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배고프고, 늘 어리석어라 (Stay Hungry, Stay Foolish)
김성식 소피아 (경기도 안성에 있는 노인시설 '베드로의 집'에서 간호과장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푸르메재단 여러분! 안녕하세요? 더운 날씨가 계속되는데 건강하게 잘 지내시지요? 왠만한 더위는 끄떡없는 저도 이번엔 참 덥네요. 그래서 올 여름엔 맨발의 청춘을 즐기기로 작정하고 맨 발가락을 내 놓고 지내니까 홀가분하고 편해요. 어쩌면 발가락보다도 제 마음이 더 홀가분하고 편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건물에는 '혼자만 잘 살믄 므신 재민겨' 라는 말이 적혀 있어요. 그런데 저 혼자만 양말 신으면 무신 재미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벗어던지니까 한결 시원하고 간편해요. 그동안 저는 발가락을 안 보이고 (못 보이고) 살았는데 올해, 여기 노인시설에 와서는 맨발로 즐겁게 다닙니다. 처음엔 좀 쑥스럽고 또 어르신들께는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내 마음을 편하게 가졌어요. 왜냐면 여기 식구들은 거의 다 맨발의 청춘?이거든요.
그동안 살아온 습관에서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함께 사는 사람들과 같은 모습으로 바꾸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이 드네요.
그러나 아직도 지난날의 제 생활 습관에서 못 벗어나는 경우도 아직 많다는 것을 저는 알아요. 하지만 굳이 모든 것을 다른 이들에게 맞추는 것만이 최상은 아니라는 생각도 합니다. 고수? 해야 할 것은 꾸준히 몸과 마음에 지니고 살아야 할 것이 있기도 해요.
우리 집에 '알츠하이머' 질환을 가지고 천사처럼 사시는 분이 계세요. 물론 돌보미들에겐 항상 천사는 아니고요. 때론 그분 나름대로 한숨도 쉬시고 투정도 부리시고 애를 먹이시지만요. 정선이 할머님이신데 어느 땐 선생님 이라고 불러 드리기도 해요.
그런데 그분은 식사하시는 모습이 참 예쁘세요. 음식을 수저로 떠 넣어 드리면 아주 곱게 받아 드시고 입을 꼭 다무신 채 꼭꼭 씹으십니다. 입술은 반드시 냅킨으로 닦으시는데 냅킨이 안 보이면 손등으로라도 반드시 닦아 내시지요. 닦고 또 닦으시며 오물오물 예쁘게 잡수시는 모습은 마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분위기 좋고 깨끗한 어느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시는 모습을 생각하게 합니다.
식사하실 때의 모습을 보면서 저도 어느새, 지난날 그 누군가와 함께 우아하고도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냅킨으로 입술을 꾹꾹 닦고 예쁘게 소리 안 나게 오물오물 먹던 그 때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그 몹쓸 병은 할머니를, 과거의 당신이 아닌 한 가여운 알츠하이머 환자로 만들어 놓았지만 그 분의 좋은 식사예절은 그대로 남아서 음식이 입술에 닿았을까봐 닦고 또 닦아내십니다.
예전에 선배 수녀님께서, 우리가 곱게 늙어야 한다고 그러실 때는 그 깊은 뜻을 몰랐는데 이제야 조금씩 알겠습니다. 이마에 고운 주름살이 아닌 언행에 고운 주름살을 만들어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여유와 편안함으로 펼쳐져서 희로애락을 나누면서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요.
비록 늙음이라는 삶의 한계에 한걸음씩 다가가면서 영육간 질환들로 인한 각자의 삶의 질은 다양해지고 달라진다 해도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귀한 가르침을 온전한 정신을 가진 지금부터라도 자주 생각하고 또 익혀야겠습니다. 마치 우리 정선이 할머님이 식사하실 때마다 입술을 곱게 닦으시는 모습을 지니시는 것처럼요.
그분은, 당신의 맑은 정신은 멀리 떠났지만 남아있는 좋은 습관을 행동으로 보여주시면서 그분 안에 남아있는 우아함을, 품위를 지키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늘 배고프고, 늘 어리석어라 " (Stay Hungry, Stay Foolish) 라는 글을 신문에서 읽었어요. 컴퓨터 황제 빌 게이츠의 라이벌인 애플의 최고 경영자인 스티븐 잡스의 생각을 젊은이들에게 소개하고 당부하는 말이었어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고요.
바쁜 일상을 살면서 정신없던 제게 크게 들려온 말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저만큼 밀어 놓은, 잊지 말아야할 또 한 목소리, '배부른 돼지냐, 배고픈 소크라테스냐' 를 다시 가슴에 안았습니다. 맛있는 밥이어도, 쓴 약이어도 입안에 받아 드시고 쓰다 달다 표현 없이 입을 다물고 곱게 씹으시는 정선이 할머니, 냅킨이든지 당신 손이든지, 입술에 음식이 묻으면 상대방에게 실례니까 꼭 꼭 닦으시는 정선이 할머니는, 오늘도 저희 돌보미들이 드리는 대로 우아하고 예의바르게 받아 잡수시며 선한 모습으로 저 먼 곳을 바라보십니다. 언제 어느 때엔가 올 수 있는 우리들의 모습 한 자락이겠지요.
젊음보다 늙음에 많이 기운 이 나이에라도,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야하고 늘 배부르기보다 늘 배고프고 늘 영리하기보다 늘 어리석음을 선택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요즘 마음이 좀 더 편해졌어요. 그러나 저는 다른 이들보다 더 열심히 늘 배고프고 늘 어리석음을 선택해야 함을 압니다. 그리고 이렇게 할 일이 또 있어서 기쁘고 감사합니다.
감사하며 이만 글을 줄여요.
푸르메재단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