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으로 완성한 어머니의 삶

故 이옥순 여사, 41번째 더미라클스 회원 가입


 


(왼쪽부터)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대표, 모연희·모성훈 님


(왼쪽부터)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대표, 모연희·모성훈 님



“오늘 엄마 생각이 참 많이 나네요. 엄마가 이 자리에 계셨다면 참 즐거워하셨을 거예요. 유머를 던지면서 모두를 웃게 했을 테고요. ‘기왕 하는 거 좀 더 기부하라’고 얘기하셨을 거예요. 늘 반대부터 하고 또 막상 하면 누구보다 잘하고 좋아하셨지요.”


어머니의 뜻을 이어 유산 1억5000만 원을 기부한 남매가 가족들과 함께 푸르메소셜팜을 찾았습니다. 푸르메재단 고액기부자 모임 ‘더미라클스’의 41번째 회원으로 이름을 올린 고 이옥순 여사의 자녀 모성훈·모연희 남매입니다. 더미라클스 가입 행사에 참석한 가족들은 이날 이옥순 여사의 행적을 되짚고 추억하며 그리움을 나눴습니다.


대장부지만 한없이 여렸던 어머니



모성훈-연희 남매에게 ‘어머니’로서의 이옥순 여사는 엄격하고 보수적인 분이었습니다. 또 ‘좀 누리고 살라’는 자녀들의 성화에도 ‘내 태도니 바꾸려고 하지 말라’며 평생 검소하게 사셨지요. 그런 어머니가 오랫동안 나눔의 삶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남매는 어머니 돌아가시기 2년 전에야 알았습니다. “제(모성훈)가 우연히 어머니 댁 우체통에서 후원 감사편지를 발견했어요. 알고 보니 구족화가와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오랫동안 기부하셨던 거예요. 편지를 들고 들어가니 화들짝 놀라시면서 손사래를 치셨어요. 부끄러우셨던 거죠. 그 일로 내내 어머니를 놀렸어요.”(웃음)


한 인간으로서 이옥순 여사는 대장부의 야망을 가졌지만, 시대의 벽을 넘지 못한 구시대 여성이었습니다. “처녀 때 직원 15명을 둔 니트 공장을 운영하다가 결혼하면서 바로 그만두고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상경해 한동안 주부로 사셨죠. 그러다 41살에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뒤늦게 경제활동을 하며 재산을 불리실 만큼 사업 수완이 뛰어나셨어요.”


등장만 하면 주목받는 대단한 멋쟁이이기도 했답니다. “언젠가 유명 인사가 모인 지인의 결혼식에 등장하셨는데, 주변에서 연예인으로 오해할 정도였어요. 브랜드 옷 한 번 산 적이 없으신데도 유품을 정리할 때 예술가들이 서로 손 들고 사 갈 정도로 안목이 높으셨어요. 시대를 잘 타고났다면 패션기업 하나는 거뜬히 운영하셨을 거예요.”



성훈-연희 씨 각자에게는 강하게 보이지만 실은 여리디 여린 나의 ‘이옥순 여사’가 있습니다. 젊어서 사회운동을 하며 어머니와 끊임없이 부딪혔던 성훈 씨는 자신의 그 성정이 이옥순 여사에게서 이어온 것이라고 믿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말을 걸고 늘 돕고 싶어 하셨어요. 옳지 않은 일에는 기어코 목소리를 내셨고요. ‘정의’와 ‘측은지심’을 가지고 있으셨죠.”


연희 씨에게 이옥순 여사는 두 자녀를 키우기 위해 독하게 살아온 한편 일찍 남편을 여읜 깊은 상실감과 외로움을 간직한 여인이었습니다. “어머니 집 근처 장애인 재활원에 봉사를 함께 다녔으면 그 외로운 삶에 조금은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후회도 해요. 그곳의 발달장애 아이들을 마주치면 꼭 말을 건네셨거든요. 마치 친한 친구처럼요.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는 푸르메재단을 기부처로 선택한 것도 그 아이들을 아꼈던 어머니 마음을 알았기 때문이에요.”


어머니의 삶이자 마지막 위로가 된 ‘나눔’


성훈 씨는 기부처로 푸르메재단을 선택한 또 다른 이유로 재단의 사업이 장애 당사자뿐 아니라 장애인 가족 전체의 삶에 집중한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평생 희생하며 사신 어머니에게 가족, 특히 자식이 가진 의미는 상당히 컸어요. 장애어린이와 그 가족들의 지원, 장애청년의 자립을 위한 푸르메재단 사업에 관심을 갖고 지원하셨을 게 분명해요.”


어머니가 마지막을 준비할 여유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성훈-연희 씨는 아쉽기만 합니다. “생전에는 누리지 못하는 엄마가 답답하기만 했는데, 이제는 알 것 같아요. 결국 어머니가 저희를 여기까지 이끄셨어요. 이 나눔은 어머니 평생의 삶에 대한 보상이자 위로가 될 거예요.


두 사람의 삶 속에 이옥순 여사는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국면에, 크고 작은 결정 앞에서, 문득 오빠에게 밴 어머니 냄새에, 내 아이가 남몰래 실천한 나눔에서,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모든 날에 어머니를 듣고 느끼고 떠올릴 테지요.


푸르메소셜팜 기부벽에 이름이 새겨진 고 이옥순 여사 푸르메소셜팜 기부벽에 이름이 새겨진 고 이옥순 여사


모성훈, 모연희 남매가 어머니 고 이옥순 여사의 이름으로 기부한 1억5000만 원은 향후 6년간 푸르메소셜팜 방울토마토 첫 모종 구입비로 사용됩니다. 발달장애 직원들의 한 해의 시작에 이옥순 여사의 뜻과 의지가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의지가 강한 분이라 그렇게 급하게 가실 줄 몰랐어요. 그만큼 갑작스럽고 슬펐어요. 그런데 이 기부를 결정하면서 오늘까지 어머니 얘기를 정말 많이 했고, 또 이렇게 귀하게 맞아주신 덕분에 참 많은 위로가 됐어요. 고맙습니다.”


이옥순 여사의 뜻을 기리며



분명 처음 맞이한 이는 5명인데, 마치 6명이 함께한 듯 묘한 하루였습니다. 손사래를 치던 누군가가 억지로 끌려 나오더니 위트 있는 인사말로 모두를 빵 터트린 듯도 하고요. 농장과 카페를 둘러보며 만난 장애직원에게 따뜻한 눈길과 친근한 말을 툭 던지는 장면을 본 듯도 합니다. 잘 키워놓은 자녀들 옆에 앉아 자신의 삶과 태도를 대차게 얘기하는 작고 다부진 한 어르신을 분명 본 것 같거든요. 꼭 다시 만나고 싶은 매력적인 분이었지요.


6년의 인연을 이제 막 시작했으니, 내년 봄에 다시 찾아와주실까요? 당신의 태도를 그대로 빼닮아 올곧고 선한 자녀들이 푸르메소셜팜에 아름다운 씨앗을 뿌렸습니다. 고 이옥순 여사의 못다 이룬 포부가 이곳 농장에서부터 쭉쭉 뻗어나가 사회 곳곳에 아름답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푸르메재단이 함께하겠습니다.



|  더미라클스 가입 문의 : 02-6395-7002 / djdjfk@purme.org


*글, 사진= 지화정 과장 (푸르메재단 마케팅팀)


 


'더미라클스' 다음 주인공은 당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