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독일 일상 속 함께 하는 발달장애인
<독일은 어때요?> 1화
"독일은 어때요?" 칼럼니스트 민세리가 한국인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독일에서 16년 넘게 거주하며 특수교육학자, 장애인복지전문가, 통번역가 그리고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현재 박사과정에 있다. 이번 연재칼럼에서는 독일 발달장애인의 일과 삶에 대하여 생생한 현지 소식을 전달하고자 한다.
“웅~~~웅~~~“
새벽 4시면 어김없이 휴대폰 진동이 울린다. 더듬거리며 알람을 끄고 창문을 활짝 연다. 신선한 새벽 공기가 이 나라 특유의 차분함과 여유를 품고 방 안으로 가득 들어온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16년이 넘도록 나는 이국 땅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여기는, 독일이다.
나는 독일 베를린의 어느 평범한 동네에 살고 있다. 여기에서 ‘평범한 동네‘란 주민들의 교육·소득 수준, 문화·언어·종교적 배경 등이 베를린에서 평균 정도인 동네를 의미한다.
매일 아침 산책하는 동네 공원에는 정원관리사들이 부지런히 일한다. 발달장애인 2~3명도 늘 함께 일한다. 그들이 심고 가꾸는 꽃밭을 보며 나는 매번 감탄한다.
공원 주변에는 노인요양시설, 발달장애인거주시설과 장애인들이 독립생활을 하는 일반 주택들이 밀집하고 있어서, 공원에는 장애인들이 삼삼오오 또는 혼자 산책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나는 그들과 함께 걸으며 공원의 여유를 만끽한다.
필자가 매일 산책하는 베를린의 어느 공원 ©민세리
평소 즐겨 찾는 동네 대형마트로 향하는 길에는 어김없이 어느 장애인작업장 앞을 지나간다. 특히 출퇴근 시간대에는 이곳 장애인 종사자들(대부분 발달장애인이다) 행렬에 자연스럽게 섞인다. 나는 그들과 함께 걷는다.
대형마트에는 종종 발달장애인 직업훈련생들이 보인다. 제품 진열에 집중해서 최선을 다하는 직업훈련생 모습도 인상적이지만, 옆에서 차분하고 친절하게 지도하는 직업훈련 트레이너 모습도 매번 인상적이다.
우리 동네에는 이틀에 한 번 쓰레기 수거차가 온다. BSR(베를린도시청소용역)은 독일에서 장애인고용률이 높기로 유명한 공기업이다. 전체 직원의 약 15%가 발달장애인을 포함한 중증장애인이다. 유쾌하고 호탕한 환경미화원들은 전문성과 동시에 늘 여유로움을 겸비하고 있다. 내가 그들을 존경하는 이유이다.
이처럼 나는 베를린의 어느 평범한 동네에서 그리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다양한 발달장애인과 마주치고, 발달장애인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가운데 도시생활을 한다.
일상에서 이토록 많은 발달장애인과 마주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독일에 발달장애인이 유독 많아서일까?
흔히 독일을 처음 방문한 한국인들은 어디를 가나 장애인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에 ‘독일에는 왜 이렇게 장애인이 많을까?‘하는 의구심을 갖곤 한다. 하지만 독일에 장애인 수가 유독 많은 것은 아니다. 총 인구 대비 장애인 비율은 우리나라와 유사하다. 독일에서 장애인을 많이 볼 수 있는 이유는, 장애인이 이동하고 일하고 여가 생활할 수 있는 기본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서 장애인이 집이나 시설에만 고립되지 않고 쉽게 ‘밖으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인도 마찬가지이다.
공원에서 반려견과 산책하는 지체장애인의 모습 ©민세리
독일에 산 지도 어느덧 16년이 훌쩍 넘었다. 대학에서 재활특수교육학(Rehabilitationspädagogik)을 전공하고 장애인재활 및 장애인복지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는 나에게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 중 하나가 “독일은 어때요?“이다. 우리나라 장애인 중 발달장애인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은 특성상 “독일 발달장애인의 일과 삶은 어때요?“라는 질문도 참으로 많이 받는다.
이와 관련해 나는 독일 발달장애인들의 일과 삶이 한국 발달장애인들보다 훨씬 다채롭고 훨씬 여유로우며 안정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발달장애인뿐 아니라 직장이나 일상에서 이들을 동행하고 지원하는 사람들도 차분하고 여유로운 편이다. 과연 이러한 다채로움과 여유 그리고 안정감은 어디에서 기인할까? 그리고 실제로 독일 발달장애인은 무슨 일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공원에서 산책하거나 자전거 타는 사람들 ©민세리
이번 연재칼럼은 독일 발달장애인의 일과 삶을 조명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발달장애인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일하는지, 일과 삶의 균형, 소위 ‘워라벨(work life balance)‘을 어떻게 유지하는지, 독립된 성인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나의 칼럼이 독자들에게 여러가지 생각거리를 제공하고, 나아가 우리나라 발달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정책 변화에 조금이나마 기여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새벽 공기가 갈수록 쌀쌀해 지고 있다. 2024년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중이다. 독일의 숲과 공원이 더욱 아름다워지는 중이다. 나중에 아침 산책을 나가 마주할 공원 모습이 기대된다. 정원관리사들을 만나면 더욱 반갑게 아침 인사를 그리고 감사 인사를 건네야겠다.
*글, 사진= 민세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