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보다 하루 더 살고 싶냐고요?

<발달장애인의 읽을 권리> 7화


 


얼마 전 발달장애인의 독서 문화라는 주제를 가지고 지역구 국회의원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제도와 시스템의 틀을 만드는 정책 입안자들의 인식과 의견이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의정 활동으로 바쁜 와중에도 다소 생소한 주제로 문제를 제기하는 장애 부모를 위해 시간을 내준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컸지만 헤어지며 저에게 덕담처럼 건넨 말을 듣고 적잖이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나는 발달장애 친구들을 참 좋아해요. 얼마나 천진난만하고 순수한지 몰라요. 정말 천사들 같아요. 천사를 키우는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힘을 내세요.” 그 분의 좋은 의도를 십분 이해하긴 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거부감을 포장하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이 말을 전해들은 다른 장애부모님은 즉각 이런 말을 하시더군요. “그 천사 집에 모셔다 드릴 테니 며칠만 키워 보시라 하고 싶네요!”


발달장애인을 한 집단으로 보는 사회 


많은 사람들이 발달장애라고 하면 떠올리는, 판에 박힌 특정한 이미지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장애 아이를 키우기 전에는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세상사에 무지한 채 천진무구하게 웃고 있는 아이와 그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힘겨운 일상을 이어가는 부모의 모습이 대표적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 내용이 무조건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과 그리 수용적이지만은 않은 분위기가 두려운 아이들은 그저 환하게 웃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일 수 있습니다. 그런 자식의 삶을 하루라도 더 챙겨주고 싶어 애가 타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고요. 제가 안타깝게 여기는 부분은 이러한 특정 이미지에 사로잡혀 발달장애인을 하나의 덩어리 혹은 집단으로만 인식하고 거기서 더 나가아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발달장애인 개개인을 다양한 면면을 가진 고유한 주체로서 보려고 하지 않는 것에서 많은 문제들이 시작됩니다.


인류의 역사가 근대로 넘어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개인’의 발견이었다고 합니다. 집단의 관점에서 개인의 관점으로, 그 인식의 변환이 수많은 분야에서 폭발적인 변화와 진보를 이루어냈습니다. 개인의 성장과 성취가 사회와 문명의 발전으로 이어졌고 개인의 성장에 있어 가장 기초적이고도 핵심적인 요소가 독서라는 사실은 큰 이견없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발달장애인과 독서라는 개념 사이에 생긴 엄청난 간극의 원인이 무엇인지 이제 조금은 보이는 듯 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한 사람의 발달장애인을 배움과 성장, 성공의 잠재력을 지닌 하나의 개인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편적인 특정 이미지로 대표되는 집단이며 차별과 동정, 보살핌과 시혜의 대상으로 국한됩니다. 많은 경우 그러한 모습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다시 말해 장애다움을 잃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을 느끼기도 합니다. 교육도 복지정책도 획일적일 수 밖에 없고 여기저기서 빈틈이 생겨 납니다. 그러는 사이 독서는 발달장애와 연결되는 기회를 갖지 못하고 점점 멀어지지 않았을까요? 근대를 넘어 현대를 살아가는, 나아가 초현실적인 미래를 코앞에 두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입니다.


장애를 넘어 개개인의 특성을 바라봐주기를



지난주에 서울미래학습포럼이라는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과 사회 변화에 대비하는 평생학습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자리였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준비한 흥미로운 강연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100세, 120세를 넘어 140세의 평균 수명을 기대하며 인공지능 등의 최첨단 기술과 함께 살아가는 일상은 더 이상 먼 미래가 아닙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패러다임의 변화로 소개된 것이 진정한 개인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점이었습니다. 혁명과도 같은 미래 시대를 대비하는 최고의 방법은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평생 학습을 통한 개인의 꿈과 자아실현, 행복 추구 등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이유입니다. 강연과 토론을 들으며 이 모든 것들이 발달장애인에게는 너무나 절실하면서도 요원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앞으로 수명이 140세 이상이 될 것이라는 내용을 담은 타임지 표지


다행스럽게도 저는 이제 쉽게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발달장애라는 울타리 안에 서로 다른 수많은 개인이 있듯, 제 아이인 ‘예준’이라는 완전체 안에는 장애를 포함하여 여러 특성들이 모여있습니다. 장애가 너의 전부가 아니라고, 걱정이 유독 많은 것이나 얼굴에 여드름이 나는 것처럼 너를 이루고 있는 여러 모습들 중 하나라고, 그런 것들이 모두 모여서 그 누구도 아닌 고귀한 너를 만드는 것이라고 아이에게 그리고 저에게 더 자주 말해주겠습니다. 독서를 통해 성장하고 성공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습니다. 저부터 시작해서 공동체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예준이와 다른 발달장애인을 바라봐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에게 아이보다 하루 더 사는 삶을 원하냐고 물으신다면 저의 대답은 주저없이 “아니요!”입니다. 저는 제 아이가 인류가 이루어낸 과학과 의학의 발전을 한껏 누리며 자기 세대에 맞는 기대수명대로 평안하게 살아가길 기대합니다. 배움을 통해 변화에 적응하고 올바른 자기 인식에서 오는 만족과 행복을 찾아가는 한 개인으로 존중 받으며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글= 조윤영 대표 (도서출판 날자)
*사진= 조윤영 대표, 게티이미지뱅크




조윤영은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고 있는 부모이자 발달장애인을 위한 책을 만드는 '도서출판날자'의 대표입니다. 걱정이 많은 아들 예준이의 일상 에피소드로 「걱정이랑 친구할래?」를 펴낸 작가이기도 합니다. 발달장애인도 책을 읽을 권리가 있고, 그를 통해 사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희망으로 읽고, 듣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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