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으로 산다는 것] 발달장애인에게 자립을 묻다

<발달장애인으로 산다는 것> 6화


 



칼럼니스트 김유리는 평범한 직장인이자,  에세이 <너와 함께라면>을 쓴 발달장애인 작가이다. 말보다 글이 편하다고 말하는 천생 글쟁이다. 칼럼의 주제에서 '자립'이라 함은 '남에게 의지하거나 매어있지 않고 스스로 섬'을 의미하는 것으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늘려갔던 경험들을 들려줄 계획이다. 그 안에서 발달장애와 관련한 사회적 이슈를 함께 다루며 장애 당사자로서 목소리를 내보기로 했다.



나는 현재 가족과 함께 살며 독립 시기를 최대한 늦추고 있다. 혼자 살기 위해서는 경제적 자립도 중요한데 발달장애인을 고용하는 회사는 서울에 몰려 있다. 이런 이유로 서울을 떠날 수가 없는데 서울의 집값은 너무 비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경제적인 문제를 떠나서 독립을 하게 되면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발달장애인이 혼자 사는 과정에 관해 궁금한 점이 있어도 물어볼 곳이 마땅치 않다. 마침 올해 푸르메재단에 칼럼을 연재하면서 자립한 푸르메소셜팜 발달장애 직원 서정 님을 소개받아 자립에 관해 평소에 궁금한 것들을 물어볼 기회가 생겼다.


인터뷰를 위해 푸르메소셜팜에서 만난 김유리 칼럼니스트(왼쪽)과 푸르메소셜팜 육서정 직원인터뷰를 위해 푸르메소셜팜에서 만난 김유리 칼럼니스트(왼쪽)과 푸르메소셜팜 육서정 직원


지난 6월 14일, 서정 님을 만나러 여주에 위치한 스마트 농장인 푸르메소셜팜에 다녀왔다. 에어컨 바람을 막기 위해 집에서 챙겨온 가디건을 지하철에 두고 내릴 정도로 긴장이 되었다. 누군가를 인터뷰하는 일은 처음이었다. 인터뷰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은 내가 섣불리 준비한 질문들이 인터뷰 대상자에게 실례가 되는 건 아닐지 염려스러웠다. 다행히 내가 준비한 모든 질문에 미소로 답해주셔서 감사했다. 내가 방문했을 때 서정 님은 하얀 위생모자와 장갑을 끼고 방울토마토를 포장하는 일을 하고 계셨다. 우리는 푸르메소셜팜 내 조용한 프로그램실로 이동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푸르메소셜팜 가공팀에서 동료들과 일하는 서정 님푸르메소셜팜 가공팀에서 일하는 육서정 직원


서정 님은 어렸을 때부터 장애인 시설에서 지내다가 1년 전에 장애인 자립 체험홈으로 들어왔다. 농장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와 함께 머물며 자립을 준비 중이었다. 시설에서는 한 공간에 6~7명이 함께 살았다. 장애인 자립생활 체험홈은 거실 하나에 방 두 칸으로, 둘이 사는데 너무 좋다고 했다. 서정님 이야기를 들으니 기숙사 생활을 하다가 내 집, 내 방으로 돌아왔을 때 받았던 기분이 생각났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기도에 위치한 장애인직업전문학교에 다니며 기숙사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한방에 6명까지 들어가는 곳에서 지냈는데,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좁은 방에서 생활하려니 너무 힘들었다. 그렇게 6개월쯤 생활하다가 학교 대신 직장을 다니게 되어 6인실 기숙사를 벗어나게 되었는데, 천국이 따로 없었다. 둘이서 생활하니 너무 좋다는 서정님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시설 선생님들이 이제 혼자 살아볼 것을 권유받았다는 서정님은 복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설에 머무는 많은 발달장애인들이 탈시설을 못 하는 이유가 반대에 부딪혀서라고 알고 있다. 나가 살고 싶다고 하면 ‘네가 혼자서 어떻게 지내려고’와 같은 말을 듣는다고 한다. 이것은 집에서 사는 발달장애인 당사자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가족의 반대에 부딪혀서 나가 살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발달장애인의 자립은 주변의 적극적인 지지가 바탕이 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쁜 그릇만 놓고도 살아질 거라고 생각했던 20대 초반에, 부모님께 혼자 나가 살아보고 싶다는 말을 했었다. 그때 부모님께선 아직은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때보다 사회 경험이 많이 쌓이고, 돈도 많이 모은 지금도 여전히 혼자 살아보고 싶다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다. 어렵다는 말을 또 들을까 봐서다. 서정 님의 말 한마디가 이런 걱정을 잠재워 주었다.



“시설 선생님들이 자립한 제가 기특하대요. 너무 잘하고 있대요. 명절 때마다 찾아봬요.”


부모님도 당장은 내가 혼자 사는 걸 걱정하시겠지만, 막상 자립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자랑스러워하지 않을까 싶다. 독립하면 자유롭겠지만 갑자기 혼자가 되면 외롭진 않을까? 혼자 있을 때 외로움을 견디는 서정 님만의 방법이 궁금했다.


“전 집에 있을 땐 음악을 듣거나 만들기를 해요.”


