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으로 산다는 것] 내가 일할 수 있는 이유

<발달장애인으로 산다는 것> 3화


 


“전 어른이 되면 웹디자이너로 일할 거예요. 중학교 졸업하고 가고 싶은 고등학교도 정해놨어요. 인터넷 고등학교에 갈 거예요.”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결정하지 못한 친구들도 많은데, 유리는 하고 싶은 일이 확실하구나. 선생님이 다 흐뭇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애 진단을 받으면 ‘이제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거야’라고 체념하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아는 세상이라곤 학교와 집 밖에 몰랐던 나는 원하는 일이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경쟁사회인 대한민국에서 장애를 가지고 노동시장에 뛰어드는 일이 얼마나 녹록치 않은지, 고등학교을 졸업하고 직접 몸으로 부딪혀 보기 전까진 전혀 알지 못했다.


출처 :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 AI이미지 생성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점찍어 놓은 인터넷 고등학교는 진학하지 못했다. 성적도 안 되거니와 특수학급이 없었다. 웹디자인 공부를 하겠다고 하니 좋은 컴퓨터를 사주신 부모님께서 인터넷 고등학교 진학만은 반대하셨던 이유를 훗날 직장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몸소 경험해 보며 깨달았다. 학교는 작은 사회와도 같아서 학생들 사이에서도 경쟁이 치열하다. 하지만 장애를 가지고도 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장애 특성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교육을 담당해 줄 선생님들이 있었다.


직장생활에서 장애를 이해받고, 능력에 맞는 직무를 부여받게 해 주는 회사를 만난다면 큰 행운이겠지만 아쉽게도 회사는 학교와 다르다. 일하는 대가로 다른 사람의 돈을 받는 곳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직무를 만들어 주기를 기대하기보다는 내가 기존에 있던 업무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만약에 현재 대한민국에서 장애 특성을 전혀 이해받지 못한 채 일해야 했다면, 나는 2021년 이후로는 취업을 포기하고 집에서 밥이나 축내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21년 6월에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에 입사하기 전까지만 해도 내 장애 특성을 전혀 이해받지 못할 때가 많았다고 생각한다. 글을 쓸 줄 아니까 업무도 잘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이직하는 회사마다 나에게 비장애인 직원 한 사람 몫을 원했고,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을 내 노력 부족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컴퓨터 자격증 10개를 취득하고, 세계장애인기능경기대회에 우리나라 대표 선수로 출전하는 등 비장애인처럼 업무를 잘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중학생 때부터 10년 넘게 꿈꾸었던 웹디자이너의 꿈도 접어야 했다. 뽑아주는 곳도 없었고, 이전 회사에서 우연한 기회에 디자인 작업을 할 수 있었지만, 퀼리티가 좋지 못해 인정을 못 받았던 까닭이다. 발달장애가 어떤 장애인지 잘 모르지만 컴퓨터 자격증이 많다고 하니, 하나하나 설명해 주지 않아도 문서작업, 서류정리 정도는 잘할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컴퓨터활용능력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는 사람에게 간단한 엑셀 작업조차도 수십 번 설명해 주어야 하니, 적잖이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어쩌면 글 쓰는 일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복지관 글쓰기 수업을 통해 알게 된 스타트업 출판사에서 일해 보았지만 몇 달 버티지 못했다. 내 장애 특성을 잘 알고 있었고, 글쓰기 실력을 인정받아 초고를 개작 수준으로 고치는 글 쓰는 작가로만 활동해 달라며 많은 배려를 받았지만, 서울의 유명한 대학원에서 국어국문과를 전공하셨다는 대표님을 중심으로 글쓰기 하나로 날고뛰는 엘리트 집단에서 성과를 내기란 쉽지 않았다.


다행히 정부에서는 장애 유형에 맞는 직무를 개발해 교육, 취업 지원을 해 준다. 다른 유형의 장애인보다 움직임이 자유로운 발달장애인에게는 사무직보다는 바리스타나 식당보조, 우편물 분류, 요양보호사 보조 업무처럼 손과 몸을 많이 움직이는 직무를 개발하고 교육해 관련 취업처로 알선해 준다. 원한다면 근로지원인과 함께 근무할 수 있다.


