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반갑고 자랑스러운 빵점

<발달장애인의 읽을 권리> 5화


 


예준이는 올해 고등학교 3학년으로 마지막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가정의 달인 5월은 즐거운 이벤트도 많지만 학생들에겐 중간고사 성적표가 나오는 때이기도 합니다. 이번 칼럼에는 고3인 예준이가 중간고사 성적표를 가지고 온 날의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예준이와 같은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 공교육 안에서 받는 특수교육과 특수교육 기관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해 볼까 합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제대로 모르고 있거나 용어를 혼동합니다. 꼭 장애인이나 장애 가족이 아니더라도 많은 분들이 이 정도의 내용은 한번쯤 알고 넘어가면 좋겠다 싶습니다.


특수교육의 개념 이해



특수교육이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신체적 · 정신적 · 지적 장애 등으로 특별한 교육적 배려가 필요한 사람을 위한 학교를 설립, 경영과 이들의 교육을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시책을 수립, 실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교육기본법」 제18조 참조)  특수교육대상자란 교육장 또는 교육감이 특수교육이 필요한 사람으로 진단, 평가하여 선정한 사람을 말합니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제2조제3호 및 제15조제1항)


특수교육기관은 특수학교와 특수학급으로 구분됩니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제2조제10호·제11호 및 규제「초·중등교육법」 제55조) 먼저 특수학교는 신체적 · 정신적 · 지적 장애 등에 따라 특수교육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초등학교 · 중학교 또는 고등학교에 준하는 교육과 실생활에 필요한 지식 · 기능 및 사회적응 교육을 위해 설립된 학교를 말합니다. 즉, 학교 전체가 특수교육 대상자를 위한 곳입니다.


반면 특수학급은 특수교육대상자의 통합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일반학교에 설치된 학급을 말하고 우리가 흔히 보는 주변의 일반 학교들 안에 만들어진 몇 개의 학급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여기서 언급된 통합교육은 특수교육대상자가 일반학교에서 장애유형, 장애정도에 따라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또래와 함께 개개인의 교육적 요구에 적합한 교육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제2조제6호)


특수학급은 학교에 따라 도움반, 개별반 등으로 명칭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일반 학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통합학급(통합반)이 있습니다. 예준이는 매 학기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7:3의 비율 정도로) 특수학급과 통합학급을 오가며 학교생활을 합니다.


예준이의 통합교육 이야기


통합교육에 관해 그간 하고 싶었던 말들을 다 풀어내려면 수십장도 모자랄 것 같습니다. 통합교육이 ‘일반학교에서 장애유형, 장애정도에 따라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또래와 함께 개개인의 교육적 요구에 적합한 교육을 받는 것’이라지만 통합반에서 지적장애를 가진 예준이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아니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그냥 조용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다 옵니다. 다행히 예준이는 통합반 가는 것에 큰 거부감이 없고, 교과서로 진도가 나갈 때는 가끔 아는 것이나 관심 가는 부분이 나오기도 해서 수업에 집중했다고 자랑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수업의 대부분이 <수능특강>이라는 수능 대비용 문제집으로 진행이 되는 고3 교실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예준이에게 그 교재를 사줘야하나 생각도 했지만 아이에게는 외계어나 다름 없는 내용만 가득 담긴 책을 무겁게 들고 다닐 필요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걱정은 많지만 정해진 일을 성실히 해내려는 의지가 강한 아이는 학기 초에 어떻게든 수업을 잘해내고 싶어했지만 요즘은 이어폰을 들고 학교에 갑니다.


긴장감이 가득한 고3 교실에서 내 아이가 문제 행동을 일으켜 다른 학생들 학업에 방해가 되는 일만 없기를 바라는 소심하고 무력한 엄마이지만, 시험에 관련된 여러 불합리한 상황들에는 정말 화가 납니다.


통합교육이라는 명목하에, 예준이는 일반학교 학제에 따라 통합학급 학생들과 똑같이 시험을 보고 평가를 받습니다. 본인이 배우지도 않은, 수업에 들어갔어도 배웠다고는 말할 수 없는 내용으로 치뤄지는 시험을 보며 근 일주일을 보내야 합니다. 특수학급의 모든 수업들도 중단되고 급식도 없이 하루에 한 과목, 한 시간 정도 시험만 보고 집에 옵니다. 차라리 그 기간에 할머니댁이라도 다녀오고 싶은데 체험학습을 위한 결석도 금지됩니다. 중간 · 기말고사로 한 학기에 두 번씩 그런 무의미한 시간들을 보냅니다. 그리고 꼬박꼬박 정,오답표와 공식 성적표를 받아옵니다.


10-30점 사이를 오가는 뻔한 숫자들이 이어지고 크게 관심도 생기지 않은 성적표였는데 이번 학기에 드디어 숫자 '0'이 하나 찍혔습니다. 아이는 당황스럽고 창피하다며 저에게 이런 저런 하소연을 합니다. 선생님께서 다음부터는 같은 번호로 답안지를 써보라고 알려주셨으니 다음 번엔 꼭 그렇게 해서 빵점을 면하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0’점에 담긴 의미



하지만 제 눈엔 그 숫자 0이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똑같은 번호로 답지를 채우고 딴짓을 하는 대신 시험문제를 집중해 읽고, 생각을 하고, 나름대로 맞는 답을 찾아보는 아이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시험 기간이라고 날짜에 맞춰 교과서와 유인물을 가져오고 시간을 내서 한번이라도 읽어보려 했던 아이의 수고가 떠오릅니다. 통합반에 들어가 모르는 것 투성이라 막막하고 겁도 나지만 평정심을 찾고 수업에 집중해보려 애썼을 아이의 노력이 헤아려집니다. 비록 고심해서 찾은 번호가 모두 정답을 피해 가버렸지만 이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소중하고 대견해서 목이 메입니다. 이렇게 반갑고 자랑스러운 빵점이 있을까요.


아직은 그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워 앞으로는 한 번호로 찍겠다고 우기는 아이에게도 입이 마르도록 설명해주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생각하고 고민해서 나온 너의 그 점수가 얼마나 대단하고 가치있는 것인지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예준이 학교의 특수학급에는 이렇게 배우고 익히는 힘이 있고 성취에 대한 의지가 있는 아이들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제가 정말로 원하는 건 아이가 상황에 적합하고 필요한 것을 배우고, 배운 내용으로 시험을 보고, 그 결과로 나온 숫자를 보는 것입니다. 학교 다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요원한 바람이 되어버렸지만 상상의 나래를 펼쳐봅니다. 책을 중심으로 진행하는 수업이 있다면 더욱 좋겠지요. 좋은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어려운 어휘나 지식을 열심히 익히고, 그런 것들이 쌓여 시험 범위가 되고 시험 문제로 나오는 중간, 기말고사를요.


그땐 빵점은 안돼, 예준아.


*글= 조윤영 대표 (도서출판 날자)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조윤영은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고 있는 부모이자 발달장애인을 위한 책을 만드는 '도서출판날자'의 대표입니다. 걱정이 많은 아들 예준이의 일상 에피소드로 「걱정이랑 친구할래?」를 펴낸 작가이기도 합니다. 발달장애인도 책을 읽을 권리가 있고, 그를 통해 사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희망으로 읽고, 듣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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