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클론

 [김순덕 동아일보 논설위원]



여자도 섹시한 여자가 좋다. 페미니스트들은 남자가 여자한테 섹시하다고 하면 여성을 성적 대상물로 취급한다며 분개하지만, 나로선 이해가 안 된다. 이 나이에도 괜찮은 남자를 보면 와, 저런 남자랑 연애하면 정말 근사하겠다 싶어지는데 왜 남자는 여자에게 그러면 욕먹어야 하나?


그래서 나는 원래 클론을 좋아했다. 딸이 초등학교 다닐 때 클론의 콘서트에 같이 가서 꺅꺅 소리도 질렀던 것 같다. 구준엽을 더 좋아하긴 했지만(사실 그가 더 잘생겼다고 보므로) 강원래도 좋았다. 둘이 같이 춤을 추니까 그렇게 섹시했지 구준엽 혼자 췄으면 그렇게 인기를 끌었겠나 했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은 대개 짐작하시겠지만, 강원래가 사고를 당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도 그거였다. 아이고 강원래 이제 춤 못 추겠구나. 그럼 구준엽은 어떡하지?


그런데 그들이 돌아왔다. 그것도 열정적이고도 역동적인 휠체어 댄스와 함께.


구준엽은 여전히 섹시했다. 강원래는 더 섹시했다. 화려하게 미끄러지고 회전하면서, 딱딱 끊어지듯 강하게 매듭지으면서, 불꽃같은 생명력을 뿜어내는 댄스였다. 바퀴가 두 발보다 훨씬 자유자재로 잘 움직이고, 민첩 유연하고, 심지어 강렬한 줄은 정말 몰랐다. 휠체어에 앉은 남자가 그렇게 섹시할 수 있다는 점도.


특히나 서서 춤을 추던 구준엽이 2절에서 강원래 같이 휠체어에 앉아 움직이다가, 서로 엇갈리며 힘차게 하이 파이브를 하는 모습은 눈물나게 감동적이었다. 휠체어 백댄서들과 여럿이 놀듯이 구르는 모습도 유쾌했다. 저렇게 재미나게 잘하면서, 하는 생각에 괜히 약이 올랐다. 진작 좀 나오지, 싶어서다.


휠체어 댄스를 처음 본 건 아니다. 윤도현의 TV프로그램에서 휠체어에 앉은 남자가 비장애인 여자와 스포츠댄스를 하는 걸 보여줬는데, 참 신선한 충격이었다. 휠체어로 춤도 출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었다.


클론의 춤이 더 감동적인 건 강원래가 사고 이후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는 까닭이다. 개인적으로 아는 게 아니어도 민간인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을 잘 안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TV같은 데서 워낙 많이 봤기 때문이다. 게다가 강원래가 좀 솔직한가. 진짜 궁금한데도 괜히 미안해서 못 물어보겠는 얘기들을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털어놓았었다.


“처음엔 믿지 않았어요. 그래서 손에 꼽힌 주사기를 뽑아서 배를 찔러봤죠. 피는 나는데 아무 느낌이 없는 겁니다. 그때 깨달았죠. 난 약을 먹으면 낫는 환자가 아니구나, 장애인이구나….” (매일경제)


“사고 이후 1년간은 대소변을 어떻게 가리는가에 신경을 썼고, 그 다음에는 휠체어에 익숙해지는 일에, 그리고 혼자서 라면을 끓여 먹는 일에 신경을 썼어요. 그렇게 하나씩 집중해 나갔더니 이제는 무대에 서고 싶어지더라고요.” (뉴스메이커)


안다. 가수에게 무대가 얼마나 절실한 줄을. 기자들끼리는 이런 농담을 한다. “기사만 안 쓰면 기자는 정말 좋은 직업이야.” 하지만 기사 안 쓰고는 못 사는 사람들이 기자다. 암만 기사를 쓴대도 그게 지면에 안 나가면 또 미친다. 그러니 강원래는 얼마나 무대가 그리웠을까.


그에게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어떤 이는 평생을 갈구해도 한 가지도 갖지 못하는 보물이 둘씩이나 있었다. 바로 사랑과 우정이다. 언제나 웃어주는 아내 송이와 혼자는 미안해서 무대에 설 수 없었다는 20년 친구 구준엽을 한꺼번에 갖고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강원래는 복 받은 사람이라는 걸 자신은 알고 있을까.


강원래가 신나게 춤추는 모습을 본 뒤 나는 장애인이 안 됐다고 여기던 고정관념을 버리기로 했다. 생활하기는 상당히 불편하겠지만, 그리고 우리사회가 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너무나 못해온 점은 반성해야 하지만, 인간적인 면에서는 장애 때문에 특별히 불행할 건 없다 싶다. 오히려 심신에 장애도 없으면서, 사랑과 우정을 주거나 받기는커녕, 자기는 물론 남까지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이 훨씬 안 됐고 불쌍하다.


“전 밥을 안 먹어도 배고픈 걸 느낄 수 없어요. 그래도 기쁜 걸 느낄 수 있어요. 슬플 때 울 수도 있어요. 그래서 행복합니다.”(매일경제)


나는 클론이 더 자주 나와 줬으면 좋겠다. 특히 강원래는 제때 화장실 못 가서 또 병나지 말고, TV에도 많이 나오고 행사에도 많이 나가서, 여러 사람들한테 건강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현실에선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지만,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견뎌내면 못할 게 없다는 것을 그들은 온몸으로 증명한다. 그래서 클론은 너무나 섹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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