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지금 뭘 하는가?"

<박윤영·채준우의 다르다Go?> 10화



박윤영과 채준우는 장애·비장애 커플이다. 함께 여행하고, 둘이 떠드는 게 여전히 제일 좋다. 둘은 45일간 유럽여행을 다녀온 뒤 여행에세이 <너와 함께한 모든 길이 좋았다(2018)>를 펴냈고, 최근에는 장애 인권을 다룬 책 <장애인이 더 많은 세상이라면(2023)>을 출간했다.



준우


윤영과의 두 번째 유럽행은 네덜란드였습니다. 떠오르는 것은 고작 풍차와 튤립뿐이었지만 이상하리만치 이곳에 끌렸어요. 한곳에 오래 머물며 서로에게 집중하고 싶은 우리에게 적격인 곳 같았습니다.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은 예상보다 더욱 매력적인 곳이더군요. 골목마다 운하가 흐르는데 코너를 돌 때마다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어요. 어떤 길을 걸어도 이색적이랄까요? 흐린 구름 사이로 해가 비출 때면 운하에도 윤슬이 내려앉았죠. 감자튀김이 이렇게나 맛있는 음식인 것을 이곳에서 처음 알았고, 커피에 달디단 와플을 담가 먹을 땐 온몸이 짜릿했어요.


커피에 와플_뜨거운 커피 위에 와플을 두면 말랑말랑 달콤해진다.뜨거운 커피 위에 와플을 두면 말랑말랑 달콤해진다.


귀국일이 다가오던 어느 날 우리는 큰 마트로 향했습니다. 한국에서 목 빠지게 선물을 기다리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거든요. 벌써 윤영의 메모장에는 ‘네덜란드에서 꼭 사야 할 것’이라고 적힌 리스트들이 어우, 빼곡했습니다. 틴케이스가 예뻐서 혹은 너무 맛있어 보여서 이런저런 이유로 간식거리를 담다 보니 금세 장바구니가 가득 찼어요. 


예견된 결말이었을까요? 계산된 선물들을 윤영의 휠체어 가방에 차곡차곡 쌓았는데, 그 커다란 가방이 잠기지 않는 겁니다. 물론 제 양손도 가득 차버렸고요. 별수 없이 가방을 잠그지 않은 채 대충 숙소로 돌아가는데, 아뿔싸! 휠체어가 덜컹하더니 가장 위에 있던 초콜릿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습니다. 암스테르담의 도로에는 트램이 함께 다니는데 그 점을 간과했던 것입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트램 선로에 걸려 휠체어가 덜컹거린다는 것을요! 신호는 곧 빨간색으로 바뀔 텐데…. 마음이 급해진 저는 초콜릿을 발로 툭툭 차서 인도로 옮겼습니다. 나름 긴박한 순간이었죠.


그 순간, 신호 대기 중인 트럭이 빵빵! 경적을 울렸습니다. 운전자가 저를 가리키며 큰 목소리로 뭐라고 하더군요.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의 표정과 뉘앙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거기 자네! 도와줄 거면 똑바로 도와줘야지 않는가!”


대뜸 떨어진 불호령에 기분은 썩 좋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그 초콜릿은 제 것이었거든요!


네덜란드 킨데르데이크 지역에 있는 풍차네덜란드 킨데르데이크 지역에 있는 풍차


돌이켜 보면 그는 윤영을 처음부터 끝까지 눈여겨보고 있었던 겁니다. 그의 기준에 저는 잘못된 도움을 주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올바른 행동으로 이끌고자 하는, 어떤 의미로는 감시자의 역할을 자처했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저는 한국에서 윤영과 함께한다는 이유로 ‘장하다’란 소리를 곧잘 듣습니다. 그런데 유럽만 오면 주로 혼이 나는 것 같습니다. 하하! 어쨌든 이렇게 생판 남인,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이 지켜보고 개입하는 것이 놀랍습니다. 마침, 윤영도 네덜란드를 여행하는 동안 저와 같은 느낌을 계속해서 받았다고 하더군요. 이웃과의 관계로 형성되는 안전망. 어쩌면 이런 것이 커뮤니티 케어의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요?


