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위대한 유산 2편

푸르메재단 후원자 이야기_장춘순 여사 2편


 


푸르메재단이 구상한 농장은 가뭄과 홍수 등 자연재해의 위험에서 벗어나 온도와 습도, 햇볕을 자동 조절하는 IoT를 접목한 유리온실의 첨단 스마트팜이었다. 노지에서 일하는 어려움과 자연재해로 인한 리스크를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생산성이 몇 배나 높았다. 일하는 청년들의 심리적인 안정과 학습을 병행하는 치유농장, 즉 케어팜을 결합한 형태였다.


이상훈·장춘순 부부는 농장 방향을 결정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당초 농장에서 재배할 작물로 딸기가 거론됐으나 부부의 의견은 달랐다. 장 여사는 “수익성은 높지만, 딸기는 손 신경이 예민하지 못한 청년들이 따다가 짓무르기 쉽고 운송보관도 어렵습니다. 반대로 수확과 보관이 쉬운 품종을 선택해야 합니다.”하고 조언했다. 그 결과, 당도가 높고 식감도 좋으면서 따기 쉽고 장기간 보관할 수 있는 방울토마토와 재배가 쉬운 표고버섯이 생산품종으로 선정됐다.


이상훈 회장은 “우리도 표고버섯을 재배해봤지만 하얀 주름 백화가 있느냐에 따라 상품성이 결정됩니다. 많은 곳에서 재배하는 만큼 기술력이 관건입니다.”하고 조언했다. 아들과 농사지으며 체득한 교훈인 만큼 농장이 발달장애인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강조했다.


열심히 일하는 청년들(토마토+버섯)열심히 일하는 청년들(토마토+버섯)


어쩌면 생산보다 더 중요할 판로에 대해서도 SK하이닉스가 큰 결단을 내렸다. 생산된 방울토마토를 이천 및 청주 공장의 직원 간식용으로 전량 구매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GS리테일도 일부 토마토와 표고버섯의 구매를 약속했다. 이제 판로가 확보됐으니 농산물을 잘 생산하는 일만 남았다.


부부로부터 농장 부지를 기부받는 데 1년이 걸렸다. 마침내 2020년 10월 푸르메소셜팜 착공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장춘순 여사가 감동의 눈물을 흘린 것이다.


6개월 만에 1200평 규모의 유리온실이 문을 열었다. 농장에서 일할 청년 40명도 순차적으로 선발됐다. 대부분 여주에 거주하지만 이천과 양평에서도 왔다. 구미와 평택 등 다른 지방에 사는 청년 세 명은 부모님과 아예 여주로 이사를 왔다. 입사 시험은 면접과 실기로 나누어졌다. 경쟁률이 3대 1을 넘었다. 시험은 스스로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구두시험과 500kg 토마토를 포장하는 능력을 봤다. 양평의 특수학교에서는 재학생이 합격하자 축하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성경 필사하는 할머니성경 필사하는 할머니


일 년 후 농장 안에 베이커리 카페 <무이숲>이 완공됐다. 이곳에는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일할 청년 13명이 새로 선발됐다. 여주 생활시설에 있던 청년 4명이 농장에 입사하자 여주시에서는 이들에게 그룹홈 아파트 두 채를 제공했다. 장애청년의 일자리가 꿈에도 그리던 독립거주, 자립으로 이어졌다.


어느 날 소포 하나가 재단에 도착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해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정갈한 손글씨로 성경을 필사한 세 권의 노트였다. 맨 앞장에는 푸르메재단이 손자와 친구들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줘서 감사하다는 손 편지가 들어있었다.


이상훈·장춘순 부부의 어머니이신 97세 윤여영 할머니가 보낸 것이었다. 가톨릭 신자인 할머니는 여주농장이 지어지자 감사의 마음으로 매일 2~3시간씩 정성을 들여 성경을 필사하셨다고 한다. 백세 가까운 할머니가 한 자 한 자 정성을 들여 손글씨를 쓰시는 모습이 상상돼 감동이 밀려왔다. 장애가 있는 손주를 둔 할머니의 마음도 이토록 절박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가족사진가족사진


장춘순 여사의 아들 덕희 씨도 어엿한 직원이 됐다. 입사 시험을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한 그는 성남시에서 경강선 전철과 농장 셔틀버스를 타고 혼자 출퇴근한다. 장 여사는 아들이 첫 출근을 하는 날 현금 인출 카드를 하나 만들어줬다. 그런데 이날부터 아침저녁으로 결제 알림음이 끊이지 않았다.


하루는 퇴근하는 아들에게 “너! 오늘도 많이 샀지? 돈을 물 쓰듯 해서 어떡할래?” 하고 야단쳤다.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번 돈이니 내가 알아서 쓸 거예요.” 덕희 씨가 소리쳤다. 장 여사는 화가 나기는커녕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행복했다. 아들이 출근해서 땀 흘려 일하고 돈을 벌어 원하는 물건을 사다니… 1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눈도 맞추지 못했던 청년들이 이젠 출근길에서 서로 안부를 묻고 농담한다. 어머니께 용돈을 드린다고 서로 자랑한다. 일하면서 또래 집단 간의 교류를 통해 사회성을 배우고 직장에서 월급을 받으니 자존감이 하늘을 찌른다.


2022년 8월 완공된 푸르메소셜팜2022년 8월 완공된 푸르메소셜팜


가끔 농장에서 수확량이 늘어나면 직원들에게 나눠준 토마토를 들고 퇴근한 덕희 씨는 “이 집에서 돈 버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유세한다고 한다. 덕희 씨의 이런 모습을 보며 장춘순 여사는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글=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사진= 푸르메재단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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