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으로 산다는 것] 자립을 위한 원동력

<발달장애인으로 산다는 것> 9화


 



칼럼니스트 김유리는 평범한 직장인이자,  에세이 <너와 함께라면>을 쓴 발달장애인 작가이다. 말보다 글이 편하다고 말하는 천생 글쟁이다. 칼럼의 주제에서 '자립'이라 함은 '남에게 의지하거나 매어있지 않고 스스로 섬'을 의미하는 것으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늘려갔던 경험들을 들려줄 계획이다. 그 안에서 발달장애와 관련한 사회적 이슈를 함께 다루며 장애 당사자로서 목소리를 내보기로 했다.



나는 유튜브 보기를 즐겨한다. 매초마다 새로운 영상이 쏟아지는 유튜브를 하루종일 보기도 했다. 징검다리 휴일이 많았던 10월의 어느 하루는, 늘어지게 늦잠을 자다가 종일 유튜브만 봤다. 핸드폰을 놓고, 침대 밖으로 나와서 움직여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실행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나에게 회사는 돈을 버는 장소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기력하게 방에 누워만 있으려는 나를 하루에 몇 시간만이라도 움직이게 하는 곳이었다. 멋모르던 사회초년생 시절 나는 8시간 근무를 하는 직종만 고집했다. 지금은 5시간만 근무해도 나를 날마다 불러주는 곳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일은 회사 말고도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모임이다. 집에서 멍하니 늘어져 있을 주말 오후,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나 샤워를 하고 외출복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시간 맞춰 모임 장소로 나간다. 회사에 출근하는 날과 비슷한 일상이다. 업무적인 소통만이 오가는 회사와 달리 모임에서는 사적인 대화를 나누며 정서적인 유대감을 형성한다.


이렇게 밖으로 나오는 삶은 자립과도 연관 지어 볼 수 있다. 회사 혹은 모임에 나가기 위해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밖으로 나가는 행위가 자립을 위한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그곳에서 내가 맡은 일이 있다면, 자립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사회활동을 하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 성취감을 느끼는 일 또한 중요하기 때문이다.



회사 특성상 발달장애 사원에게는 맡길 일이 없다며, 업무시간 내내 앉아만 있게만 하는 회사를 다녀보았다. 모임에서 아무런 역할을 맡지 않기도 해 보았다. 회사와 모임에서도 하는 일이 없으니,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회사에서 능력을 피력하고 모임에서도 단순한 일이라도 맡았더라면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못하다는 자괴감을 겪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어’라고 하면서 말이다.


지금은 회사에서는 물론 모임에서도 맡은 일이 있다. 회사에서도 해야 할 일이 많은데 모임까지 신경을 쓰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도 요즘엔 집에서만큼은 일 없이 지내고 싶기도 하다. 바쁜 삶 중의 여유는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 하지만 집에서 아무 일 없이 스마트폰만 보는 생활이 장기간 이어지면, 나에게는 독이 되어 돌아올 거라는 걸 안다. 생활패턴이 한번 무너지면 되돌릴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탓이다. 집에 특별한 일이 있을 경우에만, 연차를 사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내가 맡은 일을 함으로써 책임감도 형성된다. 오늘도 해야 할 일이 없었다면, 휴일이라고 침대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을 테다.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면 나의 존재가 무력하다고 느껴진다. 이런 이유로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모임에서 맡은 역할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에도 스마트폰을 보는 대신 독서나 글쓰기, 운동처럼 생산적인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옷을 입고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것부터 시작하여, 사람들과의 상호작용, 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성취감, 업무에 따른 책임감 등이 나를 사회와 단절시키지 않고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 한다. 휴일에 드라이브하러 가시는 부모님께 나도 따라나서겠다고 말하는 철부지 어른이 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회사도 다니지 않고, 모임도 하지 않던 해에는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더랬다. “엄마, 아빠하고 아니면 난 아무 데도 못 가, 나도 데려가 줘.” 단둘이 데이트도 못 해 보고 어른이 된 자녀를 데리고 다녀야 하니, 본인들 팔자가 얼마나 기구하다고 생각하셨을까?


침대에서 나오는 일은 나를 자립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게 한다. 세상 밖으로 나가는 일부터 해야 자립해서도 잘 지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혼자서 스마트폰 보는 시간을 줄이고 집에서 생산적인 일을 하거나, 밖으로 나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다 보면 홀로서는 일에 한 발자국 다가설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글= 김유리 작가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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