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으로 산다는 것]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발달장애인으로 산다는 것> 5화


 



칼럼니스트 김유리는 평범한 직장인이자,  에세이 <너와 함께라면>을 쓴 발달장애인 작가이다. 말보다 글이 편하다고 말하는 천생 글쟁이다. 칼럼의 주제에서 '자립'이라 함은 '남에게 의지하거나 매어있지 않고 스스로 섬'을 의미하는 것으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늘려갔던 경험들을 들려줄 계획이다. 그 안에서 발달장애와 관련한 사회적 이슈를 함께 다루며 장애 당사자로서 목소리를 내보기로 했다.



삶은 걱정의 연속이다. 10대 때는 학업과 친구 관계를, 20~30대 초반까지는 취업 걱정을 주로 했다. 컴퓨터 공부도 하며, 취업 준비에 열정을 다 쏟은 덕분에 지금은 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정년이 보장된 직장을 얻고 나니 또 다른 걱정거리가 물밀듯이 밀려온다. 언젠가는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살게 되게 될 날에 대한 걱정이다.


부모님께서 집 나가 살라는 말씀을 하신 적은 없다. 오히려 혼자 집 얻어 살면 한 달에 돈이 얼마나 드는지 아냐며 말리시는 편이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매달 나가는 집세를 포함해 1인 가구의 한 달 생활비가 100~150만 원이란다. 나는 하루 5시간만 일하는 단시간 근로자이다. 그래서 지금은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자립을 위한 자금을 열심히 모으고 있다. 사실 경제적 문제를 떠나 가족과 함께 사는 지금이 좋다. 외롭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독립해야 하는 날이 올 것이다.



20대 초반, 사회초년생일 때는 1인 가구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계기는 지금 생각해보면 허무하게도 다이소에 전시된 예쁜 그릇들을 보고 난 후부터였다. 부모님 잔소리가 없는 나만의 독립된 공간에 아기자기한 그릇, 소품들을 놓고 살고 싶었다. 방도 내 마음대로 꾸며보면서 말이다. 하지만 1년, 2년, 5년... 사회생활을 하면서 깨달았다. 집만 꾸며놓는다고 알아서 잘 살아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우선 살 곳을 구하는 것과 경제적 능력은 둘째치더라도 밥하기, 반찬 만들기, 청소하기, 빨래하기,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과 이불 정리하기, 매달 관리비/공과금 내기, 생활비 관리, 집안 수리하기, 수리가 어려우면 AS 요청하기 등 모든 일들을 내가 직접 해야 한다. 부모님께서 때 되면 알아서 해주시다 보니 집에 소품들만 놓고 살아도 살아진다고 생각을 했었다. 혼자서도 살아가려면 부지런해야 했다. 그리고 똑 부러져야 했다.


요즘도 마찬가지지만 10~20대 때 나는 뭐든 완벽하게 해내고 싶었다. 공부든 일이든 내게 주어진 일은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갓 태어났을 때 산소공급 부족으로 한번 손상된 인지기능은 아무리 노력해도 회복되지 않았고, 비장애인처럼 살 수도 없었다. 무슨 일을 하든 어느 시점에 도달하면 한계에 부딪혔다. 컴퓨터 공부를 많이 했지만 조금이라도 업무가 복잡해지면 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내 능력에 맞는 일을 배정해 주고 근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근무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자립하는 것도 지금 회사생활에 대입해보면 가능하지 않을까? 업무를 볼 때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 근로 지원을 받듯이 혼자 살게 될 때 가능하다면 주 2~3회, 2시간 정도는 활동 지원을 받고 싶다. 활동지원사에게 내 살림을 완전히 맡기는 것이 아닌, 옆에서 보고 배워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직접 해보는 삶을 원한다.



요리가 어렵다면 밀키트를 구입해서 조리해 먹으면 되고, 반찬가게에서 반찬을 사 먹어도 된다. 나 혼자 살게 된다면 지금처럼 넓은 집이 아니라 혼자 살기에 딱 좋은 아담한 집에서 살게 될 테니 집안청소도 훨씬 쉬워질 것이다. 내 옷만 있으니 빨래를 널고 개는데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요즘엔 유튜브에 검색을 해보면 요리하는 방법을 알 수 있으니 엄마처럼 부지런만 떤다면 혼자서도 삼시세끼 다 챙겨 먹을 수 있을 것이이다.


