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혜택은 존재하는가?
<박윤영·채준우의 다르다Go?> 9화
박윤영과 채준우는 장애·비장애 커플이다. 함께 여행하고, 둘이 떠드는 게 여전히 제일 좋다. 둘은 45일간 유럽여행을 다녀온 뒤 여행에세이 <너와 함께한 모든 길이 좋았다(2018)>를 펴냈고, 최근에는 장애 인권을 다룬 책 <장애인이 더 많은 세상이라면(2023)>을 출간했다.
윤영
프랑스의 작은 도시 디종은 고즈넉하고 조용했다.
스위스 인터라켄으로 떠나기 전, 우리는 프랑스의 작은 마을 디종에 있었어요. 이곳에 머물게 된 건 행운이었죠. 고즈넉하고 평화로워서요. 도시를 여행하며 예민하게 날이 서 있던 신경들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어요. 온전한 휴식을 취한 셈이죠. 하지만 마지막 날 신경이 바짝 서는 경험을 했어요.
“고객님은 이등석 티켓을 가지고 계시네요? 휠체어석은 일등석에만 있어요. 두 분 각각 18유로씩 더 결제해 주셔야겠습니다.”
“네? 제가 예매하려는 건 일등석이 아니라 그냥 휠체어석일 뿐인데요?”
파리 디종역_이곳에서 모든 신경이 곤두서는 경험을 했다.
준우와 저는 스위스행 기차를 예매하던 중이었어요. 처음 받은 티켓에는 휠체어석(Handicapped Seat)이 적혀 있지 않았기 때문에 우린 다시 줄을 서야 했죠. 그렇게 두 번째 창구에서 담당자 니콜을 만난 거예요. 그는 난제를 만난 듯 한참이나 티켓과 모니터를 들여다보더니 마침내 우릴 향해 다가왔어요. 그렇게 추가 요금 이야기를 꺼내더라고요. 저는 선택해야만 했죠. 장애인인데도 불구하고(?) 태워준다는 사실에 감지덕지할지 또는 원치 않은 업그레이드 비용에 대해 따져 물을지 말이에요. 저는 후자를 선택했어요. 그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어서요.
“나는 이해가 되지 않으며, 추가 요금을 내지 못하겠다.”라고 하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어요. 어깨와 손을 으쓱하며 정말이지 못 말리겠다는 듯 제스처를 취하더군요. 언어의 장벽까지 더해져 실랑이가 길어지자, 이번엔 옆에 있던 행인이 나섰어요. 그는 또박또박 말했죠.
“당신들이 여행을 계속하려면 정당한 요금을 지불하세요.”
니콜은 매우 흡족한 듯 엄지를 ‘척’하니 올렸고, 그는 자신의 명쾌한 훈계가 마음에 들었는지 멋쩍게 웃더군요. 그 순간 저는 끔찍한 모욕감을 맛봤어요. 한순간에 18유로가 아까워서 떼를 쓰는 사람이 됐으니까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숨이 막혔어요. 티켓을 빼앗아 들고 역을 나왔죠. 그다음은 어떻게 되었냐고요? 다음 날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안내데스크에 가서 휠체어 리프트를 신청했더니 그 담당자는 한두 번이 아니라는 듯, 한숨을 푹 쉬며 티켓을 새로 발권해 주었어요. 거기에는 “Handicapped Seat” 휠체어석이라고 분명히 적혀 있었어요. 물론 추가 요금 이야기도 없었고요.
니콜이 추가 요금을 말하려면 휠체어석이 어째서 일등석에만 있는지 따져봐야 해요. 니콜의 생각처럼 휠체어석이 일등석에만 있는 까닭이 단순히 ‘장애인이니까 편한 곳에 앉아가라’라는 식의 시혜적 관점은 아니니까요.
떼제베 휠체어석_우여곡절 끝에 인터라켄으로 향하는 떼제베를 탔다.
사실상 휠체어석을 일등석에 두는 건 공간의 문제예요. 일반석에는 그럴 공간이 없거든요. 최대한 많은 비장애인을 태우기 위해 의자를 빼곡하게 두니까 휠체어석을 마련할 공간은 없어요.
열차구조의 한계도 있죠. 통로는 좁고, 객차와 객차를 연결하는 틈에는 높은 턱이 생겨요. 모든 통로를 넓히고, 모든 턱을 없앨 수 없으니 특정한 칸에만 휠체어석을 두는 것이고요. 따라서 니콜의 논리대로라면 그들의 편의대로 결정한 값을 손님에게 치르게 하겠다는 뜻이 돼요. 니콜은 장애인을 시혜적 관점으로 보지 않았을지는 몰라도 어째서 휠체어석이 일등석에만 있는지 그 이유까지는 고민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어요. 저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어서 그에게 그대로 되묻고 싶어요.
