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영·채준우의 다르다Go?] 함께 가고 싶어

<박윤영·채준우의 다르다Go?> 1화



칼럼니스트 박윤영과 채준우는 장애·비장애 커플이다. 함께 여행하고, 둘이 떠드는 게 여전히 제일 좋다. 둘은 45일간 유럽여행을 다녀온 뒤 여행에세이 <너와 함께한 모든 길이 좋았다(2018)>를 펴냈고, 최근에는 장애 인권을 다룬 책 <장애인이 더 많은 세상이라면(2023)>을 출간했다.



준우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었어요. 창이 넓은 카페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죠. 맞은편에는 저의 사랑스러운 연인, 윤영이 앉아있었어요. 아까부터 무엇엔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서요. 그런 윤영을 바라보며 저도 생각에 잠겼습니다.



윤영을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오릅니다. 커다란 전동휠체어에 앉혀놓은 작은 인형. 윤영의 첫인상이었습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인형인 줄 알았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작은 사람이 있다니... 귀여운 모습에 눈길이 갔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윤영의 여러 모습을 알게 되었습니다. 윤영은 정말 밝은 사람이었습니다. 주변에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고 그 중심에 있는 윤영은 늘 밝게 빛났죠. 그때 알았습니다. 아, 나는 윤영의 매력에 빠져들었구나. 반해버렸구나. 마음을 고백한 그날도 이렇게 눈이 왔습니다. 날이 추웠지만 함께 맞잡은 손은 따뜻했죠.


추억여행이 끝나갈 때쯤 윤영이 두 눈을 반짝이는 게 보였습니다. 마침내 저에게 시선을 옮기더니 할 말이 있다는군요. 어쩐지 긴장이 되어서 자세를 고쳐 앉았습니다. 시간은 슬로모션처럼 느려졌고, 시계 초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해진 그 순간, 윤영이 굳은 표정으로 입을 뗐습니다.


“나, 유럽 여행을 가야겠어.”


정적을 깨는 선언에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갑니다. 돈과 시간, 여러 현실적인 고민이 들었지만 상관없습니다. 윤영과 함께 떠날 수 있다는 설렘이 더 컸으니까요. 윤영은 한다면 꼭 해내야만 하는 사람이에요. 처음 그랬던 것처럼 저는 윤영에게 또 끌리고 있었습니다.


“그럼 나도 함께 가고 싶어!”


윤영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저의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여행파트너가 된 윤영을 꼭 안아주었습니다. 윤영의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고, 제 심장도 같은 속도로 뛰고 있었을 겁니다.



그날부터 우리는 여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기간은 45일 정도로 잡고 목적지는 대략 서유럽으로 정했습니다. 여행 블로그도 찾아보고, 도서관에서 유럽여행 가이드북도 빌렸죠. 가고 싶은 국가를 정하고 전체적인 동선을 그려갔습니다. 계획이 구체화될수록 유럽에 한 걸음씩 다가가는 듯 설렘도 커졌습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어느 도시를 어떻게 관광할지 상세 계획을 세워야 할 차례가 오자, 저희에게는 아무런 정보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챘습니다. 물론 파리, 런던, 베네치아 같은 유명한 도시의 가이드북은 넘쳐났어요. 하지만 그 많은 정보를 하나하나 살펴보아도 장애인, 특히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참고할 만한 것은 전혀 없더군요. 에펠탑에 휠체어 사용자가 올라갈 수 있는지, 파리의 지하철에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베네치아의 수상버스는 탈 수 있는지, 융프라우 산악 열차는 리프트 서비스를 해주는지, 그곳에 장애인 화장실이 존재하는지 등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아! 딱 한 권 보긴 했습니다. 무려 20년도 더 된 가이드북이었지만요. “이 도시는 장애인 편의시설이 있습니다”와 같은 설명이 두세 줄씩 쓰여있었으니 아예 없는 건 아니었네요. 퍽 허탈해졌습니다.


시간과 돈을 들여 떠나는 여행인데 남들처럼 많은 곳에 가고, 많은 것을 즐기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관광지마다 전화를 걸어 전동휠체어로 갈 수 있는지 일일이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정보가 없으니 불안감은 커졌죠. ‘차라리 윤영이 수동휠체어를 타고 가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단이나 턱이 있어도 제가 휠체어를 들어서 옮길 수도 있고, 선택할 수 있는 식당이나 숙소의 범위도 넓어질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윤영에게 조심스레 제안했습니다.


“혹시 수동휠체어를 타고 가면 어떨까?”


윤영


준우는 참 담백한 사람이에요. 저를 돕는다며 허둥지둥 나서지 않고, 자신의 쓰임에 의기양양해지는 법도 없죠. 달리 말하면 그런 연애도 할 줄 아는 사람이에요. 자신이 보호자로 오해받을 땐 한걸음 물러서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저에게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그런 사람이요. 그래서 우리는 나란히 거닐 수 있었어요. 그가 저를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만 보지 않았기 때문에요.


