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지금 당장 시작할 것!
이장욱 스페이스K 수석 큐레이터, 더미라클스 회원 가입식
몸담은 직장에서 오래 후원한 곳을 개인의 기부처로 선택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지난 30일, 푸르메재단의 오랜 후원기업인 스페이스K의 이장욱 수석 큐레이터가 기부금 1만 달러(한화 약 1,300만 원)를 들고 재단을 찾았습니다. 이에 더해 5년간 1억 원 기부를 약속하며 고액기부자모임인 ‘더미라클스’의 39번째 회원이 되었습니다.
그는 지난 3월, ‘소더비 홍콩’의 제안으로 국내 여성작가인 제여란 작가의 전시를 기획해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세계의 미술애호가들을 많이 만났고, 한국 작가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것을 보며 한국 작가와 한국의 국가 브랜드에 대한 인식이 크게 성장한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고 했지요. 그 전시 기획금 1만 달러를 모두 장애어린이 재활치료비로 기부했습니다.
상대적 약자를 향한 마음
이 수석은 제여란 작가(63)를 소더비 홍콩에 추천한 이유로, 국내 여성작가들의 활동 수명이 길지 않고 그만큼 남성작가들에 비해 저평가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제 작가의 작품세계를 통해 국내 여성작가들의 경쟁력을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고요.
상대적 약자를 향한 선한 마음이 담긴 1만 달러는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인 장애어린이에게로 전해졌습니다. “저만 해도 한국이 꾸준히 성장하는 시대에 자라 많은 기회를 얻었지만, 이제는 모두가 살아가기 힘든 시기에 접어든 것 같아요. 운 좋게 괜찮은 환경을 살아온 우리가 아이들에게 그만큼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중 더 힘든 환경에 있는 장애어린이들을 돕고 싶었지요.”
그가 속한 스페이스K는 매년 신진작가들과 자선 전시회 ‘채러티 바자’를 열어 2014년부터 7년간 작품 판매수익금 전액을 장애어린이를 위해 기부해왔습니다. 스페이스K의 마곡 이전으로 공간의 역할이 바뀌며 채러티바자 진행이 어렵게 되자 그 업무를 담당했던 이 수석은 개인기부로 그 뜻을 이어가기로 한 것입니다.
“재능기부의 가치를 온전히 인정받을 수 있도록 채러티 바자를 열었어요. 작품 자체가 아닌 작품 판매 수익금을 기부해 작가 스스로 나눔을 선명하게 경험하고, ‘예술’이라는 무형의 가치를 유형의 가치로 바꿀 수 있는 ‘직업인’으로서 더욱 인정받았으면 해서요.”
오늘, 지금 당장 시작할 것
“사실 저를 위한 나눔이기도 해요.”
오래 전시기획 일을 하며 여느 직장인이 그렇듯 이 수석에게도 번아웃이 찾아왔습니다. “제 위치에서 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일을 오랫동안 고민해 왔습니다. 스무 살 때는 야학교 교사 활동을 하며 배움에 목마른 분들에게 지식을 나누기도 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여러 채널을 통해 꾸준히 기부와 봉사를 이어왔습니다. 무력해지는 자신을 위해 조금 숨찬 목표가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 기왕이면 사회에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생각했지요.” 5년간 1억 원의 기부를 약속한 이유입니다.
앞으로의 꿈을 묻는 말에 그는 “미래보다 오늘을 충실하게 살려고 노력한다”고 답합니다. “어머님이 일찍이 50대에 돌아가셨어요. 어려서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한 것을 후회했는데, 10년을 더 사셨어도 다르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사람이란 늘 더 나은 삶을 갈망하며 지금 해야 할 일을 나중으로 미루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기부를 더 미룰 수 없었습니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오늘,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살짝 숨차게 해나가는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니까요. 내내 앞만 보고 달리는 요즘의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귀한 조언입니다.
오랫동안 푸르메재단을 지켜봐 온 이장욱 큐레이터의 나눔이라 더 반갑고 고맙습니다. 티 나지 않지만 홀로 열심히 쓸고 닦아왔던 집을 가까운 누군가에게 ‘이렇게 깨끗이 유지하느라 고생 많았다’고 인정받은 것만 같은 기분입니다. 이 수석이 자신의 삶 속에 만든 선순환이 예술계 구석구석 온기 어린 바람으로 가닿기를 바랍니다.
*글, 사진= 지화정 대리 (커뮤니케이션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