“고객님은 이등석 티켓을 가지고 계시네요? 비장애인석은 일등석에만 있어요. 당연히 추가 요금을 내셔야죠. 네, 맞아요. 당신이 비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요.”
준우
솔직히 고백하자면, 윤영이 화를 내는 이유를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저였다면 아무 생각 없이 추가 요금을 내고 티켓을 샀을 테니까요. 잘 싸우지 못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막연히 ‘장애인이니까 그런 거겠지’하고 넘겼을 겁니다. 분명히요. 하지만 숙소에 돌아와서도 화가 식지 않은 윤영을 바라보자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문득 떠오른 것은 저의 인도여행이었습니다.
인도 기차 내부. 출처: 뉴스핌
인도에서 저는 가장 싼 기차만 타고 다니는 여행객이었어요. 일등석보다 세 단계나 낮은 좌석을 끊었는데 의외로(?) 침대석이었습니다. 다만 가죽시트는 ‘쩌억’ 소리가 날 만큼 끈적거렸고, 다리는 펴지도 못할 만큼 비좁았지만, 녹초가 된 몸을 잠시 뉠 순 있었어요. 그런데 기차 안에 사람들이 점점 불어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제 얼굴로 엉덩이들이 밀려 들어왔습니다. 여긴 내 자리라고, 지분을 주장하는 것조차 의미가 없어서 그냥 함께 앉아가기를 택했죠. 힘들었지만 지금은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선택한 좌석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럽 티켓오피스_대부분 무인발권기가 있지만 휠체어 유저는 창구로 가야했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그제야 윤영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처음부터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값을 치르는데 윤영만이 그렇지 못했습니다. 기차 한 칸에만 있는 휠체어석으로 선택하기를 강요받고, 그마저도 특혜를 요구하는 게 아니냐며 의심받은 것이죠. 윤영이 화가 날 만합니다.
그러고 보면 니콜과 니콜을 옹호하던 그 사람처럼, 장애인이 특혜를 요구한다고 여기거나 더 나아가 특혜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납니다. 윤영의 휠체어를 두고도 “이거 나라에서 다 주잖아요?”라고 하는 사람도 많아요. 그때마다 윤영은 진저리를 칩니다. 사람들은 장애인이라면 세금도 안 내고, 교통비나 입장료도 안 내고 각종 혜택을 누린다고 여깁니다. 여기서 역차별의 논리로 나아가면 장애인은 비장애인이 내는 세금으로 먹고산다며 불만을 터뜨리기도 하죠.
진실은 장애인도 자신의 소득에 따라 세금을 내거나 감면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감면을 받는 까닭은 장애인이 비장애인보다 월 평균소득이 기준치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소득은 고용 상태와 밀접한데 “2023년 하반기 장애인 경제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의 고용률은 34%로 전체 인구 고용률인 63.3%에 비해 절반밖에 되지 않습니다. 실업률도 전체 인구의 2.1%인 것에 비해 장애인의 실업률은 그의 2배에 가까운 3.9%로 조사되었고요. 장애인의무고용제도가 있어도 여전히 자기 능력을 펼쳐 볼 기회조차 얻기 힘들죠.
입장료나 교통비가 할인되는 까닭도 같은 맥락입니다. 기차는 비장애인처럼 원하는 좌석에 앉아갈 수 없으며, 공연장이나 관광지에는 수어 통역, 음성해설, 휠체어 좌석과 엘리베이터를 제공하지 않는 공간이 여전히 많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감면은 혜택이 아닙니다. 또한, 감면은 특정한 사람에게 특혜를 주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비장애인 중심으로 설계된 세상임을 국가가 인정하고, 불편을 감내하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죠.
윤영의 분노를 단번에 이해하지 못한 까닭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단순히 싸움을 싫어하고, 소심한 제 성격이 전부는 아니었어요. ‘장애인이니까 그렇겠지’, ‘장애인이면 어쩔 수 없지’라는 생각이 문제였던 겁니다. 이런 생각은 평등의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흐릿하게 만드니까요. 휠체어석에 앉으려면 어째서 일등석 값을 치러야 하는지. 어째서, 왜, 장애인이면 어쩔 수가 없는 일이 되는지 따져보기를 멈추게 하죠. 저는 이런 상태에서 니콜을 만났던 겁니다.
윤영에게는 분노의 밤이었겠지만, 저에겐 도리어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깨달음을 얻고 다짐하게 되었으니까요. 역지사지하며 깊이 사고하기를 멈추지 않기로 말이죠.
*글= 박윤영 작가, 채준우 작가
*사진= 작가, 뉴스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