 목적이 돼야 한다는 겁니다.
소중한 내 아이, 나 없이 어떻게 살아갈까?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는데, ‘내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다’는 장애자녀 부모들의 바람은 수십 년째 변화가 없습니다. 류승연 작가가 묻습니다.
류승연 작가와 아들 동환이
“동환이는 저에게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자신을 조건 없이 사랑해주는 세상 유일한 존재’예요. 그래서 더 귀하고 사랑스럽죠. 그런데 만약 제가 살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이렇게 소중한 제 자식을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는다면 과연 제가 동환이를 두고 갈 수 있을까요?”
누군가를 조건 없이 ‘아주 오래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에 ‘오래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들, '장애인(長愛人)'. 이 사랑스러운 이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일상을 나누는 당연한 권리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푸르메재단이 더 고민하고 함께 나아가겠습니다.
*글= 지화정 과장 (마케팅팀)
*사진= 네이버 영화, 류승연 작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