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지능의 문제 아닌가요?

<발달장애인의 읽을 권리> 8화


 


요즘 저는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에 유독 관심이 많이 갑니다. 나이가 오십이 넘어가며 세상을 보는 조금 다른 관점이 생긴건가 싶기도 합니다. 얼마 전, 운동하면서 볼 TV 프로그램을 찾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던 중, EBS 클래스-e 방송 화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언어, 인간의 모든 것에 대한 모든 것>이라는 제목으로 언어학자 신지영 교수님의 강연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생각을 담는 도구로서의 언어에 대한 개념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언어를 ‘인간의 모든 것에 대한 모든 것’이라고까지 표현한 점이 놀라웠습니다. 마침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주제라 정말 몰입해서 강연도 듣고 추가 자료를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강연의 내용을 조금 소개하자면, 언어는 의사소통을 위한 사회적 약속이고 그것을 만들고 사용하는 사람들의 관점과 기준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그 이면에 이데올로기가 숨겨져 있다고 합니다. 흥미진진한 사례들이 적절하게 소개되어 강연의 재미가 커지는데 예를 들면 “산불로 여의도 면적의 OO배가 불에 탔다.”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면적의 기준으로 빈번하게 여의도를 사용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서울 중심적인 면모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심코 사용하는 말 속에 차별과 편견의 시선이 담겨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장애와 관련해서는 더욱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에게도 꽤 오래 전부터 발달장애인 가족의 입장에서 볼 때 불편해지는 언어 표현들이 쌓여갔습니다. 지난 칼럼에서 “발달장애인은 순수하다, 해맑다, 천사 같다”라는 말을 듣고 제가 느낀 감정을 이야기한 것과도 연결이 됩니다.


발달장애와 관련된, 다음과 같은 몇몇 언어 표현들이 있습니다. 얼핏 보기에 큰 문제가 느껴지지 않는 일상적인 표현일 수 있지만 그 이면에서 제가 느끼는 불편한 시선에 대해 한 번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일반학교 내 특수학급을 가리키는 말인 ‘도움반’, ‘발달 장애를 앓고 있다’라는 표현, 발달장애인이 읽을 수 있도록 기존 자료의 난이도와 형식을 바꾼 ‘쉬운 책 혹은 대체 자료’, 발달장애인을 위한 도서관의 이름인 ‘시끄러운 도서관’ 등등.


이러한 표현 안에서 저는 발달장애인이 병을 앓고 있어 타인의 도움에 의존해야 하는 나약한 존재, 콘텐츠를 직접 생산할 능력이 없는 무능한 존재, 소음 등 문제를 일으키지만 참아 주어야 하는 별난 존재라는 시선이 읽힙니다. 장애인의 부모라서 가지고 있는 자격지심일 수도 있고, 까칠하고 이기적인 개인적 성향에서 나온 확대 해석일 수도 있지만 저의 솔직한 느낌을 적어 보았습니다.


더불어 제가 특히 참기 힘들어 언급하고 싶은 언어 표현이 있습니다. 행여 아이가 들을까 노심초사하게 되고 정말 금지하는 법이라도 만들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자주 보거나 듣게 되며, 상식과 교양이 있어 보이는 사람들도 큰 문제의식 없이 많이 쓰고 있고 심지어 제 아이의 장애를 아는 지인의 입에서 나오기도 하는, 이런 말들입니다.



‘이쯤 되면 이건 지능의 문제 아니야?”
“무능을 넘어서 지능이 낮은 것 같다.”
“이런 저능아 같으니라고...”


소통을 위한 어떠한 노력으로도 해결이 안되는 최악의 상대에게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듯이 던지는 표현일 겁니다. 소통을 포기한다는, 너를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통보 같은 느낌입니다. 이 사회가 지능이 낮은 사람들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지능이 낮은 것은 어떤 개인의 선택이나 잘못이 아닙니다. 노력으로 극복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선택과 노력의 범주를 벗어나는 특징을 가지고 어떤 사람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을까요? 저희 아이를 비롯해 지금까지 제가 만나 본 모든 지적장애인들은 지능은 낮지만 상식과 규칙을 지키려 노력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애를 쓸 줄 아는 훌륭한 사회 구성원입니다.


그럼 도대체 어떤 언어로 바뀌어야 하냐고요? 저도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 보지만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일단 발달장애에 관련된 모든 언어 표현들을 의심해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기존의 관점을 의심하고 문제 제기를 해보는 것은 차후 더 심도 있고 신중한 논의를 불러올 것이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언젠가는 새롭고 진보된 관점이 미래의 언어에 담길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글= 조윤영 대표 (도서출판 날자)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조윤영은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고 있는 부모이자 발달장애인을 위한 책을 만드는 '도서출판날자'의 대표입니다. 걱정이 많은 아들 예준이의 일상 에피소드로 「걱정이랑 친구할래?」를 펴낸 작가이기도 합니다. 발달장애인도 책을 읽을 권리가 있고, 그를 통해 사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희망으로 읽고, 듣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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