나도 컴퓨터 자격증을 아무리 많이 취득해도 되지도 않는 사무직만 고집하지 않고, 발달장애인도 잘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자 했다. 2020년쯤, 장애인일자리사업에 참가하게 돼 복지관에서 식당 주방보조를 맡게 되었다. 움직임이 불편하신 분들에게 식판을 대신 받아다 드리고, 식당 청소도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두 개씩 들고 나르는데, 나는 식판 하나를 들고도 목적지까지 국물을 흘리지 않고 빠르게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식판 두 개 날라보기를 시도해봤지만 위태위태했다. 옆에 계시던 분이 잡아주시지 않았으면 바닥에 엎었을지도 모르겠다. 빈 휴지통에 휴지 채워 넣는 일도 너무 느려서 식당 배식 보조업무에 배정을 받은 지 일주일도 안 돼 복지관 청소와 문서파쇄, 식권 오리기 같은 사무보조 업무로 재배정받았다. 그런 일들은 할 수 있었지만, 본래 복지관에서 장애인 일자리 대상자들에게 배정해 주려던 업무가 아니었다. 발달장애인은 식당 배식 보조로, 신체장애인은 복지관 이용자들을 안내하고 케어하는 업무로 배정받았는데, 내가 둘 다 하기 어려우니까 복지관에서 새로운 직무를 만들어 준 것이었다.


10년 전쯤 부모님께 “나처럼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바리스타로 카페에서 많이 일한대.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볼까?”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다. 부모님께서는 바리스타가 아무리 발달장애인이 하기 좋은 직종이라고 해도 손의 근력과 움직임이 별로 좋지 못한 나에게는 어려울 거라고 하셨다. 복지관에서 식당보조 업무를 해보고 일주일도 안 돼서 잘려 보니, 내 어린 시절 꿈인 디자이너의 길을 가길 원하셔서 하신 말씀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정부에서 나 같은 발달장애인을 위해 만들어 준 일들도 하기가 어렵다면 나는 과연 무슨 일들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취업을 포기할 때쯤 장애인 복지관에서 연락을 받았다. 서울의 한 장애인표준사업장에서 사무보조 할 발달장애인을 뽑으니 지원해 보라는 것이었다.


장애인표준사업장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하는 곳이다.장애인표준사업장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하는 곳이다.


그곳이 바로 지금 근무하고 있는 직장인데, 다른 회사였다면 맡지 못했을 일을 하고 있다. 회사 블로그에 글을 쓰고 회사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온라인쇼핑몰에 업로드 하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학교 다닐 때부터 관심이 많았던 디자인 작업도 한다. 회사에서는 나에게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 글을 쓸 수 있다고 하니, 회사 블로그 관리 업무를 주셨다. 이후 블로그뿐만 아니라 온라인쇼핑몰 상세페이지를 디자인하는 일도 맡았다.


홍보, 마케팅이라는 게 어떤 일인가? 디자인이라는 게 어떤 일인가? 대학에서 관련 학과를 졸업하고 경력이 있는 사람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마케팅, 디자인에 관련해서 날고뛰는 사람들도 어려워하는 회사 홍보를 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회사에서는 아주 잘하고 있다며 지난해 초, 나를 홍보팀 주임으로 승진시켜 주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0년 넘게 쭉 직장생활을 했지만 잘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승진까지 하기는 처음이었다. 이곳에서 홍보 업무를 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곳이 다른 회사처럼 나를 비장애인 기준에서 보지 않았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와 같은 회사의 배려에 힘입어 ‘내 수준에서 이만하면 됐지’라며 만족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회사를 좀 더 잘 알릴 수 있을까? 고민을 하게 된다.


발달장애인은 전체 장애인 중에서도 취업률이 가장 낮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의 발달장애인 일과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발달장애인 10명 중 7명이 미취업상태라고 한다. 어렵게 취업을 하더라도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고 퇴사를 반복한다. 장애인들을 채용하는 회사에서는 장애 유형이 아닌 개개인의 능력에 맞춘 직무를 개발, 부여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사무 직종에도, 발달장애인 맞춤 직종에도 종사하기 하기 어려운 중복발달장애인도 일할 수 있는 곳이 많아지기를 바라본다.


*글= 김유리 작가
*사진= 김유리 작가,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 AI이미지 생성


 


기부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