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영·채준우의 다르다Go?] 이런 곳까지 갈 수 있다니!
<박윤영·채준우의 다르다Go?> 2화
칼럼니스트 박윤영과 채준우는 장애·비장애 커플이다. 함께 여행하고, 둘이 떠드는 게 여전히 제일 좋다. 둘은 45일간 유럽여행을 다녀온 뒤 여행에세이 <너와 함께한 모든 길이 좋았다(2018)>를 펴냈고, 최근에는 장애 인권을 다룬 책 <장애인이 더 많은 세상이라면(2023)>을 출간했다.
윤영
신나는 여행 시작!
비행기로 떠나올 때만 해도 파르르 떨릴 만큼 걱정이었는데 이제 그런 건 기억도 안 나요. 며칠 사이 유럽 생활(?)에 적응한 것 같아요. 아니 안심하게 됐다는 말이 더 맞겠네요. 어디에나 휠체어 픽토그램이 붙은 탈 거리가 넘쳐났어요. 그걸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까 절로 마음이 놓였어요. ‘어디든 갈 수 있겠구나’ 싶어서요. 여태껏 이동을 못 할까 봐 불안의 소용돌이에 갇혀있었거든요.
한국은 기차나 지하철을 빼면 사실상 효율적인 대중교통수단이 없어요. 유럽도 똑같은 줄 알았죠. ‘지하철역과 먼 곳은 갈 수 없겠구나’ 지레짐작했고요. 그런데! 이곳의 모든 버스는 휠체어도 유아차도 탈 수 있는 저상버스였어요. 처음부터 걱정 따윈 할 필요가 없었단 얘기죠. 조금은 허탈해졌달까요. 고백하자면, 한국에서 휠체어 사용자로 살았던 기억(한계)을 지우고 나니 여행을 이어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아이러니하게도요.
그래서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스페인의 11개 도시의 여행을 이어갔어요. 자유로웠죠. 하지만 '정말 갈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 적은 있어요. 대표적으로 스위스의 융프라우와 이탈리아의 콜로세움이 그랬어요. 거친 대자연 속에 있거나 역사가 깊은 곳이라서 과연 휠체어를 타고 갈 수 있을지 궁금했죠.
융프라우 플라토
융프라우만 해도 무려 해발 4,158m(백두산은 해발 2,744m)나 될 만큼 높아요. 괜히 유럽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더군요. 기차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할 만큼 험난한 여정이었어요. 기차 레일도 엄청 가팔랐어요. 고도가 높아질수록 환승역의 규모도 단출해졌고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기차역이 맞는지 헷갈릴 정도예요.
융프라우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화장실
하지만 휠체어 리프트 서비스는 계속 이어졌어요. 덕분에 정상에 다다랐죠! 여느 관광객들과 똑같이요. 만년설을 밟아볼 수 있는 플라토에 나가서 신나게 놀았고, 휴게실에서 맛있는 컵라면을 먹고, 화장실에도 들렀다가 기념품샵까지 완벽하게 돌아봤어요! 단순히 ‘들렀다 돌아선 게’ 아니라 그곳을 충분히 즐긴 거예요. 만년설로 덮여있으며 일 년 중 대부분은 눈보라가 치는 그곳에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화장실이 있고, 경사로와 엘리베이터가 있다니! 직접 와 보지 않았다면 믿지 못했을 거예요.
믿기지 않기로는 콜로세움도 빠지지 않아요. 꼭 한번 가 보고 싶은 곳이었어요. 콜로세움 앞에서 사진 한 장 남길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죠. 다만 휠체어를 탄 채로 들어가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한 적 없어요. 너무 좁아서, 계단밖에 없어서 들어가지 못한 채 주변만 둘러보는 일은 허다했고 언제나 그래왔으니까요.
그런데 입구에서 믿을 수 없는 광경과 마주했어요. 번쩍이는 경사로와(제 눈에만 번쩍였을 거예요) 엘리베이터가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게다가 낡은 유적과 너무나 대비되는 신식 화장실도 있었죠. 무려 2000년 전에 지어진 고대 유적인데 어떻게 신식 편의시설을 만들 수 있었을까요? 저에겐 신선하다 못해 충격적인 사건이었어요. 감탄이 절로 나왔죠. 하지만 이내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어요.
융프라우 리프트 서비스
융프라우에 오르는 동안에는 감사했어요. 휠체어 사용자를 위해 열악한 조건에서도 리프트 서비스를 제공해 줘서요. 역무원들이 아니었다면 저는 아마 융프라우 근처에도 갈 수 없었겠죠? 콜로세움은 또 어떻고요. 고대 로마 시대 건물에 경사로만 해도 감지덕지한데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화장실까지 마련해 놨잖아요? 누군진 몰라도 찾아가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을 정도였어요. 이렇게 장애인을 ‘배려’해 주셔서 감사하다고요.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뒷머리가 차갑게 식는 걸 느꼈어요. ‘왜 감사하지?’라는 의문이 들어서요.
