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에 경고등이 켜졌다
<박윤영·채준우의 다르다Go?> 7화
박윤영과 채준우는 장애·비장애 커플이다. 함께 여행하고, 둘이 떠드는 게 여전히 제일 좋다. 둘은 45일 유럽여행을 다녀온 뒤 이를 엮은 여행에세이 <너와 함께한 모든 길이 좋았다(2018)>를 펴냈고, 최근에는 <장애인이 더 많은 세상이라면(2023)>이라는 장애 인권을 다룬 책을 출간했다.
윤영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지하철과 버스 모두 휠체어 탑승이 가능했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는 참으로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하는 곳이에요! 대중교통부터 숙소까지요. 다른 유럽 도시는 지하철이 너무 낡아서 휠체어로 타기가 어려운데 여기서는 지하철도 버스도 모두 휠체어로 탈 수 있거든요.
바르셀로나는 저렴한 숙소인 호스텔에도 장애인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게다가 저렴한 게스트하우스에도 장애인 객실이 있는 게 아니겠어요? 여느 배낭여행객과 다를 바 없는 여정을 이어갈 수 있게 해 준 최초의 장소였어요.
그래서! 대부분의 여행객이 그렇듯 우리도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의 흔적을 찾아 나섰어요. 바르셀로나는 세계적인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구엘 공원부터 사그라다 파밀리아까지, 그가 지은 독창적인 건축물들을 구경하러 부지런히 돌아다녔죠.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신비로운 건물들로 도시는 빛났어요. 입이 떡 하고 벌어질 만큼 경이로웠죠.
그중 기억에 남는 곳은 까사밀라예요.(1912년 안토니오 가우디가 지은 고급연립주택) 마치 순백색의 설탕 코팅을 한 과자의 집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때는 건물 전체가 돌산을 이루고 있는 듯 기묘한 모습을 하고 있었죠. 우린 이곳에서 잊지 못할 사건과 맞닥뜨려요. 바로 준우가 냅다(?) 호통을 들은 곳이었거든요.
까사밀라. 출처: pixabay
“어이 자네, 이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하는가? 고작 한 층만 내려가면 되는데 그걸 못 걸어서?”
“예...?”
준우가 엘리베이터를 호출한 순간 벌어진 일이에요. 구경을 모두 마치고 내려가기 위해서는 엘리베이터를 호출해야만 했거든요. 유럽의 많은 관광지는 엘리베이터가 잠겨있어요. 평소에는 잠겨있다가 휠체어 유저처럼 필요한 사람이 오면 직원이 열어주는 식이었죠. 이곳도 마찬가지였고요. 아! 저는 그때 어디에 있었냐고요?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듯,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기념품샵에 다녀오는 길이었어요. 준우만 홀로 남겨둔 채로요.
준우에 의하면 그 할아버지는 유명 햄버거 프랜차이즈 KFC 창업자인 커넬 샌더스를 닮았다고 했어요. 맞아요, 그 하얀 양복의 할아버지요! 그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홀로 기다리는 준우에게 그렇게 화를 냈대요. 아무리 제가 그 자리에 없었다고 해도 그렇지,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너무 당황한 데다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아 준우는 별다른 말도 하지 못했대요.
그의 사고와 발언에는 편견과 무례가 담겨 있어요. 겉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엘리베이터가 필요한 사람이 얼마든지 있어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휠체어를 탄 사람만이 엘리베이터를 사용한다고 여겼죠. 그래서 준우의 겉모습만 보고 엘리베이터가 필요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했고,(편견) 정확한 사실이나 사정도 알아보지 않은 채 대뜸 비난했던 거예요.(무례)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제 안에 떠오른 감정이었어요. 준우를 위로하면서도 ‘그 할아버지가 꽤 젠틀한 편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적어도 “휠체어는 나중에 타야겠네”라거나 “이런, 휠체어 때문에 못 타잖아!”라는 소린 안 했으니까요. 사실 이 말들은 제가 한국에서 꾸준히 들어왔던 말들이에요. 엘리베이터 줄을 서고 있는 저를 제치고는 “휠체어는 나중에 타야겠네”라고 하거나, 엘리베이터가 이미 만원일 뿐인데 콕 집어 “아이고, 휠체어 때문에 더는 못 타겠네”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아무 의식 없이 내뱉는 말들이 저에게 따끔따끔 박혔거든요.
준우
솔직히 좀 억울했습니다. 엄연히 따지자면 저는 엘리베이터가 필요한 사람이었어요. 윤영과 함께 여정을 이어 나가기 위해서 말입니다. 사정도 모르면서 비난부터 하다니요. 뭐라고 한마디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할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 사이 그는 계단을 내려갔죠. 저는 까사밀라를 나와서도 분이 풀리지 않은 채 씩씩거렸어요.
엘리베이터. 출처: pixabay
그의 머릿속에는 ‘엘리베이터 = 휠체어 사용자’라고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젊고, 두 다리로 서 있는 저는 그 기준에 포함되지 못했죠. 그렇게 엘리베이터가 필요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단 한 개 층의 계단이라도 내려가기 힘든 사람이 있으니까요.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내부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일시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렇습니다. 심지어는 저처럼 일행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호출할 수도 있죠.
때때로 고정관념은 위험해요. 이런 식으로 생각의 틀을 좁히니까요. 우리의 상황은 이토록 다채로운데 생각이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게 발목을 붙잡습니다. 더불어 엘리베이터는 누군가의 전용도 아닙니다. 장애인, 노약자뿐만 아니라 필요한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KFC 창업자인 커넬 샌더스. 출처: pixabay
까사밀라를 나와서 조금 떨어진 곳에 햄버거를 먹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제 어깨에 커다란 손을 턱 얹더군요. 깜짝 놀라서 콜라가 코로 넘어갈 뻔했습니다만, 뒤돌아보니 아까 그 커넬 샌더스 할아버지였습니다.
“아까는 미안했네. 이 친구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지?”
아까와는 다른 푸근한 미소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만남에 얼떨떨했지만 저는 쿨하게 그의 사과를 받아들였습니다. 다 괜찮다고요. 그는 어깨를 두어 번 더 두드리고는 좋은 여행을 하길 바란다며 가게를 떠났습니다.
어느새 분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 사라지더군요. 오히려 그에 대한 존경심마저 차오르는 듯했습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할 수 있는 용기가 멋져 보였거든요. 저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어쩌면 윤영이 말한 것처럼 젠틀맨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도 이번 기회를 통해 고정관념에 경고등이 켜졌기를 바랍니다.
*글, 사진= 박윤영 작가, 채준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