윤영


사실 커뮤니티 케어라는 것은 다른 목적으로 쓰이는 말이에요. 복지서비스에 관한 용어거든요. 나이가 들거나 장애가 있어도 시설로 가지 않은 채, 내가 살던 곳에서 쭉 살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요. 그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들을 아우르는 말이죠. 그런데도 굳이 이런 이름을 붙여 본 건 조금은 그곳이 부러워서, 욕심이 나서 ‘희망사항’을 덧붙였기 때문이에요.


네덜란드 사람들은 ‘눈여겨 보기’를 참 잘하는 것 같다네덜란드 사람들은 ‘눈여겨 보기’를 참 잘하는 것 같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눈여겨보기’를 참 잘하는 것 같더라고요. 여행이 끝날 때까지 그 느낌은 이어졌거든요. 공항으로 떠나기 전 들린 스타벅스에서도 그랬죠. 제 옆에는 미간을 잔뜩 찌푸려가며 무언가 중요한 통화를 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어쩌다 눈이 마주쳤는데 그 뒤로 계속 저를 의식하더라고요. 괜히 겸연쩍어진 저는 휴대폰만 만지작거렸죠. 로밍도 안 해서 아무것도 안 되는데도요. 그런데 결국 그가 말을 걸어왔어요!


“혹시, 주문 도와드릴까요?”
“앗?! 일행이 하러 갔어요. 감사합니다.”


그는 알겠다며, 그제야 자세를 고쳐잡고 편하게 통화를 이어갔어요. 가만히 서 있는 저를 발견하고 혹시나 주문을 못 한 것은 아닌지, 그는 통화 중에도 신경 써 준 것이었죠. 처음엔 조금 놀랐지만 두고두고 기억에 남아요. 그들은 언제든지 남에게 ‘뚝’하고 덜어줄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라도 있는 걸까요?


그의 참견은 무례하지 않았어요. 자신이 수행해야 할 미션이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는 것에 가까웠거든요. 오히려 보이지 않는 안전망 안에 제가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어요. 굉장히 신선한 경험이었죠. 우리나라에선 휠체어를 타고 나가면 꽤 많은 사람이 말을 걸어와요. 그러나 대부분은 자신의 호기심을 해소할 목적이었죠. 휠체어는 얼마고, 집은 어디며, 누구랑 사는지 같은 그런 차갑고 짠맛이 느껴지는 질문이에요. 이런 말들이 난무하는 곳에서는 내가 안전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어요.



어쩌면 네덜란드의 사람들은 이렇게나 젠틀한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는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도 이런 경험을 꺼낸 건, 이토록 담백한 참견도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더불어 모든 참견이 무례한 것은 아니며 오히려 이런 다정한 관심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어요! 


가령, 지하철역에서 전동휠체어가 고장 나도 수십 분을 (아무에게도 말을 붙이지 못한 채) 서 있는 일은 일어나지 않겠죠. 어떤 이유로 집 밖을 헤매게 된 이들은 더욱 빨리 집으로 돌아가게 될 테고요. 내가 사는 지역에서도 안전할 수 있다면 굳이 시설로 들어가 극진한 보호를 받을 필요가 없잖아요? 안전망 밖으로 아무도 튕겨 나가지 않을 거예요. 보이지 않는 손을 우린 꼭 맞잡고 있는 셈이니까요.


암스테르담 여행 중 만난 무지개암스테르담 여행 중 만난 무지개


생각해 보면 장애인에게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죠. 서로에게 관심을 두는 일은 우리는 서로를 지킬 수 있게 해요. 옆집에 어떤 사람이 사는지, 길 가다 멈춰 선 사람은 왜 그런지. 서로를 눈여겨보고 있다가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기꺼이’ 말을 걸어주는 그런 사소함이 그렇게 만들 거예요. 염려를 담아 제게 말을 걸어준 네덜란드 사람들처럼요.


*글, 사진 = 박윤영 작가, 채준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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