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할 일, 푸르메가 합니다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대표 취임


 



지난달 27일, 이사회 승인을 거쳐 백경학 상임이사가 푸르메재단의 대표이사(이하 상임대표)로 취임했습니다. 이에 따라 푸르메재단은 신임 백경학 상임대표와 김주영 법무법인 한누리 대표변호사, 박태규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 교수 등 세 명의 공동대표 체제로 운영됩니다. 재단 설립 18년 만의 변화입니다.


백경학 상임대표는 감개무량하다는 표현과 함께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간 이사장을 맡아주신 김성수 대한성공회 주교님과 강지원 변호사님의 옷자락만 붙잡고 쫓아왔는데, 이제는 전면에 나서서 제가 책임지고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어요.”


취임을 축하하는 강지원 이사장과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대표(사진 오른쪽)취임을 축하하는 강지원 이사장과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대표(사진 오른쪽) 


앞서 길을 닦아준 분들의 노고를 먼저 이야기하지만, 백경학 상임대표는 푸르메재단 설립부터 지금까지 누구보다 치열하게 달려왔습니다. 1998년 영국에서 당한 교통사고를 계기로 우리나라 장애인 재활치료의 어려움을 절실히 느꼈고, 유럽 선진국과 같은 재활병원을 국내에 세우기로 결심했지요. 그 길로 잘 다니던 언론사를 그만두고 재단 설립에 나섰습니다. 2005년 재단 설립 후 시민 1만 명과 기업의 나눔으로 430억 원을 모아 2016년 서울 마포구에 국내 최초이자 유일의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이하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을 개원하고, 지난해 경기도 여주에 발달장애 청년을 위한 일터 푸르메소셜팜을 건립하기까지 그가 걸어온 길에는 참으로 많은 기적이 함께했습니다.


‘국내 최초’ 타이틀로 걸어온 18년 


그는 “그간 참 어려운 일도 많고 보람도 많았다”며 지난 18년을 추억합니다. “2007년 7월 국내 첫 민간 장애인 치과인 푸르메치과가 개원했을 당시 7시 30분쯤 출근하다 보면 부산, 창원, 목포 등 전국 각지에서 밤 기차를 타고 온 환자들이 줄을 서 있었어요. 이가 아픈데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치과에서 거부당한 환자들이었죠. 그들이 치료 후 편안한 얼굴로 나가는 모습을 보면 벅차올랐어요.”


잠을 이루기 힘들 정도로 마음이 어려웠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늘 위기라고 생각하지만 가장 힘들었을 때는 마포구청과 협상이 잘되지 않아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 개원이 미뤄질까 노심초사했던 그때가 아닌가 싶어요.”


2016년 3월,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 개원을 앞두고 준공 검사가 차일피일 미뤄졌습니다. “마포구에서 부지를 받으면서 20년 후에 건물을 기부채납하기로 했는데, 마포구에서는 병원 건물뿐 아니라 병원 내 기자재까지 요구하며 준공 허가를 미뤘죠.” 의료진 구성도 끝나고 환자들의 치료 일정도 다 받아둔 터라 도저히 개원을 미룰 수 없었던 상황. 그간 이 병원을 애타게 기다렸던 환자들을 더 기다리게 할 순 없었습니다. “결국 우리가 한발 물러섰죠. 그 두 달이 참 피 말렸고, 지금도 아쉬워요.”



그래도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을 건립한 것은 지금 와서 생각해도 가장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국내 내로라하는 종합병원들이 전부 어린이 재활에는 손을 내저었어요. 어린이 재활치료는 의료보험 수가가 낮아 절대 운영을 지속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지요. 장애어린이들이 치료에 몇 년씩 대기해야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죠. 그래서 푸르메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니까요.”


