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원, 아깝지 않은 인생 수업료

이정모 펭귄각종과학관장 (더미라클스 20호 회원)


 



푸르메재단이 설립된 후 재단의 활동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분들이 참 많습니다. 고마운 분들을 꼽자면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지만, 그 가운데 이정모 펭귄각종과학관 관장은 벌써 12년째 기부를 이어오는 푸르메의 오랜 친구이자 든든한 후원자입니다.


그는 대학교수에서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서울시립과학관장을 거쳐 비관료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국립과천과학관장을 지내고 지난해 퇴임했습니다. 지금은 펭귄각종과학관이라는 이름의 작은 사무실을 열고, 대중과 과학 사이를 메우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요.


우연히 시작된 인연


이 관장과 푸르메의 인연은 백경학 대표와의 만남에서 시작됐습니다. 사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인데다 같은 시기에 독일에서 공부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동안 만난 적도 없고 서로를 전혀 몰랐다고 해요. 2012년 그가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으로 재직하던 때 백경학 대표를 만나면서 재단의 정기기부자가 되었습니다. 어린이재활병원 이야기를 듣고 단번에 기부를 결심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정말 필요한 병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에 ‘(민간단체가 병원을 짓는 건)무모하다’는 이야기도 많았지만, 저는 의심한 적이 없어요. 충분히 지을 수 있다고 믿었죠. 실제로 개원했을 때 가보니 병원이 너무 예쁜 거예요. 치료받는 아이들, 그리고 병원에 아이를 맡긴 부모들이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어요. 이 병원이 전국 곳곳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정말로 정부가 이 병원을 모델로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을 짓기 시작한 것을 보며 기부자로서 큰 보람을 느꼈어요.”


이 관장은 기부뿐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푸르메와 함께했습니다. 장애어린이들이 다양한 전시‧체험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백경학 대표와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에서 북콘서트를 열기도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 설치했던 ‘회오리모금함’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합니다. 회오리모금함은 ‘케플러의 제2법칙’을 활용한 동전 모금함입니다.


“회오리모금함에 동전을 던지면 아래로 내려갈수록 속도가 빨라지는데 보고 있으면 무척 흥미로워요. 그래서 아이들이 놀이하듯 재미로 동전을 넣죠. 모금함 옆에 적힌 ‘장애어린이를 위한 병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처음엔 그냥 스쳐 지나갈 거예요. 하지만 놀이처럼 반복하다 보면 그게 조금씩 쌓이죠. 저는 아이들이 기부를 그렇게 배워야한다고 생각해요. 어릴 때부터 삶 속에 스며들듯 자연스럽게요.”


1억 원은 아깝지 않은 인생 수업료 



이 관장은 2018년 푸르메소셜팜에 1억 원 기부를 약속하며, 푸르메재단 고액기부자 모임인 ‘더미라클스’의 20번째 회원이 되었습니다. 푸르메재단 홍보대사인 이지선 이화여대 교수의 강연을 듣고 크게 감동해 기부를 결심했는데, 여기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이지선 교수님의 강연을 듣고 바로 1000만 원을 기부했어요. 그런데 어디서 어떻게 이야기가 잘못되었는지, 제가 1억 원 기부를 약속했다고 언론에 보도되었더라고요? 저는 그 사실도 모르다가 지인들의 말을 듣고 알게 됐어요. 교회 목사님도 예배 시간에 저를 칭찬하고, 친구들도 ‘너는 10년간 술값 내지 마라’며 어깨를 쳐주니 별 수 있나요. 어떻게든 기부를 해야겠다고 다짐했죠.”


이 관장은 지난해까지 1억 원을 완납하며 약속을 지켰습니다. 꼭 5년이 걸렸지요. 그동안 이 관장은 정말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합니다. 두 자녀를 둔 가장이기에 월급에 손을 댈 수는 없고, 강연료와 인세 등에서 기부금을 만들었습니다. “기부하느라 지난 5년간 인생에서 가장 많은 강연을 했다”고 농담처럼 말합니다. 과학관장 업무에도 충실해야 했기에 아침 7시 15분에 출근해 일을 시작했습니다.



“기관장평가에서 매년 최고등급(S등급)을 받을 만큼 열심히 일했어요. 어떻게 보면 관장으로 편안하게 살 수도 있는 시기였는데, 저는 가장 치열하게 살았죠. 돌이켜보니 본의 아니게 약속한 ‘1억 원 기부’가 결과적으로는 제 인생에서 가장 값진 배움이었습니다. 책을 쓰고 강연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뭔지,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달았거든요. 1억 원은 아깝지 않은 인생 수업료였습니다.”


이 관장은 더미라클스 회원들과 함께 푸르메소셜팜을 찾아 봉사하기도 했습니다. 처음 방문했을 때는 예상보다 훨씬 멋진 농장 모습에 깜짝 놀랐지요. 발달장애 청년들에게 체계적으로 직무교육을 하고, 각자 잘할 수 있는 업무를 맡아 일하게 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농장을 방문할 때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는 사무관과 동행했어요. 농장에서 직원들과 함께 토마토를 따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죠. 사무관에게 ‘아이를 평생 데리고 살 수는 없다. 언젠가는 부모 품에서 떠나보내야 하는데, 너무 겁먹지 마라. 이런 일터를 정부가 많이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어요. 사무관도 푸르메소셜팜과 일하는 청년들의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해요.”



이 관장은 푸르메재단이 사회를 바꾸는 역할을 계속해 나가길 바랍니다. “푸르메소셜팜은 발달장애 청년의 일터로서 좋은 모델이 됐어요. 어린이재활병원이 그랬듯, 발달장애인을 위한 일터도 이제는 정부가 정책적으로 이어갈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푸르메재단은 장애 청년의 자립을 위해 다음 사업을 고민하고 우리 사회에 또 다른 새로운 길을 보여주길 기대합니다.”



*글, 사진= 오선영 부장 (마케팅팀)
*영상= 김홍선 차장 (마케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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