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 폭스를 꿈꾸며
[김학준 동아일보 사장]
10여년전 우연히 ‘테리 폭스'라는 청년에 관한 기사를 읽고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테리는 현재 캐나다 국민들에게 영웅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는 청년입니다.
‘아름다운 청년' 테러 폭스는 1958년 캐나다 중부 내륙지방인 마니토바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해 야구와 농구, 하키 등 못하는 운동이 없었던 소년 테리의 꿈은 프로 야구 선수가 되어 그라운드위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캐나다의 명문 ‘브리티시 콜럼비아' 대학에 입학한 테리는 미식축구 선수로도 활약했습니다.
운동을 좋아하며 평범한 대학생활을 보내던 테리는 어느 날 아침 다리에서 찌를 듯한 고통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병원을 찾아가 진단받은 결과 골수암이었습니다. 주치의는 암이 더 이상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테리의 한 쪽 다리를 잘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18세 테리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말이었습니다.
결국 일 년 뒤 테리는 오른쪽 다리 15센티미터 무릎 위를 절단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암이 온 몸에 퍼졌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생의 남은 기간 동안 마라톤을 통해 10만 달러를 모금하기로 결심했습니다.자신과 같이 암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테리는 의족을 이끌고 사람 들울 찾아다니며 <테리 폭스의 희망의 마라톤>을 후원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테리는 이와 함께 달리기 연습을 위해 18개월간 5천 킬로미터를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드디어 1980년 4월 12일 테리는 뉴펀들랜드의 주도인 세인트 존슨을 출발하는 대장정을 시작했습니다. 그가 고통을 참으며 매일 42킬로미터를 달리고 있다는 소식이 퍼져나가면서 <1달러 기부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됐습니다.
언론에서는 연일 희망의 마라톤 소식을 앞 다퉈 보도했고 다리를 절며 자신과 싸우는 테리의 모습이 캐나다 국민들의 가슴을 때렸습니다.
143일간, 5373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달리던 테리는 마침내 암세포가 폐로 전이되면서 9월 1일 온타리오에서 쓰러졌고 병원으로 옮긴 지 9개월만인 1981년 6월 28일 22세의 꽃다운 나이로 숨을 거뒀습니다.
그러나 테리 폭스의 희망의 마라톤은 캐나다 국경을 넘어 세계로 전파됐습니다. 현재 55개국에서 매년 테리 폭스 달리기대회가 열리고 있고 3억6000억원의 기금이 모아졌습니다. 한 청년의 아름다운 결단이 수많은 골수암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한국에도 수많은 테리 폭스가 자신의 장애와 힘겨운 마라톤을 하고 있습니다. 푸르메재단의 민간 재활전문병원 건립 사업도 전 국민적인 운동으로 발전돼 고통 받고 있는 장애인 가족은 물론 일반 국민들에게도 새로운 희망을 주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