한 달 전쯤 엄마가 이틀 동안 집을 비운 적이 있었다. 엄마가 집에 안 계시면 언제나 그랬듯 내가 좋아하는 라면과 빵, 시리얼을 먹으며 하루를 보내려고 했다. 라면 봉지를 뜯으려다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귀찮다고 평생 라면과 빵, 시리얼만 먹으면 나중에 내 건강은 어떻게 될까? 아무리 못해도 김치찌개 정도는 끓일 줄 알아야 않을까?


먼저 유튜브에 김치찌개 끓이는 방법을 검색해보았다. 냉장고에는 김치찌개용 김치와 송송 썰린 파, 그리고 김치찌개용 돼지고기 한 덩어리가 있었다. 아빠와 동생도 외출을 한터라 마침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느 누구의 잔소리 없이 혼자 김치찌개를 끓이는 연습을 해보기에 정말 좋은 조건이었다. 유튜브에 나온 데로 도마 위에 고기를 잘게 썰고, 끓는 물에 김치와 다진마늘, 파, 국간장을 넣었다. 맛을 보았는데 많이 짜게 됐길래 물을 더 부어 푹 끓었다. 거의 1시간 만에 완성된 김치찌개에 너무 감격을 하여 사진으로 남겼다. 김치찌개를 열심히 먹고 있는데 엄마에게 저녁은 잘 챙겨 먹었냐고 전화가 왔다. 저녁을 거르거나 인스턴트 음식으로 때운 건 아닌지 걱정되신 듯했다.


“냉장고 안에 돼지고기가 있어서 돼지고기 김치찌개 끓었어요.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엄마!”


“잘했네, 잘했어!”


얼마 전에는 부모님께서 여행을 가셔서 이번에는 시장에서 내가 좋아하는 순댓국을 사다 먹었다. 라면과 빵도 먹었는데, 혼자 살게 되면 날마다 인스턴트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거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또래의 비장애인들도 자취를 하면 인스턴트와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며 산다는데 나라고 그렇게 살면 안 되나 싶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고작 하루, 삼시세끼를 대충 챙겨 먹었다고 속이 쓰린 걸 보니 안 그래도 가족력으로 위장질환과 당뇨를 조심해야 하는 내가 남들처럼 지내면 건강에 탈이 나는 건 시간 문제일 것이다. 간이 센 밀키트나 반찬도 매일 사 먹기엔 무리일 테다. 아무래도 자립 준비 중 하나로 시장에서 재료를 사다가 요리 연습해 보기도 넣어야 할까 보다.



아직 경험이 없어서 쉽게 말하지만 막상 혼자 살게 되면 분명 어려움이 있을 거다. 특히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불과 옷들을 나 혼자 바꿀 수 있을까?’ ‘상한 음식을 구분 못하고 냉장고에 그대로 놔뒀다가 먹어버리면 어쩌지?’ ‘이웃집에서 이야기 좀 하자고 문을 두드리면 어쩌지?’와 같은, 전에는 하지 않았던 새로운 고민들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벌써 서른 중반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듣는다면 ‘내 나이 벌써 ~’라고 하는 것이 귀엽다고 하시겠지만 독립을 대비하기에는 늦은 나이라 생각한다. 이때껏 아무런 준비 없이 부모님 댁에 얹혀 지내는 것이 부끄럽다. 부모님과 이렇게 천년만년 지내고 싶지만 불가능한 일일 테다. 혼자 살아가게 될 날을 위한 대비책을 지금이라도 마련해 놔야 한다.


부모님께서 더 이상 함께 살기 힘드니 네가 살 집을 알아보면 좋겠다고 말씀하실 때 준비하기 시작하면 늦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일단 집안 살림살이를 잘 꾸리는 연습부터 하면 좋을까? 일주일에 2~3번만이라도 활동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미리 알아보면 좋을까? 나는 소득이 적은데 집세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나보다 일찍 독립을 한 발달장애인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글= 김유리 작가
*사진= 픽사베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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