이상했어요. 어떤 관광객도 들여보내 줘서 고맙단 말은 하지 않아요. 관광객이 갈 수 있으니 관광지이지 관광객이 갈 수 없으면 그게 관광지일까요? 저 역시 관광객이 아니면 '무엇'일까요. 융프라우의 역무원과 편의시설을 설치한 사람에 대한 감사는 별개로 하더라도 관광지에 관광객이 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저는 제 자신이 조금 많이 싫어졌어요.
준우
윤영을 만난 첫해 봄은 정말이지 바빴습니다. 나란히 손을 잡고 서울 이곳저곳을 놀러 가려면 일주일에 7일도 부족했거든요. 데이트의 성지라는 경복궁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봄꽃이 만개한 경복궁은 어찌나 아름다운지. 수양 벚꽃이 흐드러지게 내려앉은 경회루에서 우리는 여느 커플들처럼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었죠. 우리는 눈이 마주칠 때마다 미소가 새어 나왔지만, 그렇지 않을 때 윤영의 표정은 종종 알 수 없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경복궁 근정전 전경. 출처= 궁능유적본부
그건 아무래도 저 바닥과 근정전 때문인 것 같았어요. 궁 앞마당을 지나는 동안에는 울퉁불퉁한 바닥에 휠체어가 이리저리 통통 튀었고 겨우 다다른 근정전 앞에서는 발길을 멈춰야 했거든요. 사람들은 내부를 보러 한달음에 계단을 올라가는데 윤영은 그저 한 발짝 떨어져 외관을 보는 게 전부였어요. 여기가 경복궁 내에서 가장 큰 건축물인데도 휠체어로는 올라가 볼 수 없다니…. 혼자 왔을 때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던 사실이었습니다.
“내가 안아 줄게. 같이 올라가자!”
“아니야, 괜찮아.”
윤영과 같은 경험을 하고 싶었던 저는 망설이지 않고 제안했어요. 그러나 돌아오는 건 완고한 거절이었죠. ‘나의 도움으로 같은 것을 보고 즐기면 좋을 텐데 왜 그럴까?’ 속으론 생각했지만, 이유는 묻지 않았습니다. 저는 윤영의 마음을 온전히 헤아리지 못했던 거죠.
콜로세움 진입 경사로와 엘리베이터
그리고 콜로세움 앞에서 윤영의 복잡한 얼굴과 다시 마주했습니다.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도 같습니다. 윤영의 생각을요. 당연히 존재해야 할 편의시설을 두고, 자신마저 온정이나 배려로 여긴 채 감사했던 게 화가 난 것이겠죠.
저 역시 콜로세움과 융프라우에서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편의시설을 발견하고 ‘의외’라고 여겼습니다. 스스로 알아차리지도 못한 순간에요. 어째서일까요. 2천 년이 넘은 건물이라서요? 해발고도 4천 미터가 넘는 곳이라서요? 아닙니다. 그건 우리가 편의시설이 없는 게 당연한 세상을 여태껏 살아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럽을 떠나올 때 이동 수단이 없을까 두려웠던 것도, 장애인 화장실을 발견할 때마다 감동에 휩싸인 것도 편의시설이 없으면 어쩔 수 없다고 여겨왔던 환경에서 살아왔기 때문이죠.
편의시설의 부재는 그저 ‘없다’라는 사실에 그치지 않습니다. 장애인뿐 아니라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 영유아를 동반하는 사람들도 접근을 어렵게 하고, 동등한 경험을 할 수 없게 만들죠. 그런데도 관계자들은 사적지가 훼손될 테니 편의시설 설치가 어렵다고 말해왔습니다. 어떤 때는 멀쩡히 작동되는 리프트를 두고도 고장이 났다고 대충 둘러대기도 하죠. 실제로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관광지들에서 우리가 들은 말이에요.
이런 태도는 ‘이 공간에서 배제되는 사람이 있어도 어쩔 수 없다.’라는 속뜻을 품고 있습니다. 자리만 차지하고, 관리하기 귀찮다고 여기는 거죠. 모두의 관람을 위해서 접근권, 평등권을 지켜내는 막중한 책임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여전히 사회적 약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콜로세움 내부
이제 우리는 편의시설이 있음에 감사하지 않습니다. 편의시설의 유무에 따라 그곳을 갈 수 있는 사람과 갈 수 없는 사람이 나뉘죠. 그건 나와 다른 배경에서 살아온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도 함께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한 공간에서 같은 경험을 나누어야 우리는 공동체로 살아갈 수 있어요. 같은 경험을 나눌 때 우리는 일체감을 가지니까요. 만약 콜로세움과 융프라우에 편의시설이 없었다면 준우와 윤영은 그저 아쉬워하며 발길을 돌렸을 겁니다.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 그런 곳이구나….’ 할 수는 있어도 ‘맞아! 우리도 그곳에 있었지!’라곤 말할 수 없었을 거예요.
다행히 융프라우와 콜로세움에서 우리는 같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함께 갈 수 있었으니까요. 저희는 앞으로도 더 많은 추억을 쌓아가고 싶습니다. 그곳이 유럽이든, 한국이든 말이에요. 우리가 같은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장소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글= 박윤영 작가, 채준우 작가
*사진= 작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