더 이상 장애인과 가족이 눈물짓지 않도록


그에게 있어 중요한 성과는 따로 있습니다. 지난해 발달장애 청년들을 위한 일터로 문을 연 푸르메소셜팜 건립입니다. 그 사업을 시작으로 푸르메재단은 장애인 생애주기를 따라 앞으로의 방향성을 정립할 수 있게 됐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장애자녀와 엄마가 동반자살한 경우가 무려 26사례나 돼요. 돌봄의 부담을 줄이려면 자녀가 독립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장애 청년이 일해서 스스로 살아가야 해요. 대다수의 장애인 일자리는 카페 아니면 쓰레기봉투나 비누를 만드는 일들인데, 업무 특성상 지속하기 힘들다고 생각했어요. 생명을 키우면서 치유의 효과도 볼 수 있는 농업을 생각해낸 것은 그 때문이에요. 개선할 점이 많지만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 일자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푸르메재단의 우선 목표는 푸르메소셜팜을 성공적인 모델로 만드는 것입니다.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을 모델로 권역별 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이 국책사업이 된 것처럼, 푸르메소셜팜도 정책 과제로 수용돼 전국으로 확대하는 것이 일단의 목표예요. 그러기 위해서 여주의 푸르메소셜팜을 자생력을 가진 성공모델로 잘 정착시키는 과제가 남아있어요.” 이에 따라 2024년부터 제 2농장을 비롯한 생산시설의 확대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입니다.


장기적으로 놓인 과제는 현재 서른 살 전후인 푸르메소셜팜 직원들, 발달장애인들의 노후를 준비하는 일입니다. 푸르메재단보다 20년쯤 앞서 발달장애인을 위한 학교를 세우고 일터를 만든 강화우리마을 김성수 주교(푸르메재단 명예이사장)의 가장 큰 고민이기도 합니다. 일반 요양시설은 이들 장애인을 돌볼 준비가 돼 있지 않고 장애인 전문 요양원은 정부 지원을 받을 방법이 없으니 지금으로서는 길이 보이지 않는 상황입니다. “발달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노화가 20년쯤 빨라요. 현재 장애직원들의 은퇴가 20년도 안 남았다는 얘기지요. 지금부터 고민해야 20년 후를 안심하고 맞이할 수 있을 거예요.”



백경학 대표는 푸르메재단을 이끌면서 고마운 분들이 참 많습니다. “가장 고마운 분들은 재단 설립 초기부터 한결같은 성원을 보내주신 기부자들입니다. 푸르메재단이 지금껏 이어올 수 있었던 힘이지요. 사업의 고비마다 손을 내밀어주신 분들도 잊지 못합니다. 푸르메센터 건립할 때는 이철재 기부자가, 병원 건립 때는 고 김정주 넥슨 회장이 큰 도움을 주셨어요. 푸르메소셜팜을 건립할 때는 이상훈 장춘순 부부가 기적처럼 나타나 주셨어요. 은평구청장을 지내신 권오록 기부자도 필요할 때마다 손을 잡아 주셨지요. 모두가 푸르메재단의 복이고, 참 감사한 인연들입니다.”


소중한 인연 위로 새로운 기적을 쌓겠습니다


그간 푸르메재단을 거쳐 간 직원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마치 집안의 장남 장녀에게 기대하듯 사명감과 열정만을 요구했는데 직원들이 최선을 다해 지금의 푸르메재단을 만들었어요.” 재단 이사진, 후원자, 그리고 복지관과 병원 등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누구보다 애정을 가지고 쓴소리를 마다않는 고마운 분들입니다. “퇴근해보면 메일이 한두 개 와있습니다. 이분들께 때로는 쓴소리도 듣고, 감사 인사도 올리고 있습니다. 모두가 푸르메에 대한 애정을 표현해 주시는 소중한 분들입니다. 푸르메가 바른 길을 갈 수 있는 것도 이분들 덕분입니다.”


푸르메재단은 아직 가야 할 길이 멉니다. 지금까지 짊어진 짐 위로 또 다른 짐을 올려야 하는 백경학 상임대표. 그의 어깨가 무거워지는 만큼 장애 자녀를 키우는 부모, 그 장애 당사자들의 짐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지기를 바랍니다.


*글= 지화정 대리 (커뮤니케이션팀)
*사진= 푸르메재단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