그런데!…. 그런 준우가, 이런 제안을 해 온 거예요. “수동휠체어를 타고 가자”니... 저로선 믿기지 않는 말이었어요. 지금까지 저의 주체성을 지켜주던 그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따지고 보면 강요도 아니고 의견을 물어온 것뿐인데, 제 마음은 또 왜 이렇게 심란한 걸까요?


맞아요. 저는 100kg이 훌쩍 넘는 전동휠체어를 타는 사람이에요. 의사들은 그런 저를 골형성부전증 환자라고 부르죠. 콜라겐을 담뿍 만들어 내지 못해서 뼈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대요. 골절이 딸꾹질처럼 찾아오니까 여간 괴로운 것이 아니지만, 장애를 받아들이고 적응해 살아가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이어야 했어요. 유럽으로 떠나는 것 말이에요! 어린 시절에는 골절로 내내 누워만 있었으니 이제야 적응된 나의 몸과 떠날 용기가 생겼거든요.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흘렀지만 어쨌든 그렇기에 전동휠체어는 제게 엄청난 의미예요. ‘나의 다리’라는 뻔한 표현으론 다 설명해 낼 수 없을 만큼이요. 제 약한 몸을 지켜주는 단단한 보호막이자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아주아주 최소의 단위쯤 되는 것 같아요. 첫 외출과 첫 여행 모두 전동휠체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그뿐인가요. 편의시설이 갖춰지지 못한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자립’할 수 있었던 것도, 해외연수의 꿈을 실현해 준 것도 사람이 아닌 전동휠체어였죠.


전동휠체어가 저에게 어떤 의미인지와는 별개로 준우의 제안은 일리가 있어요. 배낭여행에 전동휠체어는 완전 불합격이었거든요. 가이드북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정보는 나오지 않았어요. 세상에는 경사로보다 계단이 더 많은데, 비행기에서 내린 후 어디로 갈 수는 있을까요? 가늠조차 안 됐어요. 게다가 전동휠체어는 전동기기니까 언제든 고장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죠. 자동차처럼 카센터에 쉽게 맡길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도 않고요. 휠체어가 멈추는 순간 우리의 여행도 거기서 끝날 것이 불 보듯 뻔했죠. 반면 수동휠체어는 그야말로 해볼 만했어요. 계단이 나오면 휠체어는 접고, 준우에게 안기면 되니까요. 저상버스나 지하철을 못 타게 돼도 일반 택시를 탈 수 있겠죠?


그런데도 전동휠체어를 포기할 수 없었어요. 지금 타는 이 전동휠체어가 제 몸에는 가장 잘 맞았거든요. 무엇보다 안겨 다니고 싶지 않았어요. 누군가 휠체어를 밀어주는 대로의 풍경을 제 눈에 담고 싶지도 않았고요. 단 하루를 여행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내가 머물고 싶은 그 자리에 머물고 싶었죠.


“수동휠체어를 타야 한다면 안 갈 거야.”


결국 이 말을 준우에게 하고 말았어요. 하지만 일렁이던 마음이 가라앉자, 안개가 걷힌 것처럼 제가 해야 할 일들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당장 휠체어 수리점을 찾아가 고장 나기 쉬운 부품부터 교체하고 점검도 꼼꼼히 받았죠. 돌아와서는 노트북을 뜨겁게 달굴 만큼 구글맵의 로드뷰를 들여다봤어요. 로드뷰에는 우리가 거닐 도시의 지면들이 만져질 듯 상세했어요. 휠체어로 다니기에 얼마나 울퉁불퉁할지 혹은 매끈할지 파악하기에 충분했죠. 경사로가 어디로 이어지는지, 묵을 호텔에는 턱이 있는지도 살폈어요.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저상버스를 발견한 건 정말이지 행운이었죠! 버스 번호를 적어 보내면 준우는 노선을 파악했어요. 조금씩 확신이 생겼고 여행이 다가올수록 우리는 완벽한 팀이 되어갔죠.



다시 생각해 보면 준우에게 서운할 필요는 없었어요. 문제는 준우가 아니라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가이드북이 없다는 점과 세상에는 경사로보다 계단이 더 많다는 사실 때문이니까요. 그런데도 “수동휠체어를 탈 거라면 안 갈 거야”라고 말해 버렸으니 제 어깨도 무거워졌죠. 이 대답은 곧 ‘네가 나를 책임지게 두지 않겠다’라는 선언이었거든요. 맹목적인 호소에 그치지 않으려면 더 적극적으로 여행 준비를 해야 했어요. 휠체어 점검이나 로드뷰를 보는 일들이 그런 노력 중 일부였죠. 그리고 끊임없이 되뇌었어요. 이 여행은 준우가 윤영을 데려가는 것도 아니고, 윤영이 준우에게 고마워하는 여행으로도 만들지 않겠노라 말이죠. 비행기 탑승이 시작되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요.


이제 막 미지의 세계로 첫발을 내디딘 우리,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요?


*글= 박윤영 작가, 채준우 작가
*사진= 작가 제공, 핀터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