절로 맞장구가 쳐졌다. 혼자 지낼 때 덜 외로운 방법은 역시 나와의 시간을 즐기는 것이다. 만들기에 푹 빠진 나머지 집안일 하는 걸 까먹거나 미루진 않는지 궁금했다. 나는 취미생활을 하느라, 손빨래한 것을 탈수한다며 세탁기에 돌려놓고 이튿날 꺼낸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서정 님은 절대 집안일을 미룬 적이 없다고 했다. 반성이 되었다. 집안일 중에서 청소가 가장 좋다고 한다. 지저분한 게 있으면 못 본다고 했다. 조금 부끄러웠다. 나는 내 책상부터 여러 가지 물건들로 난장판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방 정리만 하는 것도 어려운데 집 전체 관리를 잘할 수 있을까? 서정 님은 시설에서 살 때, 규칙에 따라 청소, 빨래 등을 하며 자연스럽게 터득했다고 한다. 가장 자신 있는 요리는 볶음밥과 계란찜이라고 했다. 이날 서정 님 집을 방문해 보진 못했지만 얼마나 깔끔하게 하고 살지 짐작이 되었다.


나는 서정 님이나 내 어머니만큼 집안일을 깔끔하게 하지는 못하지만 청소, 빨래, 쓰레기 버리기 정도는 할 수 있다. 부모님이 집을 비우셨을 때 김치찌개도 끓어 본 적도 있다. 이쯤 되면 나도 혼자서 살아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다. 인터넷 포털에서 ‘발달장애인 자립’이라고 검색해 보면, 검색 결과 상단에 발달장애인은 인지능력 부족으로 자립역량이 부족하거나 불가능하여 지역사회에서의 자립이 어려운 경우가 대다수라는 글이 보인다. 그래서 발달장애인이 자립을 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연습이 필요하다는 말들이 나오나 보다. 그렇다면 비장애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자립역량이 타고났을까? 내 주변에 독립을 한 비장애인들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사촌동생이 독립하고 얼마간은 고모가 집도 들여다봐 주시고, 반찬도 해 주신 걸로 알고 있다. 부모님의 귀농으로 원래 살던 집에서 동생과 함께 반 자취 중이라는 비장애인 친구도 있다. 처음에는 요리를 잘할 줄 몰라, 친구를 아는 이웃분들이 밥 굶고 살지는 않을지 걱정할 정도였는데, 1년이 지난 지금은 웬만한 음식은 할 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몇 년 전, 남동생도 결혼하기 전에 자취를 했었는데, 한동안은 부모님 전화기에 불이 났었다.


자취생 이야기를 담은 방송이나 에세이, 만화 등을 보면, 혼자 살면서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은 이 없고, 타인의 도움을 단 한 번도 받지 않은 이도 없다. 처음부터 자립이 가능한 사람은 없다. 반대로 자립이 불가능한 사람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유독 발달장애인에게만 자립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걸까? 모든 걸 혼자서 완벽하게 해낼 수 있기 전까지 독립을 미뤄야 한다면 비장애인 중에서도 자립이 가능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김치는 마트에서 살 때도 있고 주변에서 얻어먹기도 해요. 활동지원 선생님께서 김치를 해다 주실 때도 있어요.”


장애, 비장애를 떠나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발달장애인이 아니어도 누구나 일생동안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지원을 해 주기 위해 행정적으로 장애, 비장애를 구분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서정 님은 병원에 가거나 장을 볼 때,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 나는 신체가 자유로운 발달장애인은 혼자 살아도 활동지원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이다음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서정 님이 활동지원을 받는다고 하니, 나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나에게 필요한 도움은 무엇일지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옷이나 신발을 사야 할 때, 새로운 미용실에 가야 할 때, 은행에서 적금이나 대출을 받아야 할 때처럼 사람들과 의사소통이 필요할 경우 지원받고 싶다. 집안 살림은 어설프게라도 할 수 있지만, 혼자서 매장을 방문하면 내 말을 잘 못 알아들어서 필요한 서비스를 받고 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자립생활 체험 홈을 떠나서 혼자 살아 볼 거라는 서정 님은 자립 준비를 하면서 배운 점이 많고 뿌듯하다고 했다. 보안이 잘 되어 있는 집으로 이사 가서 방 하나는 서재로 쓰고 장식품도 놓으며 예쁘게 꾸미고 살고 싶다는 서정 님의 목소리가 들떠 보였다.


체험 홈을 떠나면 집세에 대한 부담은 없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히 서정 님이 살고 있는 경기도 여주는 서울보다 부담이 훨씬 적다고 한다. 나도 이다음에 혼자 살게 된다면 집값만 비싸고 사람들로 북적북적한 서울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여주에 위치한 푸르메소셜팜처럼 발달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곳들이 다른 지역에도 많이 생기기를 바란다.


“제가 겁이 많아서 자립하기 전에 시설 선생님들이 걱정도 많이 하셨는데 지금 너무 잘하고 있다고 얘기해주세요. 이런 저도 자립을 했으니 유리 님도 꼭 도전해보세요. 분명 잘하실 수 있을 거예요.”



서정 님은 자립해야 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지만 아직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자립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풀렸다. 서정 님 덕분에 물음표에서 시작해서 느낌표로 끝을 맺으며 자신감을 얻었다. 현재 청년인 나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인생의 고민과 걱정들을 지금보다 수없이 더 겪을 것이다. 인생의 난이도가 높아지게 되면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일을 자주 접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럴 때마다 내 안에만 갇혀 움츠리지 않고 이번처럼 다른 사람들 이야기도 들어보며 나만의 길을 한 걸음씩 만들어 가보련다.


*글= 김유리 작가
*사진= 지화정 